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호감 스위치를 켜라 본문
유동인구 많은 지하철 역 주변엔 독특한 풍경이 있지요. 전단지 나눠주거나 잠깐만 이야기 하자는 사람들. 전단지는 그나마 간단합니다만, 구호단체에 서명하라는 요청이나 선물 줄테니 모델하우스 같이 가자고 하거나, 기운이 좋으니 조상님께 인사드리러 가자는건 꽤 많은 자원이 소모됩니다. 거절해도 끈질기게 요청이 거듭되는 경우가 많아 성가스럽지요.
그런데 친구나 가족 중 유난히 이런 사람들에게 잘 잡히는 사람 있지 않나요? 여럿이 함께 가도 정확히 그 사람만 찝어서 집중 공략할 때가 있습니다. 농담처럼 '너가 착하게 생겨서 그래'라고 하며 웃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 '착한 친구'가 자기도 모르게 유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어떨까요?
(부제) 아무리 까칠한 사람도 내편으로 만드는 FBI 관계의 심리학
전직 FBI 심리담당 요원인 잭 섀퍼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친구 신호와 적 신호(friend or enemy signal)에 대해 이야기를 한 책입니다.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스파이 블라디미르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저자는 매일 같은 시간에 그와 면담실에서 만나지만 눈길도 주지 않고 신문만 읽고 나옵니다. 이 일을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마침내 블라디미르가 입을 열지요. '왜 매일 와서 신문만 읽고 갑니까?' 저자는 답합니다.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으니까요' 그리고 나갑니다. 다시 이렇게 며칠을 더 반복합니다. 블라디미르는 결국 입을 엽니다. "오케이, 그럼 내가 대화는 하겠소. 하지만 정보는 절대 말하지 않을거요."
짐작하듯, 둘의 대화는 그때부터 수일동안 이뤄지고 결국 블라디미르는 수사관이 원하는 정보를 술술 다 이야기합니다. 고문도 강압도 없었습니다. 친구를 위해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다소 극적인 스토리지만, 여기엔 저자가 주장하는 친구공식이 있습니다.
친구감 = 근접성 + 빈도 + 기간 + 강도
즉, 저자는 철저히 계산된 행동을 한 겁니다. 심리적 장벽이 있는 블라디미르에게 억지로 무언가를 하기보단, 그저 같은 방에 머물다 가는 일을 반복함으로 비언어적 메시지를 보냅니다.
'나는 너의 적이 아니다. 위협이 아니다.'
그러면 신문은 무엇일까요. 바로 강도를 강화하는 장치입니다. 익숙해져 요원에 대한 경계심이 풀릴때면, 왜 매일 신문을 읽는지 궁금해지겠죠. 바로 신문은 호기심을 통해 블라디미르가 스스로 다가오게 하는 매개체였던겁니다.
이후로 책은 친구와 적이 되는 비언어 신호, 즉 신체행동에 대한 예를 듭니다. 그리고 언어적인 부분에서 친밀감을 쌓거나 분위기 냉랭해지는 부분에 대해 정리합니다. 이를테면, 상대 이야기를 잘 듣고 공감을 잘 표현하고 긍정적 반응을 많이 보여주라는 식입니다. 반면, 너 vs 나, 옳고 vs 그름 등으로 나누지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내심 기대가 컸지만 실질적인 팁에서는 아주 인상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겐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커뮤니케이션에서 늘 강조하는 사항들인 경청과 긍정, 통합적 접근이라는 틀은 같으니까요.
오히려, 책의 사례들이 재미납니다. 특히 FBI에서의 활동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귀빈 파티에 저자를 투입해서 인물 관계를 파악하는 임무가 그렇습니다. 저자는 사람들의 발 각도와 스킨십 등을 토대로 친밀도를 추정해 관계도를 그려냅니다. 포섭 작전의 경우, 지극한 인내심을 바탕으로, 마음에 반역의 씨앗을 심어두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고 조장합니다.
하지만, 어떤 내용은 사례를 위한 사례와 주변적 내용이 많습니다. 말미로 가면서 텐션은 엄청 떨어지는데, 사랑의 심리학이나 인터넷에서 사람 사귀고 걸러내는 법 쪽으로 가면 이건 일본 실용잡서와 구분이 어려워지기도 하네요.
Inuit Points ★★★★☆
책을 읽다 문든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현지 주재원의 심리적 포지션이지요. 한국에서 보면 그냥 한 직원입니다만, 현지 가보면 다릅니다. 출장간 직원의 가이드이자 집사이며 친구가 되죠. 주재원과 일주일 일정을 함께 하고 나면 급속도로 친밀감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주재원들이 '의전'에 목숨거는 이유의 좋은 설명이 됩니다. 책에도 실제 중국에서 미국의 과학자를 초대하여 현지 가이드를 통해 모든 걸 보살피고 극진히 대해주면, 아무 요청 하지 않아도 마지막 강연 때는 기밀사항을 술술 설명한다는 사례가 나옵니다.
반면, 제가 이쪽 전공이 아니라 아카데믹한 배경이 부실하니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저자의 심리학 토대가 요즘 나오는 책에 비하면 구식입니다. 학문에 구식이 뭔말이냐 싶겠지만, 유전적 토대에 대한 내용은 최신 신경학의 연구결과에 비견하면 수십년전 가담항설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는 지점들이 더러 보입니다.
아마도, 이 책의 옳은 사용법은 편히 즐겁게 읽고 몇가지 새겨둘 점을 찾는겁니다. 결국 자주 보이고 기분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으료 여겨지고, 친구가 된다는게 제겐 새삼 와닿았습니다. 인간의 심리학적 기제가 무엇이든 인간관계에 대한 오래된 통찰과 통념은 진실에 가까우니까요. 그리고 이건 동양 고전의 지혜랑도 많이 통하는 내용입니다. 별 넷 주었습니다.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주를 향한 골드러시 (2) | 2021.04.03 |
---|---|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0) | 2021.03.27 |
타이탄 (0) | 2021.03.13 |
나는 왜 도와달라는 말을 못할까 (0) | 2021.03.06 |
오모테나시, 접객의 비밀 (0) | 2021.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