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본문
1️⃣ 한줄 평
한 화가가 현대사의 격랑 속을 가로 질렀을 때 나오는 강렬한 이야기들. 그림도 내용도 다 아름다운 책
♓ Inuit Points ★★★★☆
강렬한 색채와 뚜렷한 조형 때문에 제가 무척 좋아하는 유영국 작가입니다. 그의 전기인데, 저자가 작가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의 그림만큼이나 강렬했던 작가의 삶이 감동적입니다. 특히, 유영국 전시와 엮어서 읽으면 딱 좋은 책입니다.
🎢 Stories Related
- 제가 수술 후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머리 복잡하지 않은 책으로 선물 받은 책입니다.
- 당시 조금 읽다가 몸이 힘드니 눈도 자꾸 미끄러져 책장 덮어둔 후 한참 잊었었습니다.
- 최근 '산은 내 안에 있다'라는 유영국 전시전을 기화로 읽었고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빛과 색채의 화가
박규리, 2017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전기란게 딱히 재미나기 힘듭니다.
흠모까진 아니더라도, 평소 좀 친숙하고 관심 많은 분야의 인물이 아닌 한 재미가 없죠. 제가 유영국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인물로는 이 세가지 어디에도 안걸리는데, 매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내용이 단단하고, 중간중간 그림은 눈이 즐겁습니다.
유영국 작가의 모험이 시작되는 부분은 전형적 캠벨입니다.
울진 부잣집 아들로 유복했지만, 서울의 고등학교로 유학을 가서 첫째 시련을 겪습니다. 키크고 공부 잘해 반장까지 되었건만, 일본인 선생이 자꾸 애들 밀고를 시킵니다. 고하지 않고 얻어 맞다가 자퇴를 합니다. 이후 일본으로 가서 배를 타려했는데, 고졸이 아니라 해양학교에 입학이 안됩니다. 궁여지책으로 미술을 합니다.
비범한 시각이 돋보입니다.
미술을 하면서도 10년 후, 20년 후에 차별화 될 지점을 찾습니다. 결론은 추상이었습니다. 모두가 구상을 그릴 때 그는 추상을 합니다. 한국화단에서 시작부터 추상에서 출발한 화가는 그가 최초입니다.
탁월한 일꾼입니다.
일본이 제국주의가 심화되어 미술계도 탄압을 받을 때 그를 비롯해 많은 한국 예술가들이 일본을 떠납니다. 그도 고향으로 돌아오고, 집안의 어선을 탑니다. 그리고 그의 배는 거의 매번 어획고 전국 1등을 합니다. 치열하게 살고, 승부심도 많은 터에 빼어난 경영적 재능을 보입니다.
여러 번 죽다 살아납니다.
서울로 옮긴 후 서울대 미대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좌우 갈등, 친일파 득세 등으로 관둡니다. 그리고 터진 한국전쟁. 징집을 피해 숨어 살면서도 식구 먹여살리려 숯 장사, 옷 장사 등을 하며 은신합니다. 결국 인민군에 잡혀 갔다가 겨우 탈출, 서울 수복 이후엔 부역자라고 국군에 핍박받고 또다시 강제 징집 될 뻔한걸 아내가 겨우 살리죠.
한번 더 장사꾼 재질이 발동합니다.
고향 울진으로 내려와 껍데기만 남은 가산 중 양조장을 재개합니다. 전쟁통에 위로가 되는 술은 날개돋힌듯 팔리고 장사가 잘 됩니다.
다시 가난한 화가가 됩니다.
서울로 와서 그림에만 몰두하며 평생을 지냅니다. 이 대목에서 스스로 많이 생각했어요. 나라면 저기서 잘 되던 사업을 접고 그림 그리러 상경할 수 있을까. 선뜻 그러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경탄할 만한건 그의 한마디입니다.
"60세까진 기초를 쌓고, 이후에 자연으로 넘어가겠다."
기하로 시작한 추상화. 서울대, 홍대에서 미대 교수를 할 정도로 높은 경지에 오른 그이지만, 그래도 60까지 기초만 닦는다는 저 스케일에 어안이 벙벙할정도로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그림들. 슬쩍 쓰는 곡선에서 처마가, 나무가, 해와 물이 보입니다. 단순하면서 복잡한, 추상같지만 구상이 보이는 신기하고 매혹적인 그의 조형언어는 저 평생의 노력의 산물이란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력적인 작가 유영국. 그의 전시회는 직접 가서 볼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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