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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서른, 잇백이 필요하다

Inuit 2013. 2. 10. 17:21

한장일

제목에서부터 알아봤어야 할 일이었다.

  
지식노마드에서 선물로 받은 책인데 내용을 들쳐보니 패션에 관한 내용 같았다. 한글도 영어도 아닌 듯한 '잇백'이란 말에 묘한 호기심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책을 보다보면 잇백이 뭔지 알 수 있을까 궁금해 하며. 

하지만, 책 어디에도 잇백이 무슨 뜻인지 설명이 없었다. 결국 아내에게 물어보니, 그냥 최신 유행하는 '그 가방' 정도란다. 인터넷 찾아봐도 그런 모양. 세상에, 그 가방이면 the bag이지 it bag이 뭔가. (soodol님 및 wafe님 제보에 의하면 패션 업계에서 실제 쓰인 적은 있나보다. desire를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내 어휘이고, 이젠 그 쓰임새가 줄고 있다는 위키의 기술 참조. wiki에 의하면 must have 'it bag'이라니 좀 수긍 안가는 신조어임에는 틀림 없다) 국적도 없고 근본도 없는 그 조어 딱 그대로가 이 책의 모습이다.

적어도 패션에 관한 책이면, 실용성을 위주로하든 지식을 위주로 하든 색깔은 있어야 할 터인데, 이 책의 색깔은 한 젊은 패션 종사자의 꾸질꾸질한 패션 에세이에 그치고 만다. 물론 글 재료의 대부분이 블로그에서 온 탓에, 더욱 신변잡기 및 감정 과잉의 단상이 많지만, 이 책은 보는 내내 하품과 눈살 찌푸림이 교차하는 내용이었다. 적어도 내겐, 스스로의 컴플렉스를 옷에 투영하는 한 젊은이의 일대기를 꾸역꾸역 듣고 있기는 솔직히 고역이었다.

중요한 질문 하나 하자. 대체 옷을 왜 입는가? 
몸을 가리기 위해?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짝짓기를 위해?

아마 여러가지 이유가 있고 그 혼합일 것이다. 사람따라 목적이 다르지만, 최소한 본말이 전도된 허영이 옷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브랜드를 주워 삼키고 미세한 차이에 목숨 걸어 컬렉션을 이루는 패셔니스타의 세상은, 셀러브리티를 동경하는 자기만족적 소비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가 옷을 결코 잘 입는 사람은 아니고, 옷 입는 부분에 있어 전문 서적을 통해서도 배울 내용이 많이 있다. 그래서, 생소한 분야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들쳤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건 내가 옷을 입는 것은 TPO에 따라 목적이 뚜렷하다는 사실이다. 시각적, 정서적 메시지를 내기 위한 일관성에 치중한다. 그리고 내 사는 세계에서는 블링블링한 완전체 패션보다 신뢰감 있는 차림새에 포인트가 있는 정도면 패션 센스는 차고 넘친다는 사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다. 서울대 후배 하나가 국내 유수한 벤처 캐피탈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나중에 그 VC 본부장인 파트너와 이야기하다 상세한 이유를 들었다. 꽤나 댄디한 그 후배의 차림새가 너무 깔끔하고 단정해서 아귀같은 그 세상과 안맞아 보여 CEO가 최종적으로 거부를 했다고 한다. 수긍은 안가지만 그런 세상도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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