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탐식수필 본문

Review

탐식수필

Inuit 2020. 12. 12. 07:32

라면 먹을 어떤 취향이신가요?

면을 그대로 넣는다 vs 접어 넣는다
스프 넣고 끓으면 면투입 vs 면이 익으면 스프 투입
꼬슬한채로 먹는다 vs  부들부들 익힌다
계란을 추가한다 vs  계란 절대 반대
햄이나 참치를 넣어도 좋다 vs  햄참치 결사 반대
대파를 넣어도 좋다 vs  절대 반대
치즈를 마지막에 올려도 좋다 vs  치즈 절대 반대

갈래가 있지만 전형적인 선택지고, 조합에 따라 라면의 맛은 무궁하게 달라집니다. 취향이 사람마다 다를테지요. 작지만 장대한 라면 세계관에는 호화현상, 캡사이신의 지용 프로세스, 끓는점의 화학 아니라, 어릴 어머니의 보살핌의 추억이나 추운날 따끈했던 기억까지 한사람의 세상이 레시피에 녹아있습니다. 그래서 라면 레시피는 쌍둥이도 다를수 있습니다.

 

 

프렌치 쉐프, 정상원의 책은 매우 매력적입니다.

라면 하나를 파도 과학과 인문학, 정서와 추억, 위와 혀가 반목하고 다시 화합할진대, 다양한 음식과 요리라면 얼마나 세상이 중첩되어 있을까요. 유전공학을 전공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요리를 배운 저자입니다. 그가 유럽 여러 곳을 방문하며 레시피와 재료, 그리고 여러 마을 주방과 식탁의 정서를 토대로 적은 책입니다. 그래서 책은 저자를 닮았고, 한편의 프랑스 요리 같습니다.

 

장제목만 봐도 이게 뭐지 싶습니다.

  • 래디컬한 래디시: 재료에 관해서
  • 오븐에 5: 조리방법
  • 최대한의 식사: 프랑스 코스 요리
  • 최소한의 식사: 기내식, 호텔조식, 백반, 타파스, 거리와 시장의 음식들
  • 기술을 기술하는 기술: 미감의 미감을 바탕으로 코스 요리 설계하는 이야기

지나친 말장난(pun) 2 같은 느낌도 들지만, 이리 일관되게 공들였다면 중의어도 저작의 일부 같습니다. 추천사를 신지영 교수는 파인 다이닝을 넘은 '파인 워딩'이라 표현했습니다.

 

장 안의 글들도, 잘게 한입 분량으로 잘라져 있고, 뭉치는 간결하되 품이 많이 들었습니다. 함께 여행을 하는 생생한 거리와 음식의 사진도 볼만하지만, 단어마다 느껴지는 치열한 탐구정신이 백미입니다. 어느 곳을 가도 곳의 지리, 역사, 음식사를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음악, 어원, 지명, 와인, 치즈, 커피에 이르기까지 음식의 잡학사전처럼, 딱히 당장 어디 쓸데는 없어도 쉼없이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싶은 음식처럼, 지식과 이야기가 빼곡합니다.

 

욕심을 많이 부리다보니, 사실관계가 바르지 않은 부분도 더러 있긴 합니다. 예컨대, 사크레쾨르는 빠리 꼬뮌의 원점이 아니라 꼬뮌해체후 흩어진 마음을 세워보려 건립한 성당입니다. 영국음식 맛없다는 농담의 일환으로, 영국에서 기네스가 제일 맛있다고 했지만, 이건 일본 음식 최고가 김치라는 격이지요. 꼰대가 프랑스어 백작(conte)에서 왔다는 민간어원설도 요즘은 거의 폐기된 가설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소한 흠을 굳이 적는 이유는 책이 결함있다는 내용이 아니라 반대입니다. 음식과 식재료를 하나 봐도 종횡무진 탐구하는 정상원 쉐프 특유의 기질이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엽적인 이야기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일을 오랜만에 먹는 퀴진을 찬찬히 곱씹을 때나 겨우 자잘함이죠.

 

이렇게 적어놓으니 책이 지식만 있는 위키같이 느껴지겠지만 정확히 반대의 스타일입니다. 굳이 이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꼽자면 수필입니다. 세계 각지의 요리와 식재료, 조리법이라는 날실위에 저자의 생각과 세상을 보는 따스한 시선, 과거의 추억이 씨실처럼 단단히 잡아매 아름다운 옷감이 책입니다.

 

그럼에도 지식 차원에서 추천하고 싶은 챕터가 있다면 프렌치코스를 소개한 '최대한의 식사' 편입니다.

Amuse bouche - aperitif - hor d'oeuvre - entre - plat - fromage - desert - petitfour 이어지는 프랑스 정찬의 코너별 의미와 전체 흐름을 어떻게 가져가는지 알아두면 먹는게, 사는게 재미나집니다. 저자 한다리 건너 지인이라 두번 정도 그의 식당에 방문을 했었고, 출판 이후에 나온 영화 테마의 코스는 별도의 , '클래퍼를 쉐프'란 포스트로 따로 적은 있습니다. 블로그에 음식 후기는 아마 처음 썼을겁니다. 먹는 내내 ' 사람 천재네' 싶었고 기억을 잊고 싶지 않았었기 때문이죠.

 

Inuit Points 

글이 프랑스 요리를 닮았습니다. 매우 공들였고 글재료도 고급스럽지만, 섬세한 장식이 곳곳에 박혀있습니다. 무엇보다 전체 읽는 리듬이 일관되며 꼼꼼히 설계되었습니다. 저자 후기에 유기화학 리포트 이후로 가장 글을 적었다고 합니다만, 인생의 식품공학 리포트일지도 몰겠습니다. 줍니다.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켑틱  (0) 2021.01.09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0) 2020.12.19
운과 실력의 성공방정식  (0) 2020.12.05
공부란 무엇인가  (0) 2020.11.28
괜찮고 괜찮을 나의 K리그  (0) 2020.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