Inuit Blogged

성경 왜곡의 역사 본문

Review

성경 왜곡의 역사

Inuit 2010. 9. 11. 21:00
기독교는 책의 종교입니다. 책으로 인해 교리가 표준화되고, 고대의 말씀과 일화가 면면히 전해져 내려오면서, 지역을 넘고 세월을 견디며 전 지구적으로 보급 되는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은 애초에 누가 적었을까요? 또 그 말은 전적으로 믿어도 될까요? 믿어도 된다면 왜 그럴까요?

Bart Ehrman

(Title) Misquoting Jesus: The story behind who changed the bible and why

정말 흥미로운 책입니다. 종교 자체로서의 기독교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관심으로 많은 책을 읽었지만, 이 책은 매우 협소한 주제인 성경 자체를 깊이 파고들어 학문적 성취를 이룬 점에서 인상 깊습니다.

축자영감설
흔히, 성경의 권위는 유일신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씌어졌다는데서 출발합니다. 신앙의 영역에서는, 성경이 믿음의 출발임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학문의 잣대로도 같은 결론을 믿고 있어야 할까요?

필사자
전혀 그렇게 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초기 전승은 성스러운 책이 필사라는 방법으로 복제되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두가지 방법으로 필사 상 왜곡이 생깁니다.
첫째는, 전문성 없는 필사자가 실수로 문장을 왜곡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당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인 관계로 종교적 이해가 없는 사람이 직업으로 필사를 하는 경우 발생합니다. 여러분도 숙제하다가 종종 그런 실수 해 본 적 있을겁니다. 한 줄 넘어갈 때 같은 단어가 있는 줄로 건너 뛰는 실수 말입니다. 이런 기술적인 실수를 비롯해 문장의 뜻을 통하게 한다든지 유사한 음가를 바꿔쓴다든지 하는 식으로 성경의 변개(change)가 생깁니다.
이런 변개가 양적 변개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정도가 더한 변개가 있습니다.

왜곡
바로 종교적 이유로 의도적인 변개를 시키는 경우입니다. 대개 뜻을 잘 통하게 선의로 바꾸기도 하지만, 일부는 자신이나 집단의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목적을 가지고 본문을 바꾸어 버립니다. 그들이 상정한 적대그룹은 내부 분파, 유대인, 여성, 외부 이교도 등 다양한 집단입니다.
이 경우는 그 변개의 결과가 그럴듯하여 후대의 정설로 믿어지게 됩니다만, 최소한 원문과 달라진다는 점에서 논란의 정점에 있습니다.

사례
예컨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간음한 여인에게 '죄없는 자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의 고사는 아주 후대에 누군가가 슬쩍 끼워 넣은 이야기입니다. 이는 전체 성경 중 오로지 요한복음 7장, 8장에만 나타납니다. 하지만 고대적 원본 요한복음에는 없는 이야기지요. 
가장 고약한 것은 성서학자들이 말하는 요한의 콤마(Johnannine comma)입니다. 요한일서 5장 7-8절에 나온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이부분은 고의적 변개이며, 이 구절이 없으면 3위일체설은 매우 복잡하고 간접적인 방증과정을 거쳐야 성립이 됩니다. 하지만, 요한의 콤마를 슬쩍 끼워 넣음으로서 3위일체에 대한 논쟁의 종지부를 찍지요. 
'성서에 나와 있다. 봐라 여기.'

승자와 패자
뿐만 아니라 예수가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피같은 진땀을 흘렸다는 구절을 비롯해 세기도 힘든 수많은 중요 변개가 있습니다. 이는 예수가 하나님의 분신이냐 양자냐 또는 제2의 하나님이 있느냐 등등 초기의 격렬한 논쟁 중 살아 남은 이론이 적은 승자의 논리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 대논쟁 이후 3위일체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그 외의 경전은 외경으로 말살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경들에 초기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기도 하지요. 또한 외경 자체도 스스로의 논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변개가 반영되어 있었을 수도 있고요.

성경의 구조
결국, 이러한 성서의 원독법을 찾는 작업인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이 품는 궁극의 질문은 누가 원저자였을지 입니다. 성서의 구조를 보면 이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예수 사후에 각지에 흩어진 교회의 일관된 복음활동을 위해 예수의 직접 제자들이 교리와 상황에 대한 해석, 판단을 전해준 서신들이 있습니다. '전서'류입니다. 이를 지나자, 점차 예수의 행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예수의 삶을 기록한 4대 복음서가 있습니다. 이후로, 박해받는 기독교도의 행동 규범을 정립하기 위해, 사도들의 선교적 위업을 기린 사도행전이 나옵니다. 다음에는 초기 기독교도들의 종말론에 부응하기 위한 묵시록 계열이 난립합니다만, 종말론에 기대어 확장하던 교세가 교회라는 정규조직에 의한 성장으로 바뀌면서 묵시록에 대한 의존도가 불필요해집니다. 따라서 신약에는 요한계시록만 정경으로 채택되고 나머지는 외경으로 살라집니다. 이후에는 교회조직을 초기 사도시절처럼 강력하게 지휘하고 확장해 나갈 지도자들이 필요해짐에 따라, 모두가 은총받은 평등주의에서 리더의 규범을 정한 교회규칙서(didache)가 따릅니다. 그리고, 외부와 논쟁시 논리적 배경을 제공하는 변증서(apologia),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순교록(martyrology)이 교회문서를 구성합니다.

원저자
결국, 본문비평이 찾아 헤메는 원저자의 원기록이란, 그 실체가 상당히 애매해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결국 잘 찾아야 마가, 누가, 마태, 요한 등 사도인데, 이미 그들조차 목적의식을 갖고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이 다 적은게 아니라 그들이 말한 요점 구술을 받아 적어 문서화한 양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미 최초의 기록 문서부터 의도하지 않거나 의도한 변개가 이미 들어갈 소지가 다분합니다.

기독교의 진화
흥미진진하게 이 책을 보다보면, 초기 기독교의 성립과정이 눈에 잡히듯 상상이 갑니다. 결국 예수라는 뛰어난 랍비가 기이한 행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었고, 그를 따르는 일단의 탁월한 행동주의자들이 그를 신으로 옹립하면서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는 이타적 행위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애롭기보다는 다소 날카롭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예수의 행동과 언사를 부드럽게 고쳐간 후세 기록자의 노력은 눈물 겹습니다.

인간적인 종교
결국, 지금의 논의가 성경을 무력화하는걸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애초의 문서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이미 오류를 내포하고 있지요. 아예 과학적 엄정함으로 종교에 대한 입장을 세운 바가 아니라면, 제가 보기엔 변개과정 전체를 기독교의 발달과정으로 이해해야 옳을것입니다. 이 부분은 성서학자인 저자의 견해와 제 생각이 다릅니다.
다만, 이러한 변개 과정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면서, 인간적인 종교관을 갖는게 더 포근할 것입니다. 또한, 종교의 성립과정에 기여한 이상의 몫을 주장하는 교회에 대해서도 색다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겠구요.

유교는 잘 전달되었는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영감과 생각을 했습니다. 심지어 통일교나 제7안식교가 외부 중립자에까지도 이단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지부터, 왜 유교는 경전의 왜곡이 없을까 하는 부분까지 말입니다. 
그리스어 성서가 띄어쓰기가 없어 오독의 여지가 많다고 하는데, 한자는 더하면 더했지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그 방대한 문서에 오독의 여지는 몇글자 수준 밖에 안됩니다. 제 나름대로 답은 있지만, 곱씹어보면 더 재미있을듯 해서 여기서 줄입니다.

책에 대해
한가지 불만스러운 점은 제목입니다. 책은 본문비평학이라는 과학적 방법론을 적었습니다. 다분히 가치중립적인 접근법을 취합니다. 그러나, 제목은 '성경 왜곡'이라고 다소 가치주입적 입장을 취합니다. 물론, 결국 변개는 성경의 왜곡을 낳습니다만, 제목에서 야기하는 선입견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반면, 번역은 마음에 듭니다. 신학을 공부한 전공자의 번역이 미묘한 맥락의 줄기를 잘 쫓고, 적절한 용어를 내내 구사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 관심사에 따라 꽤 재미난 책입니다. 기독교 신학의 과학적, 역사적 변천사를 궁금해 하시는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웨덴: Curious Series  (10) 2010.10.12
게으름에 대한 찬양  (6) 2010.10.02
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  (0) 2010.08.24
워싱턴 퍼즐  (6) 2010.08.15
이젠 블로그에 소셜 댓글을 달 때  (6) 2010.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