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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력 시대

Inuit 2023. 4. 8. 07:48
우리편 궤변가를 만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복잡계 공부를 위해 읽은 두번째 책입니다. 결론적으로 복잡계 공부 목적에는 맞는 책이고 외려 반하는 책이었습니다.

배운건 없고 마음만 복잡해졌.. 다기 보다는 복잡계의 전형적 특성인 상호작용과 비선형성, 자기조직화 등의 원리와 반대로 용감한 선형적 논리, 단순한 인과관계, 톱다운식 해결 의지 등으로 복잡계의 철학과 반대방향에 계신 양반이었습니다.

Age of resilience: Reimagining existence on a rewilding earth

Jeremy Rifkin, 2022

부제: 재야생화되는 지구에서 생존을 다시 상상하다

 

이걸 단적으로 보여주는게  2, 테일러주의와 열역학 법칙입니다. 공학을 전공 저도 재미나게 읽었을 정도로 서구 근대 사상의 문제점을 일목 요연하게 정리합니다. 박력있고 통쾌하며 시원시원합니다. 하지만 이게 전형적 리프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훤히 보이고 명쾌합니다. 진짜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책의 논지는 이러합니다.

산업시대의 효율화가 지구를 망쳤다. 이젠 회복력(resilience)의 시대다. 마침 우주의 기운이 회복력의 시대로 가고 있다. 그러니 조금만 힘내어 지구를 재야생화하고 회복가능한 지구로 함께 돌리자.

매우 아름다운 내러티브고, 주장에 저는 적극 동의합니다. 하지만 논리적 토대와 세부적 연결은 듬성듬성한 비약과 확증편향, 낭만적 상상력이 범벅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효율화가 가져온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야 주지의 사실입니다. 하지만 리프킨은 인적, 물적, 재무적 자원의 절묘한 결합으로 영위하는 기업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합니다.

 

지구의 살을 뜯어다 쓰는 물적 자원은 산업시대, 리프킨 표현으로는 진보의 시대(age of progess) 가져온 소유권 개념의 망작으로 여깁니다. 물론 공동체적 사용권에서 소유권으로 넘어가면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는 있습니다. 하지만 소유권 자체가 가져온 창의성과 야망, 집요한 추구에 대해선 함구합니다.

 

더욱이 기업의 부가가치를 인적 요소의 기계적 환산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성과와 무관하더라도 임금을 올려야 자본주의의 악순환이 깨진다는 해묵은 노동가치설을 부활시켜 들고 다닙니다. 그러다보니 외려 인간을 몰개성화, 부품화하는 자기 모순에 빠져있기도 합니다. 읽으면서 설마 그렇게 1차원적이지는 않겠지, 혹시 내가 사용자 입장이라 거부감이 아닐까 경계하며 읽었습니다. 그러나 동기부여측면의 경영기법을 정신잔업 시키는 노동착취로 보는 입장에서 일말의 기대를 접었습니다. 그런 면이 없다는게 아니라, 일면을 전면으로 침소봉대하는 리프킨의 독특한 편의주의적 논증에는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속았던 복잡계 관련 기대도 그랬습니다. CASES(Complex Adaptive Social Ecological System)이라는 별도의 챕터를 두어 서술하고 있지만 좋은 단어만 차용해 본인 논리를 보강하는 도구로 소진해 버립니다. 복잡계 공부하는 사람들이 골머리 싸안고 회복력 해결하기 위해 세상의 실존적 파라미터를 놓고 어디가 변경점(leverage point)인지 거길 어떻게 움직여 전파될 것인지 고민하는 동안 리프킨은 ' 쉬운걸 몰라' 입장입니다.

 

리프킨의 쉬운 입장은 이러합니다.

3차 산업혁명이 오고 있다. 여기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 에너지, 수송인데 다양한 기술과 진화 압력으로 로컬화되고 있다. 지역에서 정보가 돌고, 분산형으로 에너지가 돌고, 물류가 지역으로 돌면서 지역에 무게중심이 간다. 이게 솔루션임.

 

어느정도는 동의 가능하지만 리프킨의 해법은 논리적 나래를 펴고 우주로 훨훨 날아갑니다. 즉, 대의민주주의가 분산형 동료시민정치(peerocracy) 바뀔 것을 예상합니다. 저도 간절히 바라지만, 기존 레짐의 반대를 무릅쓸 묘안은 말하지 않습니다. 우주의 기운이 그렇다고만 말합니다.

 

예컨대, 요즘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은 동물식물을 사랑하는 성향이 있어 생명애(biophilia) 기반의 커뮤니티로 가기에 호기라고 말합니다. 같은 나라에서도 잘살게 되면서 생기는 현상을 코호트의 변화로 여기는 (그래서 미국 외로만 가도 생뚱맞아지는 논리의) 오류를 범합니다. 나보다 우리를 따지는 원시공동체적 거버넌스를 부르짖지만, 실은 동양에선 여기저기 이제껏 만연한 정서입니다. 설사 미국의 다음 진화단계일 지언정 인류의 다음 진화단계는 아닌데 여기에서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선후관계와 인과관계를 내내 혼동하고 있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이 있는건 아니겠지만 미국 외에 다른 나라도 있다는걸 들은거 말고 몸으로 깨쳐 안 게 있나 궁금할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애써 얼기설기 엮은 논리는 위태롭습니다. 응원하며 읽던 저는 조마조마합니다. 분산형 기술인 블록체인은 이미 유용성이 붕괴되고 있고, gpt 등장하면서 엄청난 집중화라는 중력장에 인류는 이미 빠져들고 있습니다. 기껏 bioregion이라는 통합 지역화를 이뤄도 지역 수준에서 지구적 인플레이션에 면역되기 어렵다는 게 매일매일 실증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한 후 맞닥뜨린 현실도 있지요. 손쉽게 붕괴되는 global value chain 핵심 자재의 편재문제, 리카르도적 비교우위를 잠재워버리는 지정학적 의제들 ..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이 글 쓰면서도 생각이 짧고 틀렸고 깨닫지 못한 좋은 점이 많이 찾아지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두꺼운 책이지만, 정신 번쩍 나게 하는 박력있는 논리와 주장에 졸지도 않고 읽었습니다.

 

Inuit Points ★★

다소 비딱하게 썼지만 사실 리프킨의 낭만적 내러티브가 실현되면 좋겠습니다. 생명애까지 안 가더라도, 지구와 생명들을  존중하며 인간이 생태계의 일원으로 지난 과오를 뉘우치며 화목하게 지내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리프킨 진단과 처방은 작동하지 못할게 뻔해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아니지만, 그의 어투를 패러디하면 이래요.

'모두가 채식하면 생명들도 고마워하고 지구는 살아날 것이며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일견 맞는 소리 같지만, 모두가 채식을 날이 올까요? 5백만년 인구의 입맛이 쉽게 변할 것인지, 채식으로 손해볼 산업 참여자들을 제어할 있을것인지, 특별한 고민이 없다면 단순한 주장에 불과한거죠.

 

독서중 메모한 인상평으로 맺음말을 갈음합니다. 

과학책 엄청 읽은 문과생, 현장 안가본 백면서생, 우발적 노동가치설, 신자연주의 극좌파, 낭만적 나로드스키, 치료를 주창하며 회복마법이 가능하다 말하는 마술사. 밝고 용감한 책상물림.

, 그래도 뜻이 고결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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