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알코올과 작가들 본문
작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게 있으신가요?
요즘엔 작가들이 깔끔하게 차려입고, 키보드를 사용하며 사무직처럼 규칙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작가 이미지는 다르죠. 재가 꼬부라져가는 담배 한대 손가락에 끼우고, 반쯤 비운 술잔 하나 저만치 두고, 만년필로 서걱서걱 쓰는 느낌이랄까요.
책은 딱 이런 감성으로 엮었습니다. 와인, 맥주, 위스키, 진, 보드카, 압생트, 메스칼과 데킬라, 그리고 럼 여덟가지 술과 이를 탐닉했던 작가, 그리고 그들의 글과 삶의 흔적을 빼곡히 모았습니다.
와인은 병에 담은 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아무래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술은 와인일테지요. 책에선 '다른 술에 비해 균형이 맞지 않을 정도로 많은' 작가가 손수 존경을 표했다고 표현합니다.
맥주 역시 초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았지만, 와인이 자랑하는 고상한 명성은 한번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서민의 술이었지요. 심지어 테이블 비어(table beer) 로 불리운 순한 맥주는 아이들도 마셨는데, 템즈강의 비위생적인 물보다 건강하기 때문이라니 아이러니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임스 조이스가 아일랜드 국민술 기네스를 아일랜드의 와인이라고 귀히 여긴건 아일랜드의 자부심이자 맥주의 위상일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머리 글의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작가의 술이라면 위스키일겁니다. 수많은 어록이 있습니다. 브렌던 비언은 스스로를 '집필 문제가 있는 술꾼"이라고 희화화했고, 하루 1리터의 버번을 마셨던 윌리엄 포크너는 '인류의 문명은 증류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까지 말하지요. 몸이 좋지 않다는 피츠제럴드에게 헤밍웨이는 위스키를 마시면 낫는다며 칵테일을 잔뜩 주문해 줬다고 합니다. 위스키를 물처럼 마신 사람으로 유진 오닐도 있어요. 그는 미국 작가의 긍지는 버번만 마시는거란 철칙을 갖고 있었고, 이런 미국 작가가 꽤 됩니다.
위스키는 액체에 녹아든 햇빛이다.
-버나드 쇼
와인, 맥주, 위스키를 넘어가면 슬슬 마이너 성향을 보입니다. 진은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군대에 지급된 진토닉으로 대중화가 되었지만, 만들기 쉬워 고급진 이미지는 별로 없습니다. 보드카는 맛도, 향도 없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가 칵테일의 기주로 쓰이며 살아났고요. 그래도 보드카는 위스키, 진, 와인보다도 많이 팔리는 사실도 재미납니다.
그 다음은 저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름만 들어본 압생트는 랭보의 낭만과 비밀, 그리고 신비로운 위험을 상징하는 술이라는데, 맛을 못봤으니 꽤나 궁금합니다.
그리고 메스칼. 데킬라는 알지만 메스칼은 갸우뚱합니다. 이번에 알았는데 데킬라는 메스칼의 좁은 분류입니다. 용설란으로 만든 통칭이 메스칼이고, 그 중 데킬라 지역에서 만드는게 데킬라입니다. 제법도 둘이 살짝 다른데, 메스칼은 굽는다면 데킬라는 삶는 정도의 차이라고 해요.
럼도 알긴 하지만, 제겐 은근 마실 기회는 거의 없는 주종입니다. 진처럼 럼도 해군에서 괴혈병을 막으려 라임주스를 섞어먹기도 했습니다. 그보다 친숙한건 해적 영화에 많이 나오는 바다 사람의 술이지요.
술꾼 헨리 루이 멩켄은 금주론자가 야만이이라고 주장합니다. 직립 원인도 금주가였고, 오후 5시가 되면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뻔한거 아니냐고 하지요. 노엘 카워드의 가장 완벽한 마티니도 웃깁니다.. 드라이한 제법을 선호하는 그는 잔에 진을 채우고, 베르무트의 원산지인 이탈리아 쪾으로 잔을 흔들면 된다고 했습니다. 아, 토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원제가 '술꾼들'이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네요. 말컴 라우리는 '진지한 작가에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아마 성공일겁니다'라고 했어요.
Inuit Points ★★★☆☆
술과 작가. 이 자체로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책도 사전을 편찬하듯 꼼꼼히 적었습니다. 하지만 책에 나오는 소설가들과 칵테일이 낯설다보니 저는 몰입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냥 술꾼 작가들의 기인열전 같은 느낌이 더 강합니다.
텍사스 살때, 마르가리타라는 칵테일을 처음 맛봤고 엄청난 매력을 느꼈습니다. 한국 와서 멕시칸 음식점에 가면 종종 맛을 보지만 그 맛이 안 느껴집니다. 아마 사용하는 데킬라도 차이가 있지만, 사방에서 훅 들어오는 마른 열기가 있어야 텍사스식 프로즌 마르가리타가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런 면에서 술과 삶은 끈끈하게 엮이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목은 유독 아쉽습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의 pun인 'A sidecar named desire'가 원제입니다. 사이드카가 칵테일이니 절묘하고 문학적 취기가 올라오는 제목이지요. 그런 면에서 번역제목 '알코올과 작가'는 와인을 밥사발에 내온 듯한 기분입니다. 제목과 별개로, 글과 나 사이 심리적 거리감을 끝내 못 좁혀서 별 셋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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