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디즈니만이 하는 것 본문
컨텐츠 사업은 자연독점의 성격이 있습니다.
하나의 컨텐츠를 만드는 비용은 정해져 있는데, 하나를 더 보여줄때 드는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우니, 어떤 식으로든 많이 보여줄 수 있는 회사는 점점 더 강해지고 경쟁력이 더해집니다. 케이블TV 시장이 전형적이고 규제와 법률도 이에 맞춰 생겼지요.
이런 자연독점적 성격을 활용해 글로벌 유일무이한 OTT플랫폼을 만든게 넷플릭스입니다. 이를 잡겠다고 훌루 등 여럿이 덤볐다가 스크래치도 못냈었죠. 그런데 그 넷플릭스가 명치를 맞고 비틀거린게 최근입니다. 바로 디즈니 플러스죠.
픽사나 잡스 쪽 서사로 보면 천하의 철밥통 공무원 조직인 디즈니. 그들이 변했는데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부제: Lessons learned from 15 years as CEO of Walt Disney Company
Robert Iger, 2019
이 책을 읽는 다양한 렌즈가 있는데, 우선 이 렌즈로 보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변했는가.
밥 아이거란 사람이 있습니다. 재직중인 케이블 회사가 디즈니에 팔리는 통에 어찌저찌 끼워 팔려 갑니다. 좀 지나, 악명 높은 디즈니 왕자님 마이클 아이스너의 공인 후계자가 됩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찰스 왕세자 같죠. 죽기전에 왕이 될 수 없을듯한 영원한 넘버 투의 자리였습니다. 아이거는 인내하고 인내하며 회장이 될 날을 기다립니다.
드디어 선출 프로세스. 아이거는 세가지 기둥을 공약으로 내겁니다.
- 고품질의 브랜디드 컨텐츠를 만든다
- 기술에 투자하여 기술 기반의 회사로 탈바꿈한다
- 세계로 향한다
이 웅장한 계획 덕인지 다방면의 물 밑 노력이 통했는지 아무튼 아이거는 그를 싫어하는 수많은 의사결정자들을 버텨내어 디즈니의 회장이 됩니다. 그리고 첫번째 공약인 픽사 인수에 나서죠. 요 부분은 픽사의 서술에서도 의외라고 나옵니다.
어찌저찌 아이거는 잡스 형님께 무릎 팍 꿇고 환심을 사서 픽사 인수 성공. 재미나게도 회사 차원에선 픽사를 인수했지만, 픽사 절대지분을 가진 잡스는 디즈니의 최대주주가 되지요.
아무튼 이후로 잡스 빨 제대로 받습니다.
까다로운 아이크(Ike)의 마블은 잡스 전화 한통으로 마음을 돌립니다. '괜찮아요 여기 믿을 만 해요.'
마블 인수 성사.
아이거 세계관의 끝판왕은 스타워즈죠. 이건 루카스의 분신이라 말 잘못 꺼내면 싸다구 맞을 기세입니다. 이것도 잡스가 중간에 다리를 놔주고 이래저래 해서 인수 성공.
디즈니 동화, 마블 코믹스 유니버스(MCU)에 미국의 건국신화 급인 스타워즈까지.
결국 합병을 통해 외연과 세계관을 확장시킨 후 디즈니 플러스로 넷플릭스를 후덜덜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폭스. 루퍼트 머독과 엄청난 딜을 만들어 미디어와 컨텐츠를 아우르는 거인이 되지요.
이 장대한 스토리가 재미났습니다. 물론 이 밑단의 이야기는 경영적 함의가 큽니다.
우선 합병을 통한 비유기적 성장의 이면이 재미납니다. 큰 그림이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매우 전술적인 수많은 고려와 돌파도 필요합니다.
2인자의 삶이라고 읽어도 재미납니다. 흔히 나오는 창업자 스토리와는 다릅니다. 아이거는 욕들어먹으며 일하던 말단 신입사원에서 회장까지 간 사람입니다. 그리고 상당히 오랜 시간을 아이스너의 2인자, 허울 좋은 넘버 투로 오래 지냅니다. 실제로 관두려고 몇번 고려했던 이야기도 나오죠. 그리고 인내의 시간을 분출해 전면에 나서는 타이밍과 과감함. 이 스토리라인도 흥미롭습니다.
제가 환호했던 진귀한 스토리는 캡시티즈 이야기입니다. 제겐 전설이자 동화같은 M&A의 신화, 캐피털 시티즈의 두 리더 톰 머피와 대니얼 버크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는데 뜬금없이 여기서 해갈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버크 씨는 ' 내 일은 돈버는거고 톰의 일은 그 돈 쓰는거다'라는 명언을 남겼고 둘은 영혼의 콤비였죠. 신화같던 그 두 양반의 총애를 받으며 수많은 초식을 전수받은 사람이 아이거란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실제로 캡시티즈가 디즈니에 인수되기 직전에 버크가 퇴진할 생각이라 톰 머피의 뒤를 이어 캡시티즈의 리더가 될 뻔했던 아이거인데 왕이 되기 직전에 나라가 디즈니에 먹힌 꼴이었지요.
Inuit Points ★★★★☆
개인의 자서전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존경의 마음이 부족해서라기 보다 자전 특유의 의도와 비의도의 거짓말이 피곤해서죠. 책은 그런 불신을 넘을 만큼 잘 썼습니다. 아마 전문 작가팀이 붙은듯 합니다. 글이 쉽게 잘 씌여 원문 비교해봐도 원글 자체가 탁월한 문장입니다. 매우 깔끔하고 쉬운 영어로 오해의 소지없이 하지만 재미나게 써졌는데 이건 전문가 솜씨죠. 그리고 자서전 특유의 회고적 뿌듯함이나 '그때 참 좋았지..' 중2 감상 없이 겸손하게 내달려 좋습니다. 아이거의 성품탓도 있지만 작화적 장점입니다.
결국 아이거는 큰 걸 얻게 되었습니다. 건조하지만 겸손한 팩트체의 글을 읽다 보면 어쩔수 없이 아이거에게 개인적 친근감이 듭니다. 전 180도에 가깝게 인식이 변했습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미국 대선 용으로도 기초적 커뮤니케이션이 될 만큼 훌륭한 자산입니다. 아마 아이거도 그런 생각했겠지요. 인세를 탐낼 상황은 아니니까요.
읽는 내내 재미나고 의외의 포인트에서 배운 점도 많은 독서였습니다. 자전임에도 불구하고 별 넷이나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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