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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scana trip (3): 시골이란 플랫폼

Inuit 2025. 7. 26. 09:07

이번 여행의 고갱이는 시골살이입니다.

형님누나 부부가 한달 살기 하는 곳에 1주일 놀러가기로 2 전의 약속이 이뤄진거죠.

 

Podere San Luigi

숙소는 농가를 개조해 만든 포데레(podere)입니다.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하늘, 흙길, 나무, 구릉이 그림처럼 펼져지는 무릉도원 같은 곳이었어요. 큼직한 건물에 네개의 숙소가 꽉꽉 돌아갑니다. 애초에 형님누님이 오랜 리서치 끝에 극찬의 리뷰보고 선택한 곳이라, 시설과 풍경, 무엇보다 주인의 친절함까지 빼어납니다.

podere San Luigi

 

자연

가장 좋았던건 볕이 넘쳐나고 녹색이 물결치는 자연 자체였습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장대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두줄로 서있고, 바람에 은빛이 팔랑거리는 올리브 나무도 지천입니다.

길가엔 로즈마리가 잡초처럼 무심히 자라고, 바질 화분 하나 두면, 요리할때 몇장 툭툭 끊어 넣으면 바로 미식이 됩니다.

볕은 강해도 산이라 바람은 시원합니다.

물에 다녀와 그늘에 머물면 금방 춥습니다. 짚앞 순례길엔 중세부터 이어진 순례자들이 무거운 등짐 지고 천천히,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바질 화분
길거리의 잡초가 사실 로즈마리
숙소 마당의 사이프러스 담장

 

Neve

숙소 루이기의 빼놓을 없는 중요 구성원, 사랑스러운 네베가 있습니다.

(snow)이란 뜻인데, 드넓은 영지에서 맘껏 뛰노는 행복한 개입니다. 야성이 강해 무의식중에 입질도 하지만, 영리해서 이내 실수를 깨닫고 미안한 마음에 부비부비 치근대고 가기도 합니다. 물을 좋아해 물놀이를 하면 헉헉 달려와 같이 놀자고 하지만, 외엔 있는듯 없는듯 조용한 개입니다. 마지막 날쯤엔 친해져서 살갑게 대해주지만, 사진 한장 찍을 짬을 내줄만큼 부산합니다.

 

난이도 리셋

문득 깨달은 점은 산골로 오자마자 여행의 난이도가 급하강 했다는 점입니다.

앞선 글에서, 체감상 유럽여행이 주사위 던지기라면 이탈리아 여행은 동전던지기랬지만, 도시 한정이었습니다.

내가 지어먹고, 있는 물품으로 꼼지락꼼지락 살고, 걷든 뛰든 운전하든 스스로 움직이면 모든 일이 해결됩니다. 시골에선 날씨 말곤 변수랄게 크게 없습니다.

 

결국 도시란 폭증하는 복잡성의 구현이고, 시스템은 거대한 약속체계일진대, 중세의 내력이 강한 이탈리아 도시가 복잡한 약속을 감당하지 못한 뿐입니다. 시골에서 마음이 평화로운 이유와 실체를 경험했습니다. 단순하고, 약속보다는 관계에 기대는 환경입니다. 근심이 적고, 따뜻합니다.

 

특별한 생일파티

하루 저녁은 저와 아내가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형님누나 두분의 환갑 기념 여행이란걸 알고 있었기에, 합동 생일상을 차렸습니다. 한국에서 가져갈 있는 재료들과 현지에서 구할수 있는 재료로 상을 차렸습니다. 건조 미역에 로컬에서 장봐온 고기를 넣고 오래 불지펴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인근의 재료를 우선 공급하니 모든 재료가 신선하고 맛좋은 생협 대형마트인 coop에서 장을 봤습니다. 가장 돔을 오븐에 익힌 , 끓는 기름을 부어 중국식 생선 요리를 했습니다. 햇반 대신, 같은 파스타인 쿠스쿠스에 올리브를 엄청 저며 넣어 느끼하지 않게 밥을 지었습니다. 한식의 칼칼함을 보강하기 위해 파드론 고추를 불에 지진 스페인 요리를 했습니다. 고추 요리 냄새가 널리 퍼져 숙소의 다른 게스트도 군침을 흘렸나봅니다. 김치는 볶음 김치를 사갔는데, 한통이 160ml 인천공항 보안검색대를 통과 못했고, 면세점에 80ml 짜리 소포장이 있어 다행히 구해왔습니다. 이래 저래 꾸리니 먹을만한 생파상이 차려졌습니다. 맛난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과 함께 늦도록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족, 추억,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 등에 대해 끝없는 이야기가 펼쳐졌더랬습니다.

모든 재료가 신선하고 월등한 생협, Coop

 

사람

인터넷도 안터지고, TV 없는 시골이란 플랫폼에선 사람이 최고의 컨텐츠입니다.

가족과 대화, 숙소의 이국 친구들과 아침 저녁 인사는 하루의 유력한 재미입니다.

 

특히, 현지인인 주인가족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호스트인 발렌티나는 읍내에 살고, 그의 어머니, 아버지가 숙소에 같이 살고 운영을 합니다.

어머니 아날린다는 매일 수영장을 말끔히 청소하고, 모든 정원을 수십년간 가꿔온 분인데, 70 넘는 연세에도 활력이 넘치고 항상 친절합니다.

아버지 마리오는 80 넘어도 역시 정정해, 이탈리아 남자처럼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흥이 오르면 말하다말고 사라져 앨범이나 사진 가져와서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혹은 지금 대화도 마무리 안되었는데 자꾸 다른 주제로 넘어가 버리기도 합니다.

 

과정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의 끊임없는 수다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대화가 텍스트고 사람이 컨텍스트인 삶의 방식이죠.

물끄러미 바라보다 대화각 나오면 일단 말걸고 수다 떨면서 피아도 식별하고 친구도 사귀고 재미도 느낍니다.

 

마지막 체크아웃할 게임의 엔딩 장면 같았습니다.

모험을 끝내고, 동료와 NPC 인사 나누며 그라디에이션으로 감정을 정리하는 에피소드 말입니다.

문앞을 지나는 아날린다를 발견하고 그간 고마웠다고 몇분간이나 이야기하고, 잔디로 나가다 마주친 다른 숙소 게스트와 다음 일정은 뭐냐, 우린 피렌체 들러 한국간다, 그간 즐거웠다 이야기합니다. 다시 풀장으로 주인장 발렌티나와 이야기하다 그쪽 가문의 역사를 듣습니다. 기분 좋아 아쉬운 순간입니다. 체크아웃 시티 택스 정산하고 챠오~ 한마디로 빠져나오는 상업적 숙소와 다릅니다. 한명한명 정성껏 이야기 나누고 헤어지는 과정은, 시골 할머니 집에서 돌아올 마을이 나서서 놓쳐서 하루 더자고 가면 좋지 하는 배짱과 정감넘치는 인사 같았고 길게 길게 여운이 남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 비하면 이탈리아는 혼자 폰보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보나 싶어도 친구랑 메신저하는거고, 음악듣나 싶으면 이어폰 끼고 통화 중입니다.

그도 아니면 모르던 사람과 이야기 하거나, 신문이나 책을 읽기도 하죠.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배운 이거 같아요.

 

진짜 인생의 순간은

고난 ,

사람 ,

적막 속에

연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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