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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퍼를 든 셰프, 스토리가 있는 저녁 본문
지인 소개로, 미슐랭 받았다는 삼청동의 프렌치 레스토랑에 갔다.
이곳은 매번 코스요리의 컨셉이 있는데, 전에 갔을 땐 '별의 향기를 맡다'는 주제로 어린왕자가 나오고 그랬다. 이번엔 영화테마라고 한다.
메뉴와 빵 차림부터가 심상치 않다.
처음엔 영화 매거진에 이 식당이 소개되어 잡지를 디스플레이 해 놓은줄 알았다. 그게 아니고 그냥 매거진을 차용해 메뉴를 만들었단다. 전체 코스가 영화의 키워드로 구성되었는데 소개하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다.
뉘벨 퀴진 계열의 프렌치 요리에서 셰프가 내는 한턱인 아뮤즈 부시. 그냥 예쁜 애피타이저 같지만, 내면은 다르다. 영화관의 3대요소인 땅콩, 팝콘, 오징어를 재료로 쓰고, 트러플 같은 재료로 프렌치스럽게 해석했다.
여기서 이미 머리를 띵 한대 맞은 느낌. 아뮤즈 부시가 그날 식사 코스의 세계관으로 입문시킨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생전 처음 실감을 했다.
오늘이 내러티브. 달걀 껍데기에 달걀 노른자와 갖은 재료를 써서 만든 스프 같은 느낌이다. 셰프님이 이게 복선이라고 직접 스포일러를 시전하셨다. 음식이 복선이라니..? 오히려 기대가 된다.
이번 코너의 제목은 콘트라스트라고 하신다. 그냥 타르타르 같은데 콘트라스트라니요? 했더니, 다 붉은 색 같지만 재료의 콘트라스트라고, 마치 기다린듯 답을 하신다. 자세히보니, 붉은 한우와 붉은 비트라는 재료가 상응하고 대조되어 있었다. 천잰데?
이젠 다음 코너의 컨셉이 막 기대되기 시작한다. 이번 순서 프와송은 디졸브. 영화의 장면 전환 기법이다. 어간장 폼 위에 구운 생선을 올렸는데, 콘소메를 부으면서 폼이 녹아 걸죽한 소스가 된다. 동양의 어간장이 서양의 콘소메로, 고형이 액상으로 변하는 동적인 상전이에 탄성이 나왔다. 범인은 이 안에 있..
보자마자 플레이팅이 아름다워 헉 소리가 났다.
이 코너는 뭐죠?
미장센입니다.
더 설명이 필요 없었다.
비앙드에 해당하는 뵈프 부르기뇽의 이름은 몽타주. 한우를 와인으로 졸인 반면, 나머지 재료는 굽고, 끓이는 다른 방식으로 조리해 몽타주한 컨셉이라고 한다.
이날 모든 플레이팅이 이뻤지만, 이건 정말 입이 딱 벌어졌다. 프로마주 위에 튀일이라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뭔가 거품을 튀겨 만들었다는) 또 다른 에고를 조합해 페르소나라고 이름 지었다. 화려하다.
식사의 마무리 단계다. 이번 코스 이름이 데자부. 처음의 내러티브가 다시 보인다. 이번엔 흰자로 요리한 누가다. 아까의 복선에 상응하고 수미가 상관하게 만들어져 떡밥을 회수한다.
디저트와 카페는 스케일로 승부하는 느낌. 셰프님 설명으론 비오는 촉촉한 땅을 밟고 영화관을 나와 현실로 가는 단계라고 하신다.
이렇게 꿈꾸듯 식사를 하고 자리를 파했다. 맛은 기본이고, 이 정도 스토리와 컨셉이 있어야 미슐랭 식당이 되는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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