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상의 최전선' 읽고 신유물론의 매력에 빠졌더랬습니다. 길게 보는 미래와 지구적 시간의 관점에서 환경과 인간의 존재의미, 관계를 두고 다양한 실험적 사고를 하는 점이 좋았습니다. 배우고 상상을 자극하는 지점들이 많았지요.

 

그래서 내친 김에 데이비드 하비를 읽었습니다. 사회주의를 지리학에 접목한 천재란 소리만 듣고 꾸역꾸역 읽었지만 하나도 재미 없었습니다. 논증은 촘촘하지만 모든걸 사회주의와 공간의 개념으로 붙잡아 두는데 질렸달까요. 본인에겐 재미날지 몰라도 독자는 고역이었습니다. '지리한 지리학'이라고까지 생각했었지요. 사변적 내용은 대개 한챕터 정도만 재미날 경우가 많지요.

 

반면, 이 책은 그냥 경제사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집었는데 아니었습니다. 읽는 동안 앞의 책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A history of the world in seven cheap things

제겐, 책의 중간지점 같이 느껴졌습니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꼼꼼히 짚으면서 지구적, 세기적 규모의 음모를 밝혀보는 논점은 신선할 뿐더러 배울점이 많았습니다. 다만, 마르크스의 시각으로 마르크스 이전은 해석이 쉬우나 이후는 해석이 모호해져버린 터, 결론을 확장하고 미래로까지 끌고 가려는 부분에서는 사변적일 뻔했습니다. 종장에서 간결히 빠진 점은 칭찬할만한 미덕이었습니다.

 

책의 줄기는 이렇습니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일곱가지를 저렴화해서 얻은 내용임을 밝힙니다.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와 생명입니다. 요소가 많아 보여도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시스템에서 나온 상호 연관된 부산물들입니다. 바로 식민지를 경영한 제국주의지요.

 

자본이 스스로 유기체처럼 성장하는 기저에는 우선 저렴하게 착취한 자연과 노동력이 있습니다. 노동력을 저렴화하기 위해 저렴한 돌봄과 저렴한 식량이 필요하고, 저렴한 인종(생명) 필요합니다. 여기에 더해, 저렴하고 풍부한 돈과 에너지가 모든 것의 저렴화 생산성을 가속화하지요.

 

그래서 책은 자본주의가 산업혁명보다도 이전부터 연원함을 꼼꼼히 적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실험은 인클로저로 봅니다. 대량 농업과 농민 추방, 그리고 그로 촉발된 도시화와 산업화가 자본주의 시동의 축인거죠. 둘째 단계는 포르투갈의 마데이라 경영을 꼽습니다. 섬의 숲을 황폐화하고, 목재를 채취하고 설탕 플랜테이션을 최초로 구축하고 노예제도를 도입해 산업에 접목한 실험실로 묘사합니다.

 

그래도 이런 저렴화는 좋은게 아닐까요. 저렴 자체는 좋지만, 저렴화가 착취 또는 탈취를 내포한다면 좋은게 아닐겁니다. 점에서 책의 견해가 탁월하고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자본주의의 관점을 구성하는 가장 구분은 자연 대 사회 구도입니다. 자연은 원래 있었지만 사회는 기존에 없던 개념입니다. 중세 대항해시대가 되어 '발명'되었다고 봅니다. 이상적인 '사회' 되지 못한게 '자연'입니다. 자연은 사회의 미개발상태이며 따라서 착취 또는 개발이 당연하다는 논리입니다.

 

한편 저렴한 노동까지는 기존의 노동가치설과 사회주의의 지적 토대와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만, 저렴한 노동을 버티기 위한 저렴한 돌봄과 저렴한 생명은 차원이 깊어진 사고입니다. 저렴한 돌봄은 가사노동에서 번식노동을 포괄합니다. 저렴한 돌봄의 핵심은 여성을 도구화함에 있습니다. 지위와 존재를 말살해서 저렴화를 유지한다는 견해이지요.

 

저렴한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한 린네와 로크까지 옹호한 제국주의 과학으로 원주민과 토착민은 과학적으로 하등한 종이고 지배가 당연하다는 문과-이과 합동의 논리를 완성합니다. 진짜 린네는 인종의 계통까지 정리했더군요. 자유평등박애의 프랑스는 사상에 감동받은 아이티 혁명을 짓밟고 백년 넘게 탄압과 착취를 했습니다.

 

유럽은 이 같은 몇 가지 작업을 통해 백인-남성이 나머지 자원을 마음껏 사용해도 된다는 논리를 완성합니다. 지금도 지긋지긋 벗어나기 힘든, 미소지니와 인종차별, 오리엔털리즘의 연원은 이렇게 복잡하고 창대했습니다.

 

실은 여기까지만해도 대단한 사고체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엇을 저렴화했는지, 일곱가지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3대자원이라는 인적, 물적, 재무 자원을 저렴화하기 위해, 스스로 규정한 '외부'에서 자원을 죄책감 없이 끌어오는 시스템이란 관점 하나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생각해볼 점이 많기 때문이지요.

 

Inuit Points 

다만, 자본주의에 대한 고전적 논증에 많이 기대다보면 설명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본은 구조일뿐 자체로 사악하거나 선하 않겠지요. 또한 인간은 탐욕도 있지만 어느정도 자기규제도 가능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모두 아름다운 이상과 현실간의 갭을 통감하고 약간의 수정을 가해오고 있으니까요 중요하게는 지식 노동이 들어오면서 고전적 마르크스로 온전히 설명하기 쉽지 않은 같다는게 요즘의 느낌입니다.

중요한건 유물론이냐 아니냐, 자본이 본디 사악하냐 아니냐 아니라 오로지 인간 같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제어하고 규제하여 좋아질수도 있다고 저는 아직 믿고, 느리더라도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음 말이 와 닿습니다.

"행동주의는 지구에 살아가는 대가로 내 임차료다."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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