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본문
1️⃣ 한줄 평
'Instant best seller'란 말이 과장이 아니다.
♓ Inuit Points ★★★★☆
글의 가치가 글쓰기 노동의 원가에 직결되는건 아니지만, 공들인 글은 티가 납니다. 책은, 창작의 노고란 측면에서 이미 높은 점수를 주게 됩니다. 예술이 무엇인지 알고자, 보스커는 폐쇄적인 예술계에 투신하여 의문을 풀어갑니다. 갤러리의 잡부 역할, 아트페어 세일즈, 전시 큐레이터, 작가의 보조 역, 미술관의 경비원까지 다양한 역할로 일하며 우리 모두의 궁금증을 탐문합니다.
'대체 저게 어떻게 예술이지?'
노고만 대단한게 아니라, 글이 매끄럽습니다. 술술 잘 읽혀요. 내내 흐르는, 자학 개그와 좌충우돌 뚝딱거리며 미술계를 휘젓고 다니는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매우 재미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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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커는 와인업계의 이면을 다룬 베스트 셀러 논픽션 '코르크 도르크'에 이어, 이번엔 예술계로 침투합니다.
- 취재 윤리가 인상적입니다. 대화 내용은 저술에 쓰일 수 있다는 상대의 인정 하에서 이뤄진 대화만 인용하고, 동의를 얻지 못한 내용은 아예 쓰지 않습니다.
- 그럼에도 속물적이거나 비열한 날것의 내용들이 많아 흥미진진합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입원해 있는 동안 읽었는데, 복잡다단한 병실에서도 유일하게 집중이 잘 되던 컨텐츠가 이 책이었습니다. 큰 위안이었죠.

Get the picture
: A mind-blowing journey among the inspired artists and obsessive art friends who taught me how to see
Bianca Bosker, 2024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책은 시계열로 적혀있습니다.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이라고 불리우는 난해한 작품들에 의문을 품습니다.
저게 왜 예술이지? 현대 예술은 왜 대중을 따돌릴까. 어쩌면 거대한 사기극일까.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인간에게 왜 중요하지?
천상 글쟁이인 저자는 직접 미술계로 뛰어들어 이런 뜬구름 같은 질문의 답을 찾습니다.
처음엔 315 갤러리란 곳에서 무급 잡부로 일합니다. 뉴욕 미술계의 좁은 세상, 그 문법과 문화의 맛을 봅니다.
이어 데니 디민이라는, 좀더 대중적인 갤러리에 보조로 취업합니다. 역시 무급이죠. 여기에선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습니다. 마이애미 아트페어에 참가해 미술작품을 직접 팝니다. 또 홍콩 브랜치의 전시를 맡아 큐레이션도 합니다.
계속 작품을 파는 사람들 이야기만 듣다가 예술의 본질을 알고 싶어, 줄리 커티스라는 작가의 보조작가가 됩니다. 작업도우미를 하며 예술가가 아름다움을 보는 관점, 작품 자체를 만드는 지난한 과정을 배웁니다.
이어, 미술계의 끝판왕, 권위의 성채, 미술관에 취직합니다. 구겐하임 뉴욕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미술관과 관람객, 작품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몇년간의 직업을 전전하는 이야기인데, 매우 유머러스합니다. 자학개그의 달인이기도 하지만, 전문 작가 답게 자아를 내려놓고 미술의 문외한으로서 독자의 눈높이로 조심스레, 거침없이 '고상한 미술계'를 부지런히 답사합니다.
저자의 깨달음이 재미납니다.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그 순간
- 의식의 감압 밸브 (틀에 박힌 정신을 자유롭게)
- 낙관의 몸짓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
- 행복에의 약속 (스탕달)
- 시각은 환시 = 기대의 필터 (filter of expectation)
결국 아름다움은 우리를 깊이 존재하도록 만드는 예술의 기초 요소입니다. 다만,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미감을 넘어, 미적 경험으로 확대되는게 동시대 미술의 역할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술인가?
- 삶을 음미하고, 음미할 가치가 있는 삶을 창조
- 이미지가 집단의 상상력이 되는
-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게 되는
- 인위적 꿈 (꿈이 관념의 일탈 연습이라는 전제로)
- 현실에서 줄기치고, 가지치는(제한을 거는) 시도를 막는 순간
결국 예술은 신선한 경험입니다. 이는 새로운 취향을 찾고, 다채롭고 풍요로운 자아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예술은 명사 아닌 동사고, 좋은 취향이란 예측불가능하며 변화가능한 마음가짐이라 말합니다.
예술계의 음모
책에서 상당 부분 다루는건, 뉴욕 에술계의 폐쇄성입니다. 이들은 안목(eye)과 맥락(context)라는 매직 워드로 자신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습니다.
전가의 보도인 맥락은, 자기들만 아는 정보입니다. 작가의 출신, 성장 배경, 지인과 인맥, 소속 갤러리 등이죠. 툭툭 점찍은 그림, 휙휙 그어진 작품, 변기를 뒤집고 화장실을 가져다 놓은 작품은 그 작품 자체보다, 그 작가가 게이인지, 이민자인지, MFA 학위가 있는지, 누구의 영향을 받은 건지 등등의 배경과 맥락으로 해석합니다. 독점적 정보에 기반하죠. 따라서 그 해석은 외부인은 당황하다 아, 그런건가보다 하는 관점의 비대칭만 양산하죠.
물론 그 맥락이란게 매우 주관적이니, 단언하기 어렵겠죠. 그래서 그들은 좁은 세상을 구축합니다. 작가에게 작품활동보다 중요한게 오프닝 행사에서 눈도장 찍는거고, 말조심하며 평판 관리하는 거라고 대담히 조언하는 갤러리스트들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가십을 '반향정위' 삼아 공통의 맥락과 맥락의 서사를 구축하고 그들 내부에 공유합니다. 신성한 허구가 창조되는 순간이죠. 저자는 한참 이 세상을 들여다본 후, 집단 지성을 표방하며 실은 '집단 무지성'으로 가고 있는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맥과 평판에 목매고 맥락을 찾는게 그야말로 고맥락 사회(high context society)네요.
안목(eye)은 맥락을 잡아내는 능력입니다. 결국 그들 세상의 멤버십이지 예술 자체에 대한 안목이 아닙니다. 적절한 태도는 '애쓰지 말고, 지루해보이지 말고'입니다.
그래서 이중적입니다. 돈을 무엇보다 원하면서도, 돈 이야기는 터부시 합니다. 심지어 돈 주고 작품을 사려해도 안 팝니다. 과거 어떤 작품을 샀고,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어필하지 않으면 중소 컬렉터에겐 살 기회도 안 줍니다. 물론 대형 컬렉터는 다른 기준을 적용합니다. 예술계의 신이라 불리우는 그들은, 보통 창고가 있느냐로 구분됩니다. 뭐가 있는지도 잘 기억 못하고 대식가처럼 사들이죠. 이 컬렉터에 대한 에피소드도 나오는데, 진상 많습니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에 '좋아요' 눌렀다고 아침부터 찾아와서 소리를 지르고 가거나, 성적으로 치근대거나, 살땐 고상하게 사고 돈 줄 땐 미루고 회피하는 증 별별 인간이 많네요.
결론적으로 저자의 시간별 행보처럼, 갤러리에서만 머물렀다면 많은 실망을 하고 끝났을 여정이 발견의 기회가 됩니다. 예술가들이 가난과 고난속에서도 아름다움에 헌신하는 모습, 소액 컬렉터가 기쁨에 들떠 작품을 헌팅하러 다니는 마음, 미술관 경비를 하며 40분간 못 움직여 한 작품만 바라보다 스스로 감동에 휘감기는 아하의 순간들을 통해, 보다 보편적인 예술의 진실을 엿봅니다.
결국 예술은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일상에 부드러운 균열을 내고, 그 틈을 통해 흘러드는 우연성을 바탕으로 삶을 더 고양하는 좋은 계기입니다. 익숙함을 생소하게 하고, 생소함을 익숙하게 만든는, 갤러리스트가 작품해설에 클리셰처럼 쓰는 만트라가 일견 진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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