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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제주 자전거 일주: Day 1 본문

日常/Project L

아들과의 제주 자전거 일주: Day 1

Inuit 2016. 11. 3. 19:37

아들과의 제주 일주, 드디어 첫째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예약해둔 자전거 샵에 갔습니다. 제주공항 근처에 바이크 렌털 샵이 많고, 대부분 서비스가 비슷합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 선택이 곤란할 정도입니다. 저는 '보물섬 하이킹'이란 곳에서 빌렸습니다. 

자전거 렌털 비용은 대개 만오천원에서 2만원 사이로 비슷합니다. 업체간 차이는 대개 친절함과 신뢰감 그리고 서비스 물품이지요. 미리 전화해서 사장님과 통화해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고, 미리 현금 결제하면 우의, 장갑, 버프, 휴대폰 거치대 등을 다 구비해 주는데다가, 10% payback을 해주니 이곳이 낫더군요.

오늘 일정은 멀고 멉니다.

제주를 한바퀴 도는 환상도로를 240km 봅니다. 4일로 돌면 다소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 학교를 하루 빼고 왔기 때문에 토, 일, 월 3일간 돌아야 합니다.

마지막 날은 저녁 비행기를 타야하므로 시간이 짧아

1일차 90km

2일차 80km

3일차 70km

정도로 배분하는게 3일 돌이의 기준입니다. 그리고 경치가 좋아 제주시에서 서편 애월쪽으로, 즉 반시계방향으로 도는게 가장 낫지요.  

하지만 첫날 90km 구간에 환상도로 최대의 난코스로 알려진 애월구간, 대정송악상 구간이 둘다 포함되어 있어 거리도 멀고 신체적 부담도 큽니다. 동편은 상대적으로 평탄해 서쪽보다 낫다고 자전거샵에서 설명을 해주십니다.

일정이 빡빡해 8시에 가서 바로 자전거 받고 돌려는 생각은 오산. 빌리느라 서류 작성하고 장비 장착하고, 코스 설명과 기타 질의응답 등등 시간 소요가 많아 결국 9시경 출발합니다.

제주시에서 이호태우 해변으로 가는 구간이 위험하니 조심하란 소린 좀 들었지만 정말 황당했습니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아니라 차로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것만도 식은땀이 날 지경인데, 계속되는 위협운전에 어질어질했습니다. 특히 아들을 뒤에 두고 가는데 계속 불안했습니다.

그탓일까 워잉업도 되기 전에 다리에 무리를 해버렸습니다. 10km 쯤 가니 다리가 잔뜩 부어오르며 땡땡해 집니다. 평소에 휘파람 불며 탈 거리인데 말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짐을 줄여도 3일치 옷과 물품이 든 짐가방에 무거운 자전거, 쉴새없는 업다운힐로 쉽지 않은 라이딩입니다. 일단 해안도로로 들어가 바다를 보며 물도 마시고 잠시 숨을 돌립니다.

언제 90km를 가나..?


환상도로는 10개 인증센터가 있고 그걸 찍는게 상징적 목표입니다.

허덕허덕 애월구간을 오르내리며 첫째 포스트 다락쉼터에 도착했습니다.

다락쉼터가 20km. 이제 2/9 왔는데 하늘이 노란 느낌입니다.

다시 또 다음 포스트를 향해 묵묵히 페달을 밟습니다.

정신없이 20km를 더 달리니 두번째 해거름마을공원 포스트가 나옵니다.

이때 작은 문제가 생긴게, 휴대폰 배터리가 위험상태입니다. 원래 보조배터리를 나하나 아들하나 두개 가져왔는데, 아들 폰이 이상해지면서 아침 두어시간만에 보조배터리 두개를 다 잡아 먹어 버렸습니다.

어차피 좀 쉴겸 해거름공원의 카페에 갔습니다. 오전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어 몸도 으슬으슬하던 참입니다. 

이미 12시인데 점심은 좀 더 가서 먹기로 했습니다. 카페에서 몸을 녹이고 사람과 폰을 다 충전하고 아이엄마랑 영상통화를 좀 하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50km 지점 쯤 한경면 고산리에 봐 둔 국수집이 있습니다. 순조롭게 목표시간이 1시에 국수집에 도착했습니다.

꽁꽁 언 몸과 퉁퉁 부은 다리를 하고 받은 국수는.. 정말 최고의 맛입니다. 고생을 해서 더 맛나겠지만, 그걸 빼도 엄청난 맛입니다. 제주 명물 고기국수와 성게국수를 시켰는데, 면이 다 다릅니다. 그리고 주문하면 그때부터 한그릇씩 만드시지요. 일본 라멘장인 같은 느낌이고 전체적으로 유사합니다. 그냥 잔치국수랑은 차원이 다릅니다.

정말 감동스럽게 국수를 먹고 팍팍한 다리를 좀 더 쉬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오전부터 시원찮던 다리가 끝내 말썽이 납니다. 쥐가 나버렸습니다. 

아들이 아무리 젊어도 자전거 매주 타는 내쪽은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천만입니다. 아이는 멀쩡한데 제 다리만 쥐가 났습니다. 아이는 재빨리 다가와 응급처치를 해줍니다. 당장 쥐가나면 어찌할지 막막하더군요. 주물러야 할지 냅둬야할지.. 바늘로 피내는건 아는데.

후딱 인터넷 찾아보더니 일단 마사지를 해주고 파스를 붙여줍니다. 한참 주무르니 좀 낫습니다. 바닥에서 은근 시간을 까먹어 해떨어지기 전에 숙소갈 조급한 마음에 다시 길을 떠납니다.

곧 이어 딸의 전문스러운 조언이 옵니다. 혈중포도당을 다 쓰면 추가에너지를 만드느라 젖산발효를 하고, 그 젓산이 근육세포에 쌓이면 쥐가나는거라고.

빙고.

제가 평소 물만 마시는 무보급 라이더라서 오늘 타격이 컸던 것 같습니다. 급히 비상용 설탕과 초코바를 먹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이후로도 초코바와 사탕 보급을 충실히 했고 뒤로 한번도 쥐는 나지 않았습니다.)

쥐는 이미 나서 무리를 할 수는 없고, 마의 구간인 송악산 구간이 옵니다.

해는 뉘엿거리고 바람은 시려옵니다.

숙소까지 어찌갈지 걱정이 많은데, 하늘은 대책없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던 와중..

긴 언덕의 고개에 오르니 저 밑에 산방산이 보입니다. 드디어 송악산 포스트에 도착했습니다.

긴장했던 것 보다는 시간과 에너지 면에서 수월하게 송악산 포스트에 도착했습니다.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이 페이스라면 숙소에 5시반 해지기 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초코바 하나를 보급하고 다시 출발합니다.

그러나 웬걸. 

죽음의 길은 송악산 포스트 이후입니다. 송악산에서 산방산을 통과하는 길이 미친듯한 업힐입니다.

밥공기를 엎어놓은듯한 카리스마의 산방산을 저는 매우 좋아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산방산이 밉습니다.

평생 안하던 끌바를 하며 업힐을 하나하나 넘습니다.

끌고 가니 평속이 떨어져 거리는 줄지 않고 해는 자꾸 저뭅니다.

이번 여행의 대원칙이 야간라이딩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들의 안전을 위해서지요.

그래서 원래 계획대로 안덕에 숙소를 잡았으면 딱 5시 넘어 도착했을텐데, 불과 10km 더 가는 중문의 숙소는 가도 가도 나올기미가 없습니다. 지쳐 무거운 발걸음에 업힐 끌바를 계속 합니다.

이 속도라면 계산 상 7시에서 7시 반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다운힐 구간으로 몇 km를 계속 내리 쏘면서 순식간에 중문 단지가 가까워집니다. 예정보다 한시간 늦은 6시반에 숙소에 도착합니다. 한 30분 야간라이딩했지만 매우 양호한 페이스로 숙소에 도착하니 부자는 기뻐 얼싸안습니다.

하루를 더 기쁘게 해준건 맛난 저녁이지요.

호텔 스탭 분과 이야기 나누다 현지사람들이 자주 간다는 식당을 소개 받았습니다. 제주 명물인 돔베고기를 먹었는데 정말 맛이 좋더군요. 하루의 피로를 날려주는 맛이었습니다.

이렇게 첫날의 극한 라이딩을 마치고 숙면을 취하게 됩니다.


제주 일주 2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