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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 비발디를 추억하며 본문
정태남
(부제) 건축가 정태남의 이탈리아 음악 여행
박종호의 황홀한 여행을 빼 닮았다. 이 책이 박종호보다 먼저 나왔으니 카피캣이란 소리는 당연히 아니다. 두 책의 시각이나 모티브 그리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꼭 닮은 건 사실이다. 박종호가 정태남에게서 영감을 얻었든, 클래식이 건축가와 의사를 이탈리아로 이끌었건간에.
굳이 비견을 하자면, 나는 정태남을 더 재미나게 읽었다. 이탈리아에서 건축학을 한다는 그 자체로 이미 한수 먹고 들어갔다. 건축과 음악이 공유하는 미학은 물론, 언어 자체를 이해하는 상태에서 사물을 보는 폭넓은 관점까지 풍성한 재미를 제공하니 말이다.
예를 들면,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은 건물 자체가 음악의 구성요소이다. 빌라르트와 그 제자들은 산 마르코 성당의 구조를 염두에 두고 작곡을 했다. 건물이 음악을 담는 그릇임을 지나, 악기로서 역할을 할진대 건축가의 예민한 시각은 분명 좋은 길잡이다.
또한, 저자를 따라 각 도시의 유명 음악가를 하나씩 좇아가다 보면, 지리적 일주를 넘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의 느낌마저 난다. 예컨대, 비슷비슷한 음악풍을 보이는 베르디에게 '그는 500개의 협주곡을 작곡한 것이 아니라, 한개의 협주곡을 500번 고쳐 쓴 것'이라고 악평하는 이도 있다고 하지만, 당시 음악은 한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었다는 맥락을 모르면 무지일 뿐이다.
또한, 음악가가 작곡을 하여 청중 앞에서 스스로 연주하는 초창기의 일체형 공연에서, 악보가 발명되면서 아름다운 음악이 다른 도시에서 다른 음악가에 의해서도 연주가 가능한 양산 시대로 넘어가는 상황은, 지금 원음이 고스란히 대량 복제되는 시점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결국, 이탈리아 각 도시의 매력은 음악이라는 키워드로 꿰다보면 새로운 묘미를 맛보게 된다. 사실, 음악 말고 중세 이탈리아를 설명할 최적의 키워드가 또 있을지조차 모르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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