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이 이상한 것을 믿는 이유는, 그들이 별로 똑똑하지 않은 이유로 갖게 된 믿음을자신의 똑똑함으로 쉽게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셔머

지적설계론자들의 진화론 부정은 별로 새롭지 않을뿐더러 재미까지 없습니다. 뭔가 말이 통해야 논쟁도 의미가 있지, 현학적 수사와 말꼬리잡기, 메신저 공격하기, 급하면 차단 후 잠수 논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오래된 블로거이자 제가 존경하는 쉐아르님 같은 경우, 기독교인이지만 합리적 사고와 인간애가 체화된 분이시지요 . 그러다보니 쉐아르님 포스팅은 온갖 창조론자 사이비 과학자들의 콜로세움이 서는 곳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한번 댓글을 봤더니 이런 주장도 있더군요.

"매번 말을 바꾸는 과학은 가설의 덩어리일 뿐이다."

하아.. 내가 현재 믿고 있는 사고체계가 있더라도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거나 내 믿는 바의 증거가 확인되지 않으면 생각을 포기하고 설명력 높은 인과관계를 찾아보자는게 과학 핵심입니다. 가설과 검증 또는 폐기는 사고방식으로서의 과학이 갖는 아름다움이자 강력함의 원천인데, 가설을 자꾸 바꾼다고 과학은 거짓말이라니.

 

Skeptic: viewing the world with a rational eye

이런 얼치기 학자는 당연히 미국에도 있고 전세계에 있습니다. 허버트 스펜서는 심지어  19세기(!)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진화론이 충분한 증거가 없어 못 받아들인다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론을 지지하는 증거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신경쓰지도 않는듯 보인다."

결국 사람은 믿고 싶은대로만 보인다는 편향(bias)에서 벗어나기 힘든 맞습니다. 그나마 원시상태의 뇌가 제대로 작동하게 돕는 방법이 합리주의와 회의주의지요.

 

책은 회의주의의 태두, 사이비 과학의 사망여우 마이클 셔머가 오랜 기간 '스켑틱'이란 잡지에 실은 컬럼을 모아 엮었습니다

전체 내용은 유사한 카테고리로 분류를 뒀습니다. 창조론자의 헛소리를 조목조목 반박도 하, 대체의학이나 유사과학에도 회의주의의 렌즈를 대봅니다. 영매와 텔레파시 같은 초자연 현상에서부터 외계인과 UFO 대한 신화같은 믿음까지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심지어 과학의 엘리트 주의와 '동료의 검토(peer review)' 기피하는 가짜 과학에 대해서도 페이지를 할애합니다.

 

저는 외계인에 대한 셔머의 견해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클라크를 패러디한 셔머의 마지막 법칙은 이렇습니다.

"충분히 발달한 외계지성체는 신과 구분할 없다."

신의 속성을 전지와 전능이라고 보면, 우리에게 다가와 보여지는 외계지성체라면 인간보다 '상대적으로' 압도적 전지와 전능을 가졌을겁니다. 그리고 전지와 전능의 속성상, 하등한 개체에게는 상대적 우위와 절대적 우위의 차이를 알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충분히 발달한 외계지성체라면 신과 같이 느껴진다는 재미난 논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이라고 믿는 존재는 외계인이라는 뜻일까요. 셔머는 합리적 추론으로 우리가 사는 동안 외계인을 만날 확률은 적다고 보고 있습니다. 유명한 드레이크 방정식을 이용합니다. 이중 가장 불확실성이 큰게 문명의 수명 L인데, L값을 적절히 추정해보면 우리 우주에 존재할 문명의 숫자는 그리 많지는 않다는게 셔머의 견해입니다. 만일 다른 문명이 존재는 하되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다면, 우주의 크기 상 서로간 거리가 멀어 만나기 쉬운 상황은 아니란 점이죠. 즉 인간 믿음 체계의 신은 외계인은 아닐 겁니다.

 

만나는 확률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해보면, 시간여행도 셔머는 불가능하다는 편에 서 있습니다. 호킹이 시사한 대로, 언제인지 모르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지금' 미래에서 사람이 보여야하지 않겠느냐는 반론인거죠.

 

회의주의는 '못 믿음'이 아닙니다. 사려 깊은 성찰적 탐구의 자세입니다. 생각의 오류를 감시하겠다는 결단이기도 하고요. 셔머 자신이 이야기하듯, 회의주의자는 진실을 추구하는 , 아직 확신에 도달하지 못한 탐구자입니다.

 

그래서 회의주의자의 균형감각이 마음에 듭니다.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정도로 충분히 열린 마음과, 어지간한 헛소리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회의적 태도 사이의 균형 말입니다.

 

Inuit Points 

책은 재미납니다. 과학자답게 글이 간결하며 논점이 명확합니다. 회의주의라는 이름이 지닌 우울한 회색을 떠올리며 읽었지만, 프리즘의 분광같은 다채로움을 맛봤습니다.

 

셔머는 과학을 반대하거나 과학을 오용하는 헛소리(baloney) 단호할 , 세상에 대한 시선은 따뜻합니다. 책의 마지막 장은 화해의 제스처거나 인간적 탐구의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종교의 쓸모는 사회적 자본이다.

종교적인 사람은 30% 더 기부하고 헌혈과 자원봉사도 많이 하며, 기부에 4배 관대하다.

매우 행복하다고 답하는 비율이 43% 높고 건강이 매우 좋다고 답하는 비율이 25% 더 높다.

 

종교를 어거지로 과학의 용어로 구겨 넣어 합리화할 필요 없이, 자체의 순기능으로 받아들이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은 초천재인 뉴스페퍼민트 이효석 대표가 직접 번역했습니다. 역자를 개인적으로 아는데, 매우 회의적이고 매우 과학적인 사람입니다. 좋은 책이 좋은 번역자를 만나 훌륭한 결과로 빚어졌네요. 이과, 문과 할 것 없이 지성인이라면 한번 읽을 가치가 있을만큼 재미나고 알찬 책입니다. 별점 넷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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