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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제주 자전거 일주: Day 3 본문
힘들게 이틀 동안 달려온 성산.
전체 여정의 3/4 쯤 왔습니다.
아침에 커튼을 걷어보니 창밖의 성산이 턱 하고 가슴에 들어옵니다.
이 호텔은 조식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도 하지만, 오늘 일정이 바빠 아침 먹으러 나갈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아들의 아이디어로 전날 미리 물부어 먹는 국밥을 사 놓았고, 이날 일정에 큰 효자 노릇을 합니다.
오늘은 약 70km이고 비교적 평탄한 구간이라 생각하지만, 문제는 예약해둔 6시 반 비행기를 꼭 타야한다는 사실입니다. 공항에 여섯시 전에 도착해야 하고, 그 전에 자전거 반납하고 샤워하고 마지막 제주 현지식을 하려면 적어도 세시까지 자전거를 반납해야 합니다. 게다가 오늘 들러야 하는 포스트는 네 군데 입니다.
그렇게 계산하니 시간이 매우 촉박합니다.
그저 길이 도와주기만 바랄 뿐입니다.
길 떠나서 문제 없는 날은 없지만, 마지막 날의 복병은 비입니다.
비 오면 춥고 자전거 타기 힘든 점도 있지만, 길이 미끄러우면 사고 위험이 높습니다. 그래서 내리막이나 평지에서도 속도를 자주 줄여야 합니다. 평속도 떨어지지만 힘도 더 들게 됩니다.
아침에 날씨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
어쨌든 부자는 오늘도 씩씩하게 길을 향해 나섭니다.
오늘의 첫째 포스트이자 환상도로 일곱째 포스트인 성산일출봉입니다.
숙소가 포스트 직전이었기 때문에 10분만에 도착해 하나 거저 먹고 시작합니다.
이제 김녕해변으로 가야 합니다.
거리는 적당한데 평지이기만 바라며 페달을 밟습니다.
비는 보슬보슬 내리고 바람은 맵습니다.
하지만 풍경은 야속하게 운치가 있습니다.
이윽고 김녕성세기 포스트에 도착.
정말 순조로운 출발입니다.
3일차 되니 다리가 무겁고 힘이 덜한데, 그래도 가장 가벼운 시작입니다.
길이 돕습니다.
김녕해변 아름다운거야 유명하지만 더 길게 못보는게 아쉽습니다.
원래 김녕에서 함덕가는 중간에 식당을 봐 놨는데 지금 페이스로 하면 정오 전에 식당 도착하게 생겼습니다. 함덕이나 더 가서 점심을 먹을까 어쩔까 아들과 논의를 합니다. 결론은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아침을 다소 부실하게 먹었고, 아직 괜찮지만 3일차 다리는 미리 좀 쉬는게 전체 라이딩에 도움이 되고, 전체 일정대로면 저녁도 어차피 빨리 먹게 될테니 이른 점심이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출발하고 좀 있다 동복리에 맛난 해산물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11시 40분쯤인데 벌써 식당은 꽉 찼습니다.
이집 명물인 회국수를 시키고 성게미역국과 생선구이를 먹었습니다. 다 맛있습니다.
밥먹고 기운을 차려 다시 페달을 밟으니 금새 함덕서우봉 포스트에 도착했습니다.
아홉번째이자 제주시 귀환 전 마지막 지점입니다.
아름다운 함덕 해변인데 마음은 바쁩니다.
함덕은 우리 가족하고 인연이 없는지 저번 가족 여행 때도 함덕에서 잤는데 비가 와서 아름다운 풍경을 충분히 못 봤는데 이번에도 흐리고 비가와 풍경이 좀 나쁩니다. 그래도 이쁜건 이쁘지만.
함덕에서 조천 통해 제주시로 가는 해안도로는 유독 아름답습니다. 제주 해안 어디가 안그렇겠냐만 여기도 대단한 풍경입니다.
함덕을 출발할 때는 계산상 꽤 여유가 있었습니다. 2시 반이면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주시로 가까워지면서 업힐이 좀 나오고 해안도로가 구불구불해 속도가 떨어지면서 갑자기 엄청나게 페이스가 떨어졌습니다.
분명 제주시 외곽 쯤 있는데, 잔여 거리 9km에 두시 십분. 평지면 40분 거리인데 지금 속도면 세시 반 도착입니다. 비행기 타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원래 계획을 다 실행하긴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아들에게 묻습니다.
"아들아, 시간이 모자라서 샤워와 제주시에서의 저녁 중 하나만 할 수 있다면 뭘 택하겠니?"
"음.. (생각 후) 샤워요."
그렇구나. 저는 일단 맛난거 한번 더먹고 갈 것 같은데 아들은 깔끔합니다.
제주시는 업다운힐이 많고 경사가 깁니다. 도저히 시간을 맞출 방법이 없어 수를 냅니다.
즉 마지막 구간 쯤에서 해안도로로 빠지지 않고 시내로 직선주행을 하기로 합니다. 비가 많이 내린지라 미끄러지고 사람들이 많아 매우 조심스레 라이딩을 해야 하지만, 이 덕에 시간을 많이 줄였습니다.
드디어 환상도로의 시작이자 끝인 그 지점, 용두암 포스트가 보입니다. 예정보다 조금 늦은 세시에 도착했습니다.
이 빨간 부스를 보는 순간 아들과 저는 각자 희한한 탄성을 지릅니다.
스탬프를 찍고, 인증샷도 찍고 아내에게 영상통화를 합니다.
아들과 남편이 사서 고생하는걸 마음졸이며 걱정했을지라 가장 먼저 완주소식을 알립니다. 아내는 우리처럼 기뻐합니다. 완주도 좋지만 두 남자가 무사한 자체가 기뻤겠지요.
이렇게 다 모아진 스탬프를 가지고 용두암 관광안내소에 가면 완주 인증 뱃지를 줍니다.
용두암에서 그리 멀지 않은 렌털샵. 예정보다 15분쯤 늦었지만 후딱 반납하면 일정을 맞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길에서 계획은 계획일뿐.
자전거집 사장님이 문닫고 출장을 나가있어 반납이 불가합니다. 먼저 오신 손님이 전화를 넣었고 부랴부랴 오시는 길이라 해서 이야기 나누며 기다립니다.
결국 자전거를 반납하고 나니 시간이 애매합니다.
우선 근처의 목욕탕에서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합니다. 사우나가 아니라 예전 그 목욕턍입니다. 시설은 안 좋지만 정감이 넘칩니다.
어디 가서 저녁을 먹기는 시간이 부족해서, 느긋하게 씻고 공항에 일찍 갑니다.
맛이 좀 덜하고 가성비가 떨어지지만 공항에서 제주도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고 서울로 떠납니다.
노곤하지만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고 충만한 행복감을 안고 날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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