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본문
전 양심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정도지, 윤리적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딱히 뭘 잘못한게 떠오르지 않더라도 말이죠. 아마도 적극적 해를 가하진 않지만, 적극적 선을 행하지도 않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이부분에 대해선 다들 당당함과 아쉬움이 공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상 윤리적 결정이란게, 삶의 모퉁이마다 나타나고 우리는 무언가 선택을 해야합니다. 명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요.
예컨대, 내가 매우 좋아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있는데, 대표가 매우 편견이 심한 말을 했다고 쳐요.
불매운동에 동참할건가요. 그걸로 그들이 바뀔 가능성은 별로 없는데 말이죠. 게다가 난 그 제품을 너무 좋아해요.
불매를 한다면 언제까지 해야 하죠. 이슈에서 잊힐때 쯤까지인가요 대표가 사과할 때까지인가요 대표가 물러나야 하나요. 만일 그 종료조건이 안되면 그래도 계속 할건가요.
다른 예를 들까요. 내가 좀 넉넉히 산다고 하죠. 일도 잘해서 연말에 보너스를 좀 받았어요. 백만원을 기부하고, 3백만원짜리 사고 싶던 시계를 샀습니다. 상투적이지만, 3백만원이면 아프리카의 수백명 아이를 구할 수 있습니다. 시계 산건 이기적 소비인가요. 그래도 백만원이나 기부한 게 어딘데 이정도는 나를 위해 쓸 수 있는거 일까요. 아니면 3백만원 기부하고 백만원으로 쇼핑을 하면 좀 더 윤리적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How to be perfect: The correct answer to every moral question
Michael Schur, 2022
읽을 책들이 길게 줄 서 있는데, 이 책은 소개 듣고 바로 새치기로 들어왔습니다. 아 윤리 논란이 있었던 '익스프레[스 패스'라고 할까요. 암튼, '이렇게 웃기는 철학책은 첨 본다'는 김겨울 님의 소개가 결정적이었어요. 웃기는 철학책이라니 이 무슨 '잘마른 구름'같은 모순형용일까. 책이 너무도 궁금했습니다.
실제 읽어보니 재미납니다. 물론 철학 공부하는 분에겐 배꼽잡게 웃길지 몰라도, 저같은 머글한테는 그렇게까지 웃기진 않고 단지 재미납니다. 지은이 마이클 슈어는 SNL 프로듀서 출신으로 '굿 플레이스'를 만든 사람입니다. 슈어의 특징은 막 던지는 엄밀한 유머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개그를 시도하는게 엉뚱하지만, 상황에 맞고 적절하여 사뭇 지적입니다.
글은 윤리적 기준과 사안을 바라보는 방법을 다룬 윤리학적 논의로 우선 시작합니다.
슈어는 서양 3대 도덕 철학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학(virtue ethics), 벤담의 공리주의(utilarianism), 칸트의 의무론(deontology)을 꼽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계약주의(contractionism)를 소개합니다.
저같은 문외한에겐 이 소개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각각은 얼핏 들어봤지만 그게 3대장으로 엮일만한 부피인지 아니 그 셋이 같은 카테고리인지조차 잘 몰랐으니까요. 알고나니 그 묶음으로 보는 장점이 있습니다.
덕 윤리학의 중용은 교과서에서 들었지만, 실전적으로는 시행착오을 의미한다지요. 적절한 분노와 적절한 대응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를 강조합니다.
공리주의는 결국 코로나 백신의 배부 법칙으로까지 사용될만한 유용성은 있지만, 기계적 정량화가 취약점입니다. 우선 계산 자체도 자의적이지만, 주관적 행복까지 균질하게 정량화하다보니 개인 존재의 토대가 악화되어도 무시하는 사고의 틀입니다. 결국 주객이 전도되며 뒤틀어져 버리죠.
저자는 내심 칸트의 의무론을 지지하는 느낌이 드는데, 실행 가능성을 치워둔다면, 윤리에서 가장 어려운 기준선을 설정하기에 알맞어서 그런듯 합니다. 보편준칙이란게 존재한다면, 그에 맞춰 생각할 수 있는 도덕적 헌장이 되는거죠. 그 헌장은 어렵지만 매번 생성할 수는 있습니다.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말라."
저자가 공들여 설명하는 계약주의는 우분투 정신과도 닿아 있습니다. 내 존재는 이전 세대를 포함한 타인에 빚지고 있다는사실을 자각하기만해도 최소한 할 도리는 정해진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윤리적 이론을 지나면 책의 나머지 부분은 실전적 문제를 다룹니다.
앞에서 말한 사례도 포함됩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대표가 나쁜 발언을 한 경우 어떻게 하는게 옳은지. 비싼 아이폰을 사는게 윤리적인지 아닌지. 그리고 선행을 할 때 어느 선까지 선해야하는지. 내 목숨 위험 감수하고 불난집에 사람 구하려 매번 가야하는지 등에 대해 네가지 필터를 사용해 사안을 들여다 봅니다.
이 모든 사례에 대해 우리는 각자의 답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느낀건 그 답이 각각 다른데 꽤나 중구난방입니다. 즉 일관적 윤리관으로 답을 갖기 보다 사안별로 적절한 윤리적 노력을 들이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아마 슈어가 책을 쓴 이유도 그럴것 같아요. 도덕적으로 결정을 내리는데 인지적 노력이 상당하다면, 우린 쉽게 판단하거나 대개 아무것도 안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윤리적 관점은 훈련이 필요하겠구나 배웠습니다.
후반부의 실천적 의문들도 그래요. 지극히 엄정한 윤리관으로 살든, 매우 완화된 윤리관으로 살든 불법 아닌 한 각자의 깜냥일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버톤 윈도우(overton window) 개념으로 설명하듯, 한번 완화된 윤리관으로 무언가를 행하면 다음엔 반드시 더 완화된 윤리관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어느순간 스스로 견지하던 윤리적 선을 넘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즉 양심의 가책에 귀기울여 버릇하지 않으면 서서히 망가지는게 인생입니다. 그래서 윤리적 근육을 키우는데 의식적 노력이 필요한거죠.
결국, 저자의 간절한 부르짖음이 와닿습니다.
어떤 사안을 놓고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옳은지 그른지 끊임없이 성찰하는 그 감각이 중요한 거라고.
Inuit Points ★★★☆☆
정리하고 나니 내용이 딱딱해 보이지만, 대박 프로그램 제작자에 걸맞게 흥미진진 이야기를 잘 풀어갑니다. 메시지와 형식, 재미를 다 잡았어요. 특히 주석이 재미나서 전 주석 읽는 재미로 완주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왜 윤리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또렷이 적지 않은 점입니다. 책에 간접적인 이야기는 나오지만, 윤리적이지 않은 상어들 속에서 혼자 윤리적인 금붕어가 될수도 있음에도, 윤리적이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선 나몰라라합니다. 다들 기본적으로 윤리적고 싶어한다는 전제의 성선설 굿플레이스 내에서의 글 같기도 합니다. 윤리적으로 살고 싶은 그 마음 지켜주는 방법론에 대해서 시종일관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한편, 매우 사소한 불편이지만 이 책은 제목이 정말 안 외워집니다. '어떻게 완벽해질까'라는 숨막히는 원제보다 뜻도 잘 살린 번역임에도 인상적이지 않아 돌아서면 기억에서 미끄러지네요.
그럼에도 이 책은 아름답습니다. 책 읽고 저처럼 윤리적 감각과 근육 훈련에 신경 써야겠구나 느끼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많아지면 세상은 조금이라도 더 밝아질수 있으니까요. 쉽지 않은 내용을 다양한 윤리학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배우고 익혀 꼼꼼히 정리한 그 노력이 가상합니다. 별 셋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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