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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격

Inuit 2011. 11. 29. 22:00
쉬운 질문 하나.
여러분 목숨의 가격이 얼마 정도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 * *


대부분 무한히 크다라는 답을 하실 겁니다.
하지만, 이건 레토릭이지 정량적으로는 유한한 목숨의 가격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진짜 무한하거나 엄청나게 높은 금액을 가정합시다. 그러면 외출 중 사고를 당할 확률이 0.0000001%라 해도 손해의 기대값은 무한대 또는 매우 큰 값이 되므로 외출의 효익보다 비용이 크게 됩니다. 따라서 외출을 하지 않는게 옳은 전략이지요. 반면, 집에 있다가 사고를 당할 확률도 외출시보다는 낮을 뿐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것도 쉬운 선택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매번 이런 계산을 하지 않고도 우리는 많은 행동을 합니다. 

물론, 실제로 정확히 정량화하지 않아 위험을 과소평가 하기도 하지만 분명히 우리 마음속에는 목숨의 가격에 대한 어림산이 있습니다.

실제 정량화는 어떨까요?
목숨의 정확한 가격을 산정하는 것이야 수많은 변수가 있기에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목숨의 가격을 매겨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많고, 생각외로 많은 참조 가격이 있습니다. 미국의 환경보호국 지침에는 750만달러, 영국 환경부는 연간 3만파운드를 책정합니다. 인도인은 9만5천달러 정도로 평가됩니다. 수요와 공급, 소요 비용(cost incurred) 등이 조합된 가격이라고 보면 됩니다. 비정한가요?
 
여기에도 대량 할인(volume discount)이 있습니다. 911 테러의 희생자 보상기금에서는 인당 평균 200만 달러를 지급했습니다. 물론 이 때는 합리적 준거보다 보상 기금의 총액이 하방압력으로 작용했습니다. 특이하게도, 부자들은 합의를 거부하고 소송을 걸어 평균 500만달러를 받았다고 하니, 목숨 값에도 신분/계급의 영향이 작용을 합니다.


Eduardo Porter

(Title) The price of everything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다룬 빌 브라이슨에서 더 나아가, 에두아르도 포터씨는 '모든 것'의 가격을 다뤄보고자 야심을 불태웁니다. 물론, 가격은 이 책의 테마이지, 실제 맥락은 경제학의 응용을 이야기합니다. 다만, 경제학이 일반 인문학과 명백한 선을 긋는 무기인 정량화, 그중 가장 명징한 상징인 '가격'이라는 구조를 통하면 인류 행동의 숨은 원리를 엿보는 대단한 흥미를 자아냅니다.

예를 들어, 간통은 보다 나은 짝을 찾도록 돕는 시장(market)기능을 합니다. 수컷은 혼인의 제약을 넘어 더 많이 번식을 도모하고, 암컷은 한정적 기회인 임신의 효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 나은 수컷의 유전자를 탐색합니다. 즉, 혼인은 암수가 모두 투쟁하는 사회적 긴장을 줄이는 규제로 작용하는 한편, 유전자 레벨에서는 간통으로 은밀히 최적화를 이루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새들에게 간통이 일반화된 점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당연하게도, 이 책의 주장은 간통을 옹호하자는 취지가 아닙니다. 다만, 혼인이 갖는 비용 대 효익, 그리고 그 제도가 갖는 불합리함이 있을 경우, 간통이든 일부다처제든 또다른 사회적 제도가 보완을 하게 된다는 기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은, 같은 각도의 문제의식으로 행복의 가격, 노동의 가격, 문화의 가격, 신앙의 가격등을 꽤 심도깊고 지루하지 않게 해부합니다. 가격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노예, 임금노동자, 불법이민자는 호환 가능한 생산요소입니다. 다만 각 요소별 비용과 효익의 시대적 변화에 따라 사회적인 기저를 달리 형성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문화라는 다변수 인문현상도 '사회적인 집단가격체계'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책이 그러한 입장을 대변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사 고귀한 개념들에 감히 가격을 붙이는 천박한 논변이라 폄훼할 일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무리가 따를지라도, 기존의 세상을 새로운 렌즈로 볼 때 무수한 통찰과 배움이 융성하기 때문이지요. 

덧붙이자면, 저는 해답 없이 냉소와 비관적 궁구의 세상에 머물기만 하는 경제학에 대해 실망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인 경제학의 응용은 앞으로도 더욱 풍성하게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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