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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찬모임 단상

Inuit 2012. 5. 3. 22:00

얼마 전, 정부기관에서 주최하는 조찬 모임에 갔습니다. 크게 실익은 없는지라 이런 자리 잘 안가는데 그래도 1년에 한두번 정도는 가게 됩니다.


1. 일찍 일어난 새

사실 강남에서 7시반에 모여 아침 먹는다는게 식사 자체로만 보면 참 매력없는 일이지요. 분당에서 출발하려면 다섯시 반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 일식당의 모든 룸이 각종 조찬모임으로 꽉 찬 것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족히 2백명은 될 것 같습니다.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 많고, 열심인 대한민국입니다. 그 열기가 제겐 가장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2. 조찬의 경제학

C-level 들의 경우 시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개 아침  약속은 없으니 다소 자유로운 계획이 가능해 생긴 조찬 모임입니다. 모임마다 특성이 다릅니다. 어떤 모임은 연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테이블별로 네트워킹을 목적합니다. 이날 모임은 업계 동향 및 산업 의견 청취가 목적입니다. 서로 무언가 내놓고 무언가 얻어가는 지식교환이 명백하고 활발합니다. 어떤 모임은 돈을 내고 밥을 먹으며 교환을 하고, 어떤 모임은 주최가 밥을 사주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3. 말 맛

참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많다는 점을 새삼 느꼈습니다. 오늘 모임은 업계 CEO들, 교수, 리서치 기관, 국책연구소, 증권애널리스트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자기주장이 강한 CEO 한분과 교수님 한분이 이야기에 과욕을 부립니다.

이야기의 분량이 많은건, 그냥 성품이려니 이해하고 넘어가려는데, 우리 회사가 가장 정통한 분야에 대해 오버를 하십니다. 되는대로 결론을 내리는데 트렌드도 팩트도 인사이트도 다 거꾸로입니다. 그저 말 자체를 즐기시는 느낌입니다. 그 주제의 최신 동향과 미래에 대한 관점을 짧지만 명료하게 설명해 드렸습니다. 올킬은 했지만, 여기 왜있나 싶었습니다. 밥(정확히는 죽) 사준 값이라 생각해야겠지요.


4. 막말, 도돌이

전혀 곁가지 이야기였지만, 의미없이 말씨름만 이뤄진 이슈가 있었습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인력을 끌어가는 것이 중소기업의 애로라는 CEO들의 푸념과,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인데 그걸 어떻게 인력으로 막겠냐는 관료출신의 냉정한 커멘트가 불꽃을 튕겼습니다. 문제는 이날 모임의 목적과 부합되지 않는 주제란 점이지요. 단지 감정적인 인계선 때문에 화제가 물밑으로 들어갔다가 또 떠오르고 잠잠해지면 다시 그 화제로 돌아가는 이야기구조가 참 답답합니다. 지켜보기에 몹시 성에 안차는 구석은 있는데, 달리보면 그게 사람 사는 모양새겠지 싶기도 합니다. 


만약, 5년 후 같은 멤버로 모인다면, 더 성장해 있을 분과 역사의 뒤켠으로 가 계실 분들이 보이더군요. 짧은 시간이지만, 말로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말로서 죄를 짓고, 말로서 미래를 만드는 그 오묘함에 대해 깊이 느낀 아침식사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