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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임에 관해 본문
나이 들면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에 대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생 10대 사건을 설문해보면, 평균 여섯 개가 15세에서 30세에 몰려 있다고 합니다.
개인마다 편차는 있지만, 첫 키스, 첫 캠퍼스, 첫 직장, 결혼과 아이의 탄생 등 엄청난 순간들이 그 시기에 이뤄지지요. 그 뒤로는 그런 인상적 순간은 간격이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물리적 시간과 달리, 인상과 의미의 시간은 후딱 간다는 결론입니다.
실제로 기억은 감정으로 물든다는 게 뇌과학의 핵심 발견이기도 합니다. 처음의 생경함, 설레이는 불확실성이 기억을 강화하는거죠. 그런 면에서 설레임은 시간을 순간으로 쪼개고 세월 속에 박제하는 중요한 호르몬 작용이기도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설레임은 오래 사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하고,다채로운 기억으로 유년 같은 날을 보내니 말입니다.
뜬금없지만, 2020년 코로나19는 인류에게 큰 질문 하나를 던진 것 같습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인류 멸절의 3대위기 중 하나로 전염병을 지목했으나 이런 미약한 수준의 질병을 생각했을까요. 치사율은 낮지만 확산성은 매우 높은 애매한 바이러스. 의료상태가 아주 나쁘지 않다면,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와 노약자에게는 치명적이고, 대개는 낫는데 크게 무리 없는 정도.
그렇지만 코로나19는 그 절대적 감염력이 공포 같습니다.
우리 욕 '염병'으로 응축되는 사회적 터부와 공포는 현대에 다시 되살아 난 모양새입니다. 조선 마을에 '문둥이' 지나간 자리 확인하듯 확진자의 동선을 모두 숨죽여 지켜봅니다. 매카시즘 시대에 '빨갱이' 만난 사람 죄다 잠재적 스파이 취급하듯, 내가 만난 사람이 우발적 '확진자'가 아니길 기도합니다. 한명의 직원이 확진자거나 고객이 매장을 다녀가면 재수 옴 붙지 않게 셧다운 하고 씻김굿과 살풀이를 해야 액을 면하는 정서가 놈(norm)이 되고 있습니다.
머리로는 대략 괜찮겠다 싶지만서도 마음은 의심하고 회피합니다. '백에 하나 죽는 그 하나가 바로 나인 블랙스완 이벤트면 어쩔건데?'
그래서 반응도 제각각인듯 합니다. 매우 움츠려든 사람, 아랑곳 않고 더 무모해진 사람, 화를 못이기고 여기저기 싸우고 다니는 사람, 응원하며 도우러 길로 나선 사람, 이와 상관없이 평소 미운 사람 욕할 재료로 생각하는 사람. 이성과 합리를 말하면 시시해 보이고, 과장과 편갈라치기가 주목을 받습니다.
확실한건 육체의 기저질환 뿐 아니라 마음의 기저질환을 더 잘 드러내는게 이번 코로나19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설레임과 코로나는 그래서 한 궤로 생각됩니다.
코로나19는 공포로 사람들의 기억을 물들였고, 어떤 식으로든 집단심리적 면역체계로 편입되어 흔적이 남을듯합니다. 마스크를 좀 더 일상의 패션으로 수용하고, 손씻기와 소독이 더 일상화되고, 목이 간지러울땐 드라큘라 기침하는게 보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설레임을 말려 버리는거죠. 임시지만 많은 사회적 활동이 정지해버렸습니다. 수다 모임도, 비즈니스 미팅도 무한 연기입니다. 입학도 개학도 미뤄졌습니다. 결혼도 아예 미루거나 가족만 두고 간소하게 치르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심지어 가장 날것의 사회적 모임인 스포츠 행사도 사라졌습니다. 농구와 배구는 리그가 정지되었고 축구는 평생 처음 보는 일이지만, 개막을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잦아들면 물론 다시 복원될거라 믿습니다. 늘 그랬으니까요. 그럼에도 어쨌든 올 연초 우리의 설렘은 사라졌고 고립과 고독이 잠시라도 유례없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코로나19의 생채기가 깊게 남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제 곧 코로나가 사라지면 다시 만남과 회합과 설레임이 다시 만발하겠지요?
마지막 설레본적이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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