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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반포지효

Inuit 2011. 10. 2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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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잘 마치고 어제 퇴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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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살 찢고 뼈를 깎고 무른 뼈를 다듬는 수술이 어찌 가볍겠습니까만, 그래도 의사선생님의 '가벼운 수술'이란 말에 과대한 희망을 걸었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깬 후, 좀 괜찮겠다 싶어 화장실 가려 다리에 힘을 준 순간, 순수한 고통의 세계를 맛 봤습니다.

인어공주가 처음 다리 생기고 걸을 때 유리 위를 맨발로 걷는 고통에 비했던 동화가 순식간에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게 제법 현실성 있는 마법이구나..

그리고 한 다리에 힘을 줘 딛지 못하는 한,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몸으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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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예정했던 연골성형술은 작게 살을 찢어 내시경을 넣어 시술할 예정이었습니다.

열고 보니 상태가 더 나빠 연골에 구멍을 뚫어 재생을 돕는 미세천공술을 추가로 시전했다고 의사는 말합니다. 그래서 아프기도 꽤 아프지만, 수술 후 발에 힘주어 걸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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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척에 있음에도, 유럽의 도시보다 먼 어디 쯤 있는 것처럼 여겨지던 내 연골은 그간의 경시와 설움을 한번에 복구하려는듯 보입니다. 하루 24시간 쉴새 없이 '나 여기 있었어요'를 각인 시켜줍니다. 심지어 잘 때도 잊기를 한시간 이상 허락하지 않습니다.

연골의 작은 부분이 시원치 않으니 한 다리가 성치 못하고, 서고 걷지 못하니 온 몸의 기능이 원초적으로 변합니다. 

하루에 제법 여러가지 일을 하던 저는, 이제 하루의 목표가 단순해 집니다.
일어나 앉기,
(금식 풀려) 물 마실 수 있기,
(죽 떼고) 밥 먹을 수 있기,
소변 볼 수 있기,
배변하기...

걷기의 위대함과 연골의 가까운 위치를 망각한 죄값으로, 다시 한살 시절의 진리와 법칙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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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뻤던 순간은, 목발이 지급된 날입니다.

목발 덕에 설 수 있게 되고, 풀척풀척 움직일 수 있게 되니 어찌나 기쁘던지.
생활 반경이 침대위에서 화장실로, 복도로 급격히 늘어난 순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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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환자만 아픈게 아니라, 온 식구가 고생입니다.

아내는 하루종일 붙어서 온갖 수발 들어주고, 간간히 짜증까지 받아 줍니다.
딸은, 학원 가기전에, 학원 다녀와서, 정해진 일상처럼 아빠 상태를 살피고 갑니다.
아무리 안 와도 된다 말려도, 누구 닮았는지 고집이 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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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느꺼운 순간은 아들이 이틀 밤을 간병해준 것.

밤에 물도 소변도 혼자 힘으로 볼 수 없던 시기, 낮에 하루종일 와 있던 엄마와 교대하여 밤새 아빠 곁에서 잔 시중을 들어 주었습니다. 

작년 맹장 터졌을 때 아빠가 이틀을 꼬박 지켜준 적 있는데, 그새 컸다고 아빠 시중을 듭니다. 그 마음이 갸륵하고 그 성장이 대견합니다. 반포(反哺)로 효를 행한 까마귀가 자꾸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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