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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60년대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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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60년대 이야기

Inuit 2026. 5. 23. 09:51

1️⃣ 한줄 

 독특한 소설, 이런 전위적 실험은 끝난건가, OTT 시대는 문학의 명줄만 유지시키는 걸까. 

 

Inuit Points ★★★☆☆

결코 흥미진진하다고 말할순 없는 플롯입니다. 그러나, 문장을 따라 읽으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강렬합니다. 매우 느리고 세밀합니다. 시종 사물로 이뤄진 문장입니다. 사물과 사물의 공간, 사물의 빈자리, 혹은 차지한 자리에서 배어나오는 정서에는 시대의 풍미가 그득합니다. 매우 독특해서 흥미롭습니다.

 

🎢 Stories Related 

  • 페렉은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아버지는 세계대전에서 전사, 어머니는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합니다.
  • 그의 책인 '사물들' 마케팅도 없이 내자마자 공전의 히트를 칩니다.
  • 아쉽게도 페렉은 45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일찍 세상을 뜹니다.

Les choses: Une histoire des annees seixantes

Georges Perec, 1965

 

🗨️   자세한 이야기

 지루해서 강렬한 도입부가 책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말해줍니다.

 

먼저, 높고 좁게 난 긴 복도를 따라 깔린 잿빛 카펫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밝은색 패널을 이어 만든 벽에 구릿빛 꺾쇠가 반짝일 것이다. 벽에는 엡섬1의 우승마 선더버드, 외륜선 빌드몽트로호와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를 찍어낸 판화 세 점이 줄지어 걸려 있고, 뒤이어 결이 훤히 드러난 짙은 색 굵은 나무 고리가 달린 가죽 걸개가 조금만 건드려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복도에 깔린 카펫 대신 노란색에 가까운 마루가 나타나고, 그 위로 빛바랜 양탄자 세 장이 군데군데 깔린 것이 보일 것이다.

 

가정법으로 이뤄진 세밀한 묘사가 여러 페이지 이어집니다.

처음엔 당황해서 이게 책인가 싶습니다. 하지만 의도적인 도입부가 책의 형식이자 규정이며, 주제와 정서, 그리고 복선이기도 합니다. 마치 카메라로 패닝하며 한없이 느리게 공간을 훑듯, 과하게 자세한 묘사로 어떤 정경을 그립니다. 모든 문장은가질 수도 있는‘ 사물들을 형성합니다.

 

그래서 주인공 커플, 제롬과 실비의 실제 환경은 남루합니다.

나름 파리 중심부의 소박한 집이지만, 많은 목록, 깊은 갈망은 결여되어 있습니다. 세세한 지식의 저주로 현실이 대비되니 유독 가난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각별한 의지가 없습니다.

그럭저럭 하는 일조차 정규직은 자유가 속박되어 싫다며 가끔 나가고, 종종 지방 출장이 있는 (geek) 노동을 선호합니다. 중고거래터인 벼룩시장을 발견한 후에 열광하지만, 완벽하지 않으면 차라리 아무것도 들이지 않기를 선택합니다. 책장도 오크가 아니면 소용 없다는 투입니다. 마음에 안들어도 어정쩡한 사물들이 자리를 유지하는 임시방편으로 현재를 도배하고 삽니다. 가망 없는 상속이나 로또를 꿈꾸며 기적만 바라지요. 환상일 뿐인자유의 기분‘을 추구하다보니, 사소한 순간으로도 행복이 무너져 내리는 위태로운 하부구조입니다. 애정마저 경제 상태에 종속되는 늪과 같은 일상인데 말이죠. 삶보다 부를 사랑하다보니 삶은 소외되고 뒤틀려 갑니다.

 

결국 이들은, 튀니스로 이주하여 살지만 그곳도 삶이 팍팍하고 녹록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이야기 구조는 밋밋합니다.

애초에 소설은 명사와 형용사로 이어지는 글이니까요. 시종일관 나오는 수많은 사물들, 갖고 싶은데 갖는 , 갖고 있으나 혐오하는 것들, 간극이 젊은이들, 또는 시대의 고통점이기도 합니다. 60년대 프랑스는 프티 브루주아의 시대입니다. 누구나 부를 꿈꿀 있지만, 아무나 부자가 없습니다. 균열에 주인공 젊은 커플은 아파합니다.

 

책은 사물의 이야기지만, 행복론입니다.

물질이 행복인지 묻습니다. 다그치지 않고, 넌지시 제시합니다. 행복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은 있는건지, 있다면 뭔지. 혹은 물질에서 벗어난 행복은 뭔지, 그걸 아는지, 탐색해볼지 생각이 고이듯 떠올리게 합니다.

 

여기서 형식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초장의 가정법은 소소한 욕망을 펼칩니다. 뒤의 직설법은 단단한 어조로 거품같은 욕망에 균열을 내지요. 이런 상부구조를 생각하기도 전에 치밀한 묘사를 눈으로 좇다보면 시각적이고 감각적이라 슬렁슬렁 읽힙니다. 사물의 묘사이므로, 문장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 인물의 심리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몽글몽글 짚일 무렵 이런저런 심상이 독자 안에서 떠오릅니다.

 

형식이 페렉의 천재성이죠.

그는 나중에 '울리포'라는 실험 문학 그룹에 가입합니다. '잠재문학 연구회'인데, 새로운 구성과 형식을 실험하되, 정해진 규칙을 엄격히 따름에서 생기는 창의성을 의도합니다. 페렉의 유명한 작품실종’은 e라는 철자를 하나도 안쓴 글입니다. 영어보다도 e 의존도가 높은 프랑스어에서 철자를 안쓴채 300 페이지를 읽는동안 e 빠진걸 눈치도 못챈 독자가 많다니, 글솜씨가 얼마나 대단한걸까요. (프랑스어에서 e 없으면 be 동사를 전혀 못쓰고 미래 시제도 제껴야 한다고 합니다.) '실종' 영어로 번역한 책도 원작을 존중해 e 없이 갔다고 하니, 역시 고행이고 이야기 거리죠.

 

실제로 페렉은, 시대 가능한 모든 형식을 두루 써보길 바라고, 동시에 두번 다시 같은 형식을 쓰지 않길 바랐다고 하니, 낭만과 투지를 겸비한 글쟁이였나 봅니다. 문득, 이런 패기와 발랄함이 있는 작가가 시대에도 있을까 있다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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