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인간이 있었을진대, 최초의 말은 어땠을까요?
처음 말한 사람은 누구이며, 왜 말을 했고, 들은 사람은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Christine Kenneally

(원제)The first word: The search for origins of language


사실 제 블로그에 자주 들러주시는 이웃분들의 지적 수준이라면 진화론에 대해 열린 마음과 기초적 이해를 하고 있을테니, 언어의 진화적 성격을 상상하는데 큰 거부가 없을겁니다. 하지만, 정작 언어학계에서는 이런 관점을 드러내는 자체가 불경을 넘어 이단시 된다는 사실을 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촘스키 가라사대
이유는 지식인의 아이콘 노암 촘스키(Noam Chomsky) 때문입니다. 1959년 스키너를 학문적으로 저격하고 일약 스타가 된 촘스키입니다. "모든 언어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보편문법을 가지며, 인간은 언어를 위한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났다"라는 선언으로 세상을 놀라게한 촘스키입니다. 그로 인해 오지에서 단어를 긁어모으던 행동파 언어학계가 책상에 앉아 언어의 엄밀한 추상성을 담론하는 과학계의 일원이 되었으니 그 환호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론체계가 없었던 곤궁한 언어학계에 촘스키의 우아한 이론은 구세주와 다름없었지요.


촘스키의 그늘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늘도 깊은 법. 촘스키 DNA는 학계 전반에 걸쳐 퍼질정도로 우성이었고, 그 결과 언어학 모든 곳에 촘스키 이론을 적용하려는 경향이 생기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기본적으로 촘스키 이론은 언어의 출현에 대한 비연속적 입장을 견지합니다. 그래서 그 번쩍이는 순간을 찾으려는 집단적 헛수고가 지속되면서 언어의 시초에 대한 의문은 미궁으로만 빠지게 되지요.
불만스럽게도, 이 책의 어조 역시 그러합니다. 저자는 촘스키의 촘만 나와도 매우 조심스러운 논의 전개를 합니다. 책의 주제는 촘스키의 명제를 전면 부정하지만 단어와 문장에서는 슬몃 객관의 영역으로 물러섭니다. 그만큼 촘스키 파의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언어의 출현
책은 언어의 출현과 발달 과정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꼼꼼히 망라했습니다. 동물세계의 소통 연구, 몸짓에서 출발한 원시 언어, 단어로 개념을 범주화하는 인식적 작용, 언어에 있어서 지시와 모방이 갖는 필수성, 협업적 요구도로 언어를 수용하게 하는 뇌구조 등을 잘 정리했지요. 결국 언어는 진화의 단계에서 인간과 함께 발전한 도구입니다.


언어 바이러스
책의 메인 테마는 아니지만,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 있습니다. 언어를 인간의 부수적 기능으로 보는게 아니라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는 바이러스로 보는 관점입니다. 이는 언어가 언어 자체의 생존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된다는 점에서 과학적 근거를 갖추지만, 그 보다는 언어의 성격을 설명하는 상징체계로서 유효합니다. 즉 언어는 인간의 문화와 함께 공진화(co-evolution)했다는 개념이지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문화가 있어야 말할 거리가 생기니 언어를 자극하고, 다시 그 언어로 문화가 전수되고 교류되니 서로 도우며 독립적으로 발전하는 두개의 축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인간, 원숭이
그 동안 간과하다가 이번에 새롭게 관심갖게 된 부분은 인간의 진화적 생존이력입니다. 잘 알려진대로, 1400만년전 대형 유인원류들이 진화를 거듭하다가 오랑우탄이 7백만년전에 갈라져 나가고, 고릴라는 6백만년전에 갈라져 나갑니다. 그리고 불과 100만년전에야 현생 인류의 조상과 침팬지, 보노보가 분화합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은 원숭이나 고릴라가 아닌 침팬지, 보노보인거죠.
제가 새로 배운 부분은 네안데르탈인입니다. 저는 인류의 역사 과정중 일부인줄 알았는데 호모 사피엔스의 곁가지더군요. 심지어 호빗이라는 별칭을 가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는 만3천년전까지 살았다가 멸종했습니다. 아마 이런 사촌들과 호모 사피엔스는 이종 교배를 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겠지요.


인간의 미래
인류가 진화론적 실험에서 현재까지는 성공한 종이란 사실이 재미납니다. 어떤 유전자 변이는 종의 절멸을 가져왔는데 우린 잘 던져진 주사위의 조합으로 살아남은거지요.
반면, 우리의 문화, 언어, 기술의 발전으로 호모 사피엔스 개체 자체가 진화론적 다양성을 죽여가고 있다는 점은 새삼 다시보게 만듭니다. 글로벌화로 인해 인종적 특징을 잃고 점점 균질화 되고, 유전적 문제로 대가 끊길 집안이 (미안한 말이지만) 살아남고, 농작물을 넘어 인간까지 확장되는 설계형 생물들의 존재가 증가하고, 의학의 발달로 바이러스와 세균의 내성을 강화시키는 추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지구적 시간관으로 보면 인류의 멸종은 시간 문제로 보입니다.


갈라파고스의 사고실험
이 책의 가장 재미난 부분은 마지막 장입니다.
생존의 걱정은 없는 상태라 가정하고 한 무리의 아기들이 갈라파고스 섬에 당도했다면, 몇세대 후에 언어가 발생할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몇명의 아기가 필요할까요? 발생한다면 그 언어의 형태는 어떠할까요?
여기에 대해 언어진화학자를 포함한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가 인터뷰형식으로 실려 있습니다. 이 부분만 읽어도 책의 주요 주장은 이해가능합니다.

언어를 통해서만 사고가 가능한 인간, 그 인간이 스스로의 언어를 추적하는 어려운 길, 그 길의 초입에서 정밀도 낮은 지도를 그려보는 필사적 노력이 있다면, 이 책이 바로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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