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은 숙제 하나를 내주시며 다음 주까지 해오라고 하셨다.
클라이드 삼촌이 내준 숙제는 간단했다.

"너의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일이 있겠지?
그 가운데 이번 주 안에 할 수 있는 것 세 가지를 적어보거라."

반드시 일 주일 내에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했다.
다시 말해서 세 가지 일 모두가 '시간이 많이 안 걸리고, 하면 즐거우며, 분명히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침이었다.

내가 첫 주에 만든 목록은 이랬다.

* 대중 음악 및 음반 업계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을 산다.
* 교육 기관에 전화해서 강습료가 얼마인지 물어본다.
* 내슈빌 네트워크를 시청할 수 있도록 케이블을 신청한다.

사실 이 세 가지는 그 전에도 충분히 생각한 것들이지만 이런 일들이 내 꿈을 실현시켜줄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나에겐 소용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어쨌든 난 삼촌의 방법을 따라보기로 했다.


잰 프레이저 등의 '네 안의 여왕을 잠깨워라' 중에서 (조선일보사, 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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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inuit 2004.05.07 21:49

    <주켄 사람들>

    마츠우라 모토오 지음

    왕현철 옮김

    거름 펴냄

    1만원





    길옥윤(吉屋潤)은 광복 직후 그룹 ‘핫팝’을 결성해 주한미군 클럽에서 연주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했다. 길옥윤이라는 예명은 이 때 지은 것. 그는 1963년 무렵 귀국해서도 이 예명을 그대로 쓴다. 본명은 최치정. 국내에선 ‘길’을 성으로, ‘옥윤’을 이름으로 여겼지만 일본에서는 ‘요시야(吉屋)’가 성이고 이름은 ‘준(潤)’이었다.



    요시야 준은 일본에서 당대 제일의 색소폰 연주자로 꼽혔다. 길옥윤은 당시 최고의 트롬본 연주자 히가시모토 야스히라(東本安弘)에게서 한 10대 젊은이를 소개받는다. 고교시절부터 트롬본을 분 그 젊은이는 히가시모토 추천 덕분에 오디션 없이 요시야 준의 재즈 오케스트라로 참가할 수 있었다.



    1950년대 초반 어느 날, 요시야 준은 그 젊은이에게 물었다.

    “재즈 곡을 몇 곡이나 외우고 있나?”

    “300곡 정도는 연주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는 “마음을 담아서 연주할 수 없다면 외웠다고 할 수 없네”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자네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린 사람이 있나? 한 사람의 마음에 말을 걸어 본 적이 있냐는 말일세.”



    그런 연주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시야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매일 자네의 온 마음을 담아서 한 곡씩만 외우도록 하게. 3년이면 1,000곡이 넘지. 그것이 바로 진정한 프로가 되는 길일세. 자네가 음악을 계속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라는 점을 명심하게. 나는 인생은 얇은 종이를 한 겹 두 겹 겹치는 거라고 생각한다네. 그렇게 몇 년이고 쉬지 않고 겹친 두께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지.”



    그 젊은이, 마츠우라 모토오(松浦 元南·69)는 음악을 본업으로 삼는 대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거쳐 65년 주켄(樹硏)공업을 차린다. 사명은 합성수지, 즉 플라스틱을 연구하는 회사라는 뜻으로 지었다.



    ‘마츠우라가 쓴 주켄공업 책을 소개한다더니. 왜 이렇게 길옥윤 얘기가 길어지나.’ 이렇게 핀잔하실지 모르겠다. 여기서 직접 마츠우라의 설명을 들어보자. “히가시모토 야스히라, 요시야 준, 키와다 칸지(木和田寬二), 이 세 사람은 내게 인생과 기업 경영의 모든 근본을 각인시켜 주었다.” 키와다는 마츠우라가 고교시절부터 연주한 무도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마츠우라에게 아무 조건 없이 대학 학비를 빌려줬다.



    마츠우라는 키와다에게서 다른 사람의 선의를 믿는 자세를 배웠다. 히가시모토에게서는 ‘기술이란 고단한 작업을 통해 몸에 익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요시야는 그에게 ‘인생이란 느리고도 기나긴 여정이며, 진실은 그 여정에서 매일 한조각씩 쌓아나감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주켄공업 사람들은 ‘키와다의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마츠우라 사장은 직원들의 개성을 살려줬다. 경영학을 전공한 사무직 여직원이 금형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자 바로 자리를 옮겨줬다. 어학연수를 원한다면 누구나 보냈다. 연수 기간은 휴직처리했지만 상여금은 지급했다.



    금형공장장은 중학교만 마치고도 기어 금형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됐다. 어느날 그 분야의 권위자가 공장에 들렀다. 공장장은 그 박사를 붙들고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박사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토의를 했네”하고 흡족해하며 물었다. “자네는 어느 대학원에서 공부했나?”



    한 고졸 여직원은 입사하면서 수치제어(NC) 공작기계를 다루게 됐다. 학창시절 숫자와 담을 쌓고 지냈던 이 여직원은 4,5년간 NC공작기계를 작동하면서 숫자와 친해졌다. 이젠 미적분 문제도 술술 풀어낸다.



    괄목상대할 변신은 이뿐이 아니다. 한 가지 사례만 더 들면, 다른 고졸 엔지니어는 해외 제휴 공장에 출장을 다니면서 영어와 독일어를 배웠다. 그는 두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놀랍게도 이들은 여러번 걸러서가 아니라 선착순으로 채용한 사람들이었다. 주켄공업은 학력도, 성별과 국적도 따지지 않는다. 이력서도 요구하지 않는다. 채용된 사람 중엔 폭주족 출신들도 있다.



    마츠우라는 또 직원들이 능동적으로 일할 여건을 제공했다. 주켄공업에서는 다들 스스로 판단해 움직인다. 해외출장 때에도 아무에게도 결재받지 않는다. 일과 관련해서는 형식을 따지지 않았다. 점심식사가 장시간의 신기술 개발회의로 이어지기도 한다.



    세계 최초 10만분의 1g, 100만 분의 1g 기어 개발도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됐다. 2002년에 만든 100만분의 1g 기어는 직경이 0.14㎜에 불과하다. 이렇게 미세한 제품에 대한 수요는 아직 없지만, 주켄공업은 세계최초 기록을 통해 기술력을 인정받아 해외매출을 늘릴 수 있었다.



    미세가공 기술은 수요처를 옮기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마츠우라 사장은 “주 수요처를 가전에서 통신과 디지털기기로 옮길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가전제품 등에 들어가는 부품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70%에 이르렀지만 이제는 10% 정도에 불과하다.



    요시야 준의 가르침은 품질관리에서 엿볼 수 있다. 주켄공업은 30년 전부터 품질관리 데이터를 완벽하게 보관해왔다. 작업 시간을 오전, 오후, 야간으로 나눠 각각 생산된 품목의 샘플을 관련 서류와 함께 정리해놓고 있다.



    주켄공업은 자동차와 통신기기, 디지털기기 등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기어를 만든다. 이에 필요한 금형과 사출성형기도 제작한다. 80년대 중반부터 해외로 진출해 대만·한국·독일·영국 등에서 11개의 합작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는 88년에 진출해 한국수연공업의 지분 약 13%를 갖고 있다. 일본 아이치(愛知)현 본사에서는 임직원 90명이 연간 약 30억 엔의 매출을 올린다.



    마츠우라는 말한다. “우리는 세계의 대기업들이 요구하는 핵심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 “세계의 많은 첨단제품에는 초정밀부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부품은 우리 중소기업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 금융부실을 딛고 되살아나는 일본 제조업의 저력이 전해지는 대목이다.



    이 책은 일본에서 지난해 출간됐다. 지난 4월 초 KBS ‘일요스페셜’에서 이 회사를 소개한 왕현철 PD가 우리말로 옮겼다.

    -문기자 홈에서 퍼옴 (http://africa7.cafe24.com)

  2. minibest 2004.05.08 08:58

    두분 홈피의 내용교류가 참 활발하시네요.
    보기 좋습니다.

    나두 언넝 동참할수 있어야할틴디....ㅠ,.ㅠ

  3. db 2004.05.08 21:36

    지난 일요스페셜에서 주켄공업의 사례를 보았습니다. 전형적인 일본 부품 전문 체의 강한 면모에 인상이 깊었는데 이런 behind story가 있었군요.

    아무나 선착순으로 우선 뽑고, 신입 사원이 최대한 자신의 적성을 찾을 수 있도록 끝까지 배려하여 세계 최고의 마이크로 기어 업체로 우뚝 설 수 있다는게 믿어지지가 않더군요.

    더욱 가공할 만 한 건, 위의 내용처럼 철저한 자료 관리입니다. 기술 meeting시에 오고 갔던 세세한 내용이 도면 모퉁이에 빼곡이 기록되어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공, 배경과 무관하게 어떤 사람이 해도 그 일에 흥미를 같고 열정이 있으면, 문제 없이 할 수 있나 봅니다. 소위 지식경영체제가 자발적으로 창사이래 존재해온 것이죠.

    "지식경영체계가 잘 잡힌 회사는 별도의 &#039;지식경영(또는 KMS(지식경영시스템))&#039;자체가 필요없다."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사례였습니다.(BSC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죠.)

    요즘 제조업에 종사하는 저의 한 지인의 말에 의하면 그 회사(국내 대기업 중 하나)가 최근 KMS(지식경영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정작 지식 공유 문화 자체보다는 어떤 시스템과 장비를 쓰는가를 놓고 몇 달씩 갑론을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면, 우리 기업들이 갈 길이 너무 먼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이런 변화의 여지가 적은 대기업에서 지식공유 문화 만들기의 선봉장이 되어 빡씨게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것도 좋겠으나, 창업해서 아예 시작부터 지식공유문화가 강한 기업으로 시작하는 편이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주켄공업 사례...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런 회사가 벌써 이 세상에 있는 걸 보면, 이를 능가하는 기업이 조만간 탄생하지 않겠습니까?

  4. BlogIcon inuit 2004.05.09 10:33

    미니베스트//
    언제 홈피 열거야? 전에 진행중인것으로 알고있었는데 영 소식이 없네.


    db//
    다른 닉하고 db하고 용도가 따로 있남? 궁금하군.. ^^

  5. qnseksrmrqhr 2009.11.12 14:20

    문득 만화영화 속의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세계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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