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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Inuit 2010. 10. 2. 21:53
제가 존경하는 석학 러셀입니다. 전에 행복의 정복 읽고, 스스로 그의 정신적 제자된 마음이지요. 이 책도, 제목만 보면 3류 수필집 같지만 믿음과 기대를 갖고 읽었습니다.

Bertrand Russell

(Title) In praise of idleness

일단 도발적인 제목의 내용부터 정리하지요. 러셀의 주장은 단순합니다. 근로 자체가 미덕이냐는 의문에서 출발합니다. 전역적 실업으로 인류의 반은 손 놓고 굶는데 나머지 절반은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일하는 인구가 과감히 자신의 일을 반으로 줄여서라도, 나머지 사람까지 모두 함께 일하도록 하자는 뜻입니다. 따라서 게으르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일하지 않음(idleness) 또는 여가에 대한 재조명입니다. 딱히 가해자는 없지만 피해자는 뚜렷한 청년실업 상황의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니 참 탁월한 식견입니다.

책은 러셀의 다양한 컬럼을 엮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막 뽑은 리스트가 아니라 얼마간 글끼리 유기적 관계를 갖기 때문에 러셀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세울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 맘대로 정리해본 러셀의 모습들입니다.


성악설자 러셀
영국 지식인답게 기본적으로 회의적입니다. 교육받지 못한 인간의 본성에는 잔인성이 있다고 규정합니다. 여기까지는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순자와 닮았습니다만, 러셀은 다소 더 따뜻합니다. 인간에 대한 긍정적 믿음이 관통합니다.


실용교육자 러셀
그의 생각은 바로 교육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실용교육이 인간의 기능만 교육하고 목적은 도외시하는 점을 비판합니다. 기능적 인간을 벗어난 목적적 인간에 대한 믿음은 이후에 나오는 다른 사상과 정밀하게 직조된 러셀 사상의 바탕이 됩니다. 
반면, 그의 도덕교육론은 냉정한 합리성이 지배합니다. 인간이 배워야할 도덕관은, 공평무사하고 친절함을 유지하는 자기조절 능력이라고 봅니다. 법조문처럼 정밀하지만, 적극적 휴머니즘은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글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강조합니다. 필요한 일을 공정히 분담하고 불화를 없애는데 동참할 것을 요청하지요. 사실 이게 서구적 인간관의 한 틀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지주의자 러셀
러셀은 끝없는 사고로 나름의 일가를 이룬 사람입니다. 따라서 대단히 지적이고 또 지성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입니다. 심지어, 개인적 불행이든 공적 불행이든, 의지와 지성이 상호작용해야 극복가능하다고 설파하지요.

따라서 러셀의 교육관은 무용 지식을 강조합니다. 꼭 써먹을 데가 없어도, 공부 자체가 재밌지 않냐는 겁니다. 결과적 효용보다 사고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을 가치로 여깁니다. 이런 관점에서 젊은이들에게 힘없는 지성은 냉소로 빠진다고 경계합니다.

러셀이 갖는 지성에의 확신은 세가지 뿌리를 토대로 합니다. 최소한의 상식, 자기직업에의 소양, 증거에 근거해 소신세우는 습관이지요. 특히 셋째 요소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지성인의 덕목은 직관을 절제하고, 관찰과 귀납을 주된 수단으로 삼는 것이라 여깁니다. 저도 십분 동의합니다.

이런 러셀의 주지주의적 성격은 몇가지 재미난 주장을 제공합니다. 예컨대, 공산주의가 육체 노동자를 지나치게 미화하는데 강한 불만을 제기합니다. 어쩌면 지식 산업이 발달하면서 공산주의가 몰락했다고 볼 수도 있으니 그의 불만은 일리가 있습니다. 또한, 앞서 말한 여가를 현명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문명과 교육이 선결 과제라고 합니다. 이 또한 동의할만합니다. 행복의 정복에서 보았듯 상당한 지적 활동과 관심사 없으면 여가는 바로 권태가 되어 불행 요소가 되니 말입니다.


합리주의자 러셀
사실 러셀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합리주의입니다. 합리주의는 러셀 특유한 주지주의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상적 색깔은 합리주의의 응용이라고 보면 됩니다. 

시대를 견주어 보면 쉽지 않을 일이지만, 러셀은 종교에 강한 회의를 제기하지요. 톨스토이의 인용에도 많이 나오지만, 러셀은 종교체계와 메시지가 과연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수용 가능한지 조목조목 짚어 나갑니다.

마찬가지로 민족이라는 가치도 낮게 봅니다. 민족은 단지 정치적 체제를 담기 위한 틀짓기로 간주하지요.
공산주의는 능률을 증대시켜 부를 창출하는게 아니라 노동자를 압제하여 창출하는 시스템으로 매우 강하게 비판합니다. 파시즘은 인류의 일부를 선택해 그들만 중요하다는 점이 문제라 지적하면서 사상적 모순에 빠져있다고 거의 경멸을 하지요.

러셀 보기에 보편적이고 공정한 진리의 유일한 기준은 합리성이고, 인간 종족 으뜸의 요소로 꼽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자 러셀
실행적 관점에서는 러셀은 사회주의자입니다. 필요하면 산업의 이익이 금융의 이익보다 우선 보호되어야 한다는 선명한 입장을 표명합니다. 산업이 공동체적 관점에서 더 중요한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런 러셀이 금 무용론을 펼쳐도 놀랄 일은 아니지요. 금은 자본재가 아니니까요. 

러셀 자신이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와 기계생산체제에 대한 매우 중요한 보완책으로 믿고 있습니다. 사적 이윤동기에 대한 통제와 개인을 조정하는 사회적 관점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방책이 마련되어 있으니 말이지요.


인본주의자 러셀
러셀 사상의 물밑은 인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획일화는 모든 기준을 낮춤으로서 손쉽게 얻어진다"라는 주장에서 알 수 있듯, 몰개성과 규격화에 따른 반인본주의를 거부합니다. 미국을 비판하는 이유도, 기계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이라는 까닭입니다. 마찬가지로, 공산주의는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얼핏 민주적인듯 해도 결국 당파적 비민주에 빠짐을 지적합니다. 

규율이 아무리 현명해도 애정과 접촉을 이기지 못한다는 주장이나, 곳곳에 드러나는 자유로운 성장, 자연스러운 삶과 능동성에의 찬미라는 점에서 그의 통찰은 시대를 관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러셀의 열정과 생의 환희가 선연히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상 몇 가지 키워드로 러셀을 정리해봤습니다. 제가 러셀을 너무 찬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옛날 적은 글이 지금의 후학에게도 심금을 울리고, 다양한 통찰을 제시하고, 적절한 관점을 제시한다면, 그는 분명 합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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