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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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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Inuit 2021. 2. 6. 07:47
장면 #1
대학수업에서 묘지 정문을 설계하라는 과제가 나왔습니다. 학생이 작업을 시작합니다. 우선 묘지까지 이르는 길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영구차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을 그려 넣고, 커튼처럼 물푸레나무로 길 주변을 두른 뒤에 회색빛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그려 넣었습니다.
장면 #2
현대 건축 5원칙을 만든 코르뷔지에가 직접 설계한 롱샹 성당은 곡선의 유려한 외관은 물론, 경사면을 이용해 포용적인 느낌을 주고, 은은한 빛이 성당 내부를 감도는 성스러운 분위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곳은 관람객만 가득하고, 롱샹의 주민은 다운타운의 평범한 다른 롱샹 성당에 다닌다고 합니다.
장면 #3
당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는 서울 소재의 명문 대학입니다. 지방 출신의 학생도 많아 기숙시설이 상시적으로 부족합니다. 동문 기금도 풍족하게 모여 학교 근처 부지를 사서 기숙사를 건축할 예정입니다.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설계를 의뢰하겠습니까? 유용성? 전통의 강조? 운영효율성?

좋아하는 분의 선물로 읽게 되었습니다. 책의 부피가 상당해, 선뜻 집지 못하다가 코로나 거리두기로 읽을 시간이 넉넉한 연말에 읽었습니다.

 

내용도 부피만큼이나 방대합니다. 식상한 수식어지만 동서고금을 망라해 건축의 의미를 짚어 갑니다. 그리스 이전, 원시 인류가 위험을 피하고 몸을 거하다, 형편이 나아지며 즐거움도 표현하는 건축물의 역사에서부터, 주류는 아니지만 그래서 본질을 표현하고 있는 소수부족이나 오지의 건축물까지도 중요한 생각거리입니다.

 

로마부터 골목과 광장을 예로 들며 건물이 모여 사는 이유도 살피고, 중정으로 개방성과 프라이버시를 노린 로마와 중동의 건축들, 회랑과 파사드의 의미 등에 대해 생각이 훨훨 날아다닙니다.

 

우리나라 건축으로 와도 역사적으로 눈에 띄 건물보다 오히려 창신동, 성북동 있을 법한 이름 없는 계단집, 삼각모퉁이 등에 눈을 둡니다. 그게 실제 건축이고 우리 삶이 닿아 있기 때문이지요.

 

이면과 내면으로의 생각 확장은 학자로서 다양하고 부지런한 상상으로 귀결됩니다. 시뮬라크르로서의 건물은 어떨지, 정보가 흘러다니는 건물은 어떤 의미인지, 기술이 발전하면 건축은 어떻게 세상에 봉사해야할지 생각을 펼쳐봅니다. 예컨대, 김광현의 시각에서 편의점은 세상의 변화가 건축으로 구현된 주요한 프로토타입입니다. POS 매장의 기능이 정보로 변환되어 흘러다니고, 실시간으로 물건의 과부족이 파악되어 재고가 적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뿐더러, 편의점의 입지와 주변 맥락에 따라 간식이 강조되거나 커피가 강조되거나 식사가 강조되는등 같은 하드웨어로 유연한 기능적 분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김광현의 핵심은 건축을 순수 예술로 생각하는 건축계의 엘리트주의를 혐오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머물고 흘러들어 사회가 되는 플랫폼으로 건축이 유일하게 의미있음을 두꺼운 내내 짚습니다. 여기서 벗어나 건축가가 건축주를 휘두르고, 입주민을 위압하며 주변과 불화하는 건물은 건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있는듯 없는 편하되 기능에 충실하고 본질을 드러내며 주변과 소통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면에서 거리가 건물로 흐르고 로비가 광장의 내면화라는 관점은 제게도 많은 배움이 되었습니다.

 

같은 관점으로 김광현은 점잖지만 코르뷔지에에 대한 혐오가 내내 드러납니다. 유현준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코르뷔지에를 열위로 봅니다.

 

서두의 예화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1번의 인물은 가우디입니다. 교수가 과제인 묘지 정문과 상관없는 내용을 많이 넣었다고 수정을 지시했습니다. 가우디는 '주변환경과 동떨어진 건축물은 의미없다' 시험장을 스스로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2,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이 외면받는 이유는 내부에 가보면 느껴진다고 합니다. 성당의 사용자인 신도에겐 한시도 머물고 싶지 않은 느낌이니까요. 빛은 너무 어두워 성경이 보이지도 않고, 소리는 웅얼웅얼 울려서 설교가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연히 겉모양은 평범해도 편히 용도에 부응하는 시내의 롱샹 성모성당에 발이 가겠지요.

 

이쯤 되면 3번의 지향점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요. 의견입니다만 주안점 하나는 주변 하숙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규모 신축 기숙사로 대학 주변부의 경제적 생태계가 바뀌는 것은 단지 건축반대 데모같은 소음 차단 문제가 아닐겁니다. 그중 일부는 학부모이고, 지역의 자랑인 학교에 애정을 갖고 있는 파트너입니다. 또한 기숙사에서 객지생활이 적응 되면 스스로 자율적인 거주지를 찾아 이동하는 기숙의 순환고리일수도 있습니다. 기능과 사용성 면에서 그리고 비재무적인 지역사회와의 공진화 측면에서 생각해볼점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3번의 생각은 제가 원래 갖지 않았던 관점이었는데,  읽어가면서 이런 방향으로 생각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Inuit Points 

일반 독자가 읽어도 충분히 좋지만, 책은 건축하는 사람들을 상당부분 겨냥한  합니다.

 

'만일 네가 예술을 한다고 생각하거나, 스스로 엘리트라고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건축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버려라. 교회를 지어도 교인만 아니라 들어오지 않더라도 앞에서 놀다가는 사람, 지나는 사람까지 사용자다. 옆의 세속적 주점과도 어우러져야하고 인도하는 길이 대로든 좁은 골목이든 거리와 화해해야 한다. 건물은 사람이 다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 이 지점에서 유려한 글빨의 서현과는 다른 매력입니다. 투박하지만 진지해서 감응하게 되는 느낌이랄까그래서 노학자의 마지막 독백은 울림이 큽니다.

나는 건축을 건축에서 배웠다.

따지고 보면 건축이란게, 거친 환경과 평온한 일상간의 완충역할입니다. 건축이 위세를 는 것도 호가호위일테지요. 인간이 머물고 역사를 이룬 공간인 덕에 말입니다. 그래서 건축이 인간이 살아가는 형태를 지탱하고, 가급적 행위와 정서를 더 풍족하게 한다 앞으로도 계속 생활과 동반하는 학문이 될 것입니다. 재미난 독서였고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