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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딥

Inuit 2023. 5. 13. 07:24

'쿠팡 망해요?' 라는 도발적 인트로로 시작하는 글은 기대를 안고 읽기 시작했지요. 딱히 관심은 없었지만 막연한 호기심은 있으니, 참에 개괄해보기 좋았습니다. 읽으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공정을 기하자면 원망을 들어야할 책은 따로 있습니다.

토스를 다룬 '유난한 도전'이죠. 저는 한국의 사례연구에 대해서는 불신자에 가깝습니다. 친기업에서 못 벗어나는 시선 때문입니다. 온정적이거나 또는 대놓고 찬양의 논조가 한가지고, 경영적으로 적절히 틀 잡고 쓰는 작가가 별로 없으니 구조를 보는 시력이 약합니다. 그 두가지가 결합하면, 책에서 사용하는 데이터란게 기업이 보여주고 싶은 자료의 범주를 벗어납니다. 자연히 홍보자료가 되거나 수박 겉핥기에 그치거나 다인 경우가 많습니다.

 

'유난한 도전'은 그런 면에서 반전의 매력이 있었습니다. 내부자가 대놓고 회사의 어글리한 내용을 정면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홍보의 목적도 솔직함으로 포장이 되고, 결함도 관용의 정서로 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슬몃 정세한 사료를 간간히 박아두어, 목적의식을 걷어낸 이면의 실체적 역사를 대략 짐작할 수 있고, 그래서 배울 점도 있어 좋았습니다.

 

이 책에 과하게 기대했다면 멋대로 상상한 '유난한 도전' 잔상 때문입니다.

 

박선희, 2023

 

잘라말하면 이 책은 제가 본래 지녔던 불신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내용은 창업자 김범석이 미국에서 사업 구상해서 그루폰 따라 소셜 커머스 회사를 만들고, 그루폰과 인수 딜이 부러지면서 퀵 커머스, 그리고 일반 커머스로 이전하는 과정을 적었습니다. 코스코를 따라 trigger & treasure 기저귀 전쟁을 통해 교두보를 확보하고, 이어 아마존을 모방하며 전자상거래의 강자로 떠오르는 과정이 나옵니다.

 

시놉시스는 익히 목격했고 알려진 바니, 경영에 관심 있는 저같은 독자는 내부의 일이 궁금하지. 전개된 서사에 씌여지지 않은 역사, 모멘트 마다의 추동력과 반추동력, 관련 인물들의 욕망과 좌절, 갈등 그리고 승리 같은 내용이요. 당연히  모든 걸 바라진 않지만,  한 두개라도 또렷했다면 저는 만족스러웠을것 같아요.

 

책은 이런 기대에서 너무 멀리 있습니다.

첫째, 한국 저자가 국내 소재 기업의 이야기를 쓰는데, 어찌 이리 내부 이야기가 없을까요. 창업자 인터뷰도 없고 내부자 인터뷰도 없습니다. 논문도 아닌데 빽빽히 달려있는 각주들은 거의 다 기사화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게  책의 색깔입니다. 버전이 좀 더 올라가면 chatGPT가 해낼 작업같습니다. 그저 방대할 뿐 스토리 큐레이션입니다.

 

둘째, 쿠팡이 정도 커지면서 존망의 위기와 수많은 좌절이 없겠습니까. 간난의 메시 미들(messy middle)이 유니콘 신화의 본질일진대, 책은 일말의 관심도 없습니다. 삼국지의 드라마를 탈색하고 건조시킨 후, 편년체 사기로 만들었습니다.

 

셋째, 그러다보니 경영학적 렌즈란 개념은 시종 없는데요. 결국 외부에도 상당히 알려진 쿠팡의 뒤틀어진 조직 문화나 배송 위주의 필승전략에 거세게 반격해 해자를 갉아먹고 있는 국내 대형유통과의 전략적 샅바싸움 같은 쿠팡의 핵심 문제 두가지에 대해 어떤 실마리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시작부터 두가지 키워드를 염두에 두고 힌트라도 얻고자 샅샅이 읽었지만, 책의 관심이 피상에 그치니 적힌 문장도 이리저리 흩날립니다.

 

그러다보니 궁금해집니다. 혹시 검열이라도 당했을까명시적으로든 심적으로든.

저자가 기자라서, 유통 기자라서 아쉬운지도 모르겠습니다. 고구마 하나도 없는 사이다 일변도의 서사가 비대칭적 이야기거리 하나 없는 시장효율가설(EMH)적 평평함으로 버무려 빚어진 글입니다. 잠시 글읽은 간단한 의견을 능가하는 식견과 이야기거리가 풍부할텐데, 퍼블리시된 자료에만 의존해서 알려진 이야기들을 뭉쳐둔데서 머무르니까요. 기자 아니라 그냥 경영서 작가라도, 파고 싶은 주제와 스토리가 넘칠 반짝 거리는 유니콘 스타트업인 말이죠. 제목과 다르게 책은 전혀 다이브하는 용감함도, 딥함도 없어 저는 아쉬웠습니다.

 

Inuit Points ★★

금방 나온 신간에 대해 다소 까끌한 말을 쓰자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분명히 누군가에겐 좋을 책이니 말이죠. 명확히 짚자면 포스트는 허수아비 논증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세워둔 기대에 못미친다고 푸념하는 글이니까요

 

저자의 글은 수려하고, 문장은 간결하고 읽힙니다. 문장력으로 다른 소재, 적절한 글감이 나타나면 매우 좋은 책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은 독서 내내 했습니다. 그점이 거듭 아쉽기도 했을 정도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아무튼' 시리즈가 있습니다. 문구, 공연, 택시, 망원동 지극히 사소한 주제 하나에 천착해 아담한 부피로 적습니다. 재미난 작가들이 농담처럼, 일상처럼, 집착처럼 애정 담아 적는 글은 빛납니다. 작은 소재에서 시작해 삶과 사람, 세상으로 귀결되며 끝나죠. 이 책은 문장의 수려함과 애정으로 보면 '아무튼, 쿠팡' 정도였다면 훨씬 좋았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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