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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Project L

딸 건축가 만들기: (12) 부석사를 오르다

Inuit 2013. 5. 26. 10:00

주차장에서 일주문, 사천왕문, 해탈문을 지나는 전형적인 구조의 부석사.

그 호젓한 길을 걷는 자체가 부석사 경험이다.


그런데, 가 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다.

부석사 무량수전 사진이 다가 아니다.

어쩌면, 부석사 마니아들이 뜨내기를 못오게 하려 음모를 꾸미지 않을까 엉뚱한 상상을 했다. 배흘림 기둥 하나로 어트랙션을 슬몃 돌려 설정하는 낚시 말이다.
시내 돌아갈 버스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려 택시 번호 하나 따 두고 길을 걸었다.

참 좋다.
사뭇 긴 외길을 걸으며 공간 뿐 아니라 시간축도 함께 이동하는 느낌이다.

부석사의 또 다른 맛은 걷다 문득 돌아보는 풍경이라 했다.

정말 그랬다.
높이마다 내려 뵈는 맛이 다 다르다.


그리고 안양문.

안양문 이전과 안양문 이후의 부석사는 그 경험이 다르다.
마지막 급경사를 허리 숙여 지나고 나면 구름위에 올라선 느낌이 난다.
선계다.


또 하나 재미난 장치.
화엄종 계열은 부처가 돌아 앉아 있다.
서방에 정토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 사찰은 대웅전 앞문에서 마주보인다.
그래서 왼쪽 오른쪽 어디로 들어가도 무관하게 대칭이다.

하지만 무량수전은 다르다. 
반드시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야 부처님이 마주 보인다.
처음 오는 사람에게 이를 어찌 신호할까?

바로 석탑의 위치다.

안양문을 통과해 마당에 오르자마자 석탑이 보인다.
그 석탑은 왼편으로 치우쳐 있다.
자연스럽게 석탑을 지나치면 발걸음은 무량수전 오른편을 향하게 되어 있다.
이 얼마나 은근한 지시인가.
요즘이라면 쉽게 썼을 오른쪽 화살표는,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가리키는 위압없이, 스스로의 의지로 동선을 비튼다.

그 유명한 무량수전.

하염없이 바라봐도 물리지가 않는다.
사진으로 골백번도 더 봤는데, 실재와 마주한 느낌은 다르다.
절집 특유의 총체적 경험이 뒷받침되는게 하나고,
입체와 부피감이 둘째다.


이 쯤되면 배흘림은 큰 키워드도 아니다.
건축쟁이나 호사가들에게 관심이지, 부석사 경내는 고즈넉하고 소박하게 아름답다.
부석사 삼층석탑 높이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백미다.
저 작은 공간에, 나무로 지은 구조물과 돌을 좀 정렬했을 뿐인데,
이렇게 경이로운 감정을 자아낼 수 있을까.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이런게 건축이 세상에 주는 아름다운 가치겠지.

왜 사람들이 부석사 한번 가보면 두고두고 또 찾는지,
김진애 선생은 '부석사 가는길이 항상 설렌다'고 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