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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부활 YES!] 브루투스의 연설은 끝나가고

Inuit 2009. 9. 16. 20:00
기원전 44년 로마.

나, 안토니우스는 5년전 카이사르와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넜다. 좌익을 맡아 폼페이우스와 일전을 벌였고, 그를 물리쳤다. 적수가 없어진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에 취임했다. 그러나, 왕정에 심한 거부 반응이 있는 로마다. 그의 업적은 인정하지만 그의 야심이 어디까지일지 의문의 싹이 트고 있었다. 너무도 평온해 괜히 불안한 그런 봄이다.


3월 15일. 브루투스와 14인은 원로원에서 카이사르를 살해했다. 사태 파악조차 안돼 어리둥절한 시민들, 그 앞에서 브루투스가 연설을 한다.

내가 그를 죽인 것은, 카이사르를 덜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로마를 더 사랑해서였습니다. 여러분! 카이사르가 살고 여러분이 노예로 살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카이사르가 죽고나서 여러분이 자유시민으로 살기 원하십니까? 진정 비천한 노예로 살고 싶은 분이 있으십니까?

말 한마디로 상황이 애매해졌다. 브루투스가 누군가.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두루 유학을 거친 인재 중 인재다. 그런 그가 양아버지나 다름없는 카이사르를 살해했다. 그러나 그는 대의 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 

옳지 않다. 그리고 좋지 않다. 이대로 브루투스의 공화파가 권력을 찬탈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그러면 내 경력은 물론, 목숨마저 끝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내 차례다. 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브루투스는 제 아비와 같은 사람을 죽인 파렴치한입니다.'
지금 저 자는 로마의 자유라는 대의를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카이사르는 영웅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그를 죽게 한 자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카이사르의 독재를 문제 삼고 있지 않는가. 영웅이란 말이 뜬금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안된다. 약하다. 말타고 싸우는건 항상 자신 있지만, 말 싸움은 가장 자신 없다. 그래서 카이사르도 날 일컬어 전쟁 시대의 기둥이라하고, 애송이 옥타비아누스를 평화 시대의 왕자라 했던 터이다. 

내 강점과 돌아가는 상황을 곰곰히 생각한다. 난 카이사르의 유언장을 갖고 있다. 내가 유언장 집행인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유언장은 모두가 놀랄만한 내용이다. 어떻게 이를 극대화 할까. 자칫 잘못하면 말도 못 꺼낸다. 서슬 퍼런 브루투스 일당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카이사르가 죽어 저희가 자유를 얻는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라면 유언장이 무의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게다가... 난 어눌하다. 

브루투스가 열광속에 연단에서 내려온다. 날 보며 웃고 있다. 나는 연단에 오른다. 입에 침이 바싹 마른다. 난 무슨 말을 할까... 결정했다.

친애하는 로마 시민 여러분. 전 카이사르가 위대한 분이라 말하려 이 자리에 선게 아닙니다. 전 그냥 장례식에 참석했을 따름입니다. 브루투스는 훌륭한 분입니다. 그가 말하길 카이사르가 야심을 품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럴겁니다. 여러분이 기억하듯 카이사르는 로마제국의 왕관을 세번이나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브루투스가 그분이 야심가라 말했다면 아마 맞을겁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유언장은 좀 다른 듯 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 유언장이 보고 싶으십니까? 

(군중들 큰 소리로 호응한다.) 

그러면 제가 그리로 가서 여러분께 보이고 직접 읽어도 되겠습니까?

(관중들 호응에 힘입어 안전한 군중속으로 이동한다.)

저는 이 유서를 읽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이 유서는 괜히 여러분을 흥분시켜 저 훌륭하고 고매하신 브루투스께 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군중들 내용이 궁금해 안달을 내다. 읽어줘!) 

여러분께서 정 원하신다면 제가 읽겠습니다. 카이사르는 수도 로마의 모든 시민에게 은전 75냥을 골고루 나눠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한, 테베레 강가의 별장은 여러분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기증했습니다. 
이런 그를 야심가라고 합니다. 말 한마디로 여러분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브루투스는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 그래서, 말 주변이 없어 여러분의 마음을 격동시킬 재주가 없는 저를 골라 이렇게 추도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단순하게 밖에 말할 재주가 없습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어떤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카이사르는 이제 갔습니다. 우리가 또 그런 이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 뒤 브루투스 일당은 로마에서 도망치고, 옥타비아누스와 연합한 안토니우스는 공화파를 물리친다. [각주:1]

 

세상과 마주한 순간
한 마디 연설이 감정의 방향을 뒤튼다.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안토니우스 사례도 그렇다. 저 연설은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기초한 셰익스피어 버전이다. 실제로 안토니우스 연설의 정확한 대본은 남아 있지 않다. 살해 당일은 시민들이 공포에 질렸고, 브루투스 일당도 혼비백산해서 흩어졌을테니 저런 연설 대결 자체가 없었으리라는 설도 있다. [각주:2]


그러나, 안토니우스가 대중 앞에서 연설한 사실은 분명하다. 당시 그가 당면한 상황은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세상이었다. 말 한마디로 민심의 향배가 갈리고, 그 결과에 따라 권력의 무게중심이 옮겨진다. 안토니우스는 더 큰 권력을 쥐게 되거나, 실각하여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만일 당신이 그 자리에 섰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이게 과연 기원전 44년, 로마에 있었던 안토니우스 만의 일일까. 불확실한 미래에 마주하여 몸으로 부딪는건 인류의 태생적 본질 아니던가. 사람이 우주에 가고, 유전자의 비밀을 알아낸 지금 21세기까지도. 


중요한 점이 있다. 소설 읽듯 역사의 순간을 음미하는건 쉽다. 그러나 드라마 같은 격동 속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어떤 말을 했을까.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숨 가쁘다. 한 순간의 행위가 미래를 결정한다. 또 매 순간이 축적되어 역사가 된다.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뤄진다. 그 상호작용은 소통 또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방법이 매개한다. 그러나 그 소통은 결코 쉽지 않다. 세 가지 이유다. 커뮤니케이션의 상대방이 어떤지 잘 모르고, 내가 준비가 덜 되어 있으며, 어떤 상황인지 어떤 점에 주안을 둘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소통의 법칙이다. 쉽게 여겨져도 막상 잘하려면 어려운게 커뮤니케이션이다. 게다가, 경제적, 사회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어떨까. 의욕은 하늘이고 밑천은 바닥인게 대부분 직장인의 현실이다. 


하지만, 방법이 있다. 역시, 앞서 말한 세가지 이유에 답이 있다. 우선, 소통의 상대방을 이해하고, 커뮤니케이션의 상황을 파악한 후, 마지막으로 적절한 메시지와 전달 방법을 구사하면 된다. 이 책에서 그 방법을 보자.

[잉여부활 YES!]


책의 원래 도입부입니다. 긴박한 심리를 묘사하려 초단문을 구사했습니다. 독자가 몰입하면 호흡이 잘 맞고 눈으로 읽으면 좀 거칠게 느껴집니다.
안토니우스 사례는 마지막 순간까지 편집자 분께서 손에 들고 계시다가 눈물을 흘리며 도려냈다는 장면입니다. 나쁘진 않지만, 길어서 맥이 빠지는 관계로 다이어트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결국, 편집자분께서 이 부분 다시 살려서 서문에 넣어주셨습니다. 다시 살아났습니다. (09sep21) ^^
  1. 영화 "Julius Caesar" (1953) 참조. [본문으로]
  2. "로마인 이야기 5권", 시오노 나나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