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함민복 스마일 본문
부제: 최애시인 알현기
성덕, 되다
제 최애시인은 함민복 선생입니다. 하도 떠들고 다녀 제 지인들은 많이 알죠. 거미줄 같이 연약한 연을 조심히 부여잡아, 그를 직접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만남 과정도 글 한편이 될만큼 드라마틱합니다만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죠.
인사, 드리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시집 한권을 공통점으로 마주 앉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만나본 시인은 극도로 수줍음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말을 붙이면 상냥하게 답하지만 가만 있자면 해질때까지 입을 열지 않을 느낌입니다. 아주 가벼운 질문들로 시작합니다. 시와 산문에 나오는 그의 '김치국물 사촌형', 강원 산골에서 결혼한 친구분, 여진호 승준씨 등 잘 지내시는지 묻습니다. 반면, 그의 심원인 어머니, 아버지, 형, 예당에서 개나리에 젖어 전화한 옛사랑 이야기는 꺼내지 않습니다.
근황을 필두로, 짧은 동안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다음 시집은 언제 나오나요?
올해는 원고 넘기려고요. 몇 개만 마무리하면 될 것 같아요.
시인님은 시상을 단번에 써내리시나요, 아니면 오랜 시간 입에 굴리세요?
쓰고 또 고쳐씁니다.
책에 보면 명지바람 같은, 엄청나게 예쁜 우리말, 구수한 사투리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 시어는 어떻게 잡아내시는지요?
어렸을적 집안 형편이 그래서 전 할머니, 어머니의 입말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문청시절 우리말 대사전을 통째로 필사하며 단어를 익혔습니다.
요즘 몰두하는 주제가 있으신가요?
(답을 들었으나 새 시집의 근간이라 스포일러 방지.
핵심은 그의 뻘, 수직-수평, 그림자 등 여러편에 걸쳐 천착한 주제의식 처럼 이번에도 그런 테마가 있다는 점.
그리고 그의 작법을 귀동냥했는데, 이분은 철학하듯 시를 쓰십니다. 예컨대 이번 주제가 세모다 치면, 세상 모든 것에서 세모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머리에 며칠이고 지니고 다니며 삶과 이어지는 장면들을 지켜봅니다. 이를 위해 파일럿을 만나면 칵핏에 삼각형이 몇 개 있고 어디 있는지를 묻습니다. 길에서 건물에서 자연에서 세모를 찾습니다. 그 몇 년 세월을 몇 편 시에 녹입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쉬운 말로 써있지만 깊은 울림이 있나봅니다.)
마지막 질문이 제가 시인을 만나기전부터 궁금하던 궁극의 질문입니다 라포가 쌓일때까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입니다. 동료 시인도 아닌 독자가 묻기엔 주제 넘을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요.
시인이라면 흔히 겉멋이라고 불릴수 있는, 스타일리쉬함이나 수수께끼같은 개념어를 쓰고 싶은 욕구가 없진 않잫아요? 시인님도 젊은 시절엔 그런 경향이 없지 않으셨고요. 하지만 세월 지나면서 담백하고 쉬운 말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시인님을 시인님답게 만들며 제 최애 시들이 된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되셨나요? 의도적으로 노력하신 부분이 있나요?
제가 대학에서 창작을 배울 때 저희 스승님이 해주신 말이 있습니다. '시는 아름다움이라는 꽃과 의미란 열매가 함께 해야한다. 절대 꽃의 찬란함에만 현혹되지 마라. 열매를 잊는 순간 너의 시는 무용하다.'
그래서 꽃의 화려함을 피하며 열매를 생각하며 써왔던거 같아요.
깨달았습니다. 그의 시들 모든 아름다움 중 어느 하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없다는걸요.
인격이란 도끼를 세월이란 숫돌에 갈고 갈아 건져낸 바늘이란 걸요. 그의 시를 문체와 주제에 따라 그려보면 우상귀에서 시작해 내려갔다 좌상귀로 가는 스마일 형태입니다. 그의 잔잔한 미소와도 닮았죠.
잊지 못할,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시가 삶속으로 스며드는 대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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