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은 앞을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세상을 보기로 선택했다."

간결한 마디인데, 홀린듯 책을 읽어가게하는 문장입니다.

 

저자는 갈수록 시력을 잃는 병에 걸려 실명했고, 여성이고, 이민자 시크교도 집안의 자식이라는 기구한 조건으로 태어납니다. 이후 스탠포드에서 공부하고 선택의 심리학에 관한 석학이 됩니다.

 

운명의 기구함이 저자를 채근했고 숙고하게 만든 주제는 바로 선택입니다. 무엇이 운명이고 무엇이 우연일까요.  와중에 선택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Title) The art of choosing

Sheena Iyengar

제일 처음 인상 깊었던건 선택의 문화적 맥락입니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에서 선택은 달리 작용합니다. 선택할 이외의 주변까지 고려하는 집단주의적 성향은 동양에서 많이 발현됩니다. 이건 우열이 아니라 차이입니다.

 

예컨대 가장 몰개성적이고 가혹한 집단주의적 결정인 중매결혼이 만족도에서 우위를 보인다는 점은 놀랍습니다. 10 차이를 두고 조사해보면, 연애결혼이 70% -> 40% 하향할 중매결혼은 58% -> 68%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중매는 공유가치와 목표를 미리 맞춘 결혼이라 그렇습니다. 실은 연애 결혼이란 개념 자체도 최근에야 나왔습니다.

 

공평성 선택에 중요합니다. 동독의 사례가 재미있습니다. 공산 독일 시절에는 선택의 여지가 적은 대신 모두가 선택을 있었다면, 통일 독일에선 선택의 가짓수는 늘었지만 선택할 금전적 여력이 없어지고 불행해졌다는 이야기는 의미 심장합니다.

"예전엔 휴가 곳이 헝가리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모두가 휴가를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나 있지만 돈이 없소이다."

자율성 어떨까요. 개인주의가 대두되면서 선택이 지고의 선이 되었지만 자유롭게 선택할 있어서 자유로와야 하는 의무까지 떠안는 선택의 역설도 우리의 선택을 어렵게 합니다.

 

생체레벨 내려가면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란 개념마저 모호합니다. 유명한 '현수교에서의 사랑' 실험처럼, 우린 외부 환경이 주는 가슴 콩당거림이 내적으로 우러나오는 사랑이라 착각하고,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존재니까요.

 

게다가 선택지 지나치게 많으면 우린 오히려 선택을 못하기도 합니다. 잼의 종류가 많으면 안팔린다는, 교과서적 예제인 실험을 주도했던 저자입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렇게 선택의 어려움을 장황하게 풀어놓았을까요. 불확실성과 임의성이 작용할지라도 선택하는 자세로부터 삶이 이뤄지기 때문일겁니다. 그래서 그의 삶을 녹인 마지막 말이 온전하고 결의에 차있습니다.

 

나는 X만큼의 운명과 Y만큼의 우연속에서 Z만큼의 선택을 하고 살겠다.   

 

Inuit Points ★★★★☆

기억 안나는 어떤 책에서 언급해서 기록해 뒀던 책입니다. 절판이 되어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이름으로 복간이 되었네요. 이전 번역서의 제목은 '선택의 심리학'이고 원제에 부합되긴 하지만, 어찌보면 너무 재미없는 교과서스럽기도 하니 제목의 의도는 알겠습니다. 나온지 10년 되어 다소 낡은 관념과 예제도 보이지만, 6천만년 짜리 인간의 심리란 크게 변할리 있나요. 책의 다양한 사례를 읽는 것만으로도 알차고 재미납니다. 우리의 마음을 관조적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는 얻게되지요. 나는 선택하기로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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