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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1. 선언

Inuit 2006. 7. 18. 22:59

이어령

부제: 한국인이 이끄는 첨단 정보사회, 그 미래를 읽는 키워드

올 초에 중앙일보에 연재된 디지로그라는 신년기획을 짬짬이 열독했던 적이 있습니다.
디지털은 기술일 뿐이고 속을 채우는 스토리가 녹아 있어야 한다는 당시 제 결론과 "Digilog"라는 개념은 매우 합치되는 부분이 있었고, 한국의 정서가 디지털에 어떻게 녹아 들 수 있는지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었지요. 불행히도 연초에 해외 출장이니 프로젝트니 바쁜 일이 많아 처음 몇회만 읽고 나머지는 후일을 기약했었는데, 책으로 양장되어 나왔길래 사 보게 되었습니다.

정신적 여유가 생길 때까지 꼭꼭 참았다가 읽었을 정도록 기대가 많았던 책은, 읽고나니 의외로 실망스럽습니다.
몇몇 글을 통해 접한 이어령 선생의 필력은 감탄스러운 경지임을 알고 있는데, "디지로그"라는 개념은 아직 한권의 책 분량은 아닌 듯 싶네요. 이어령 선생이 미래를 전망하는 토플러나 삶과 공부가 혼연이 된 드러커 선생에 크게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제 기대가 과했던 탓일까요.

잘만 packaging 했으면 탁월할 수 있었던 디지로그란 개념에 대한 통찰은 책속에서 금새 힘을 잃고 빛이 사그라질 뿐아니라, 한국적, 전통적 가치가 의미있다는 내용이 설득적이지 못하고 지리하게만 반복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차라리, 민족적 우월감과 자족을 느끼기에는 이규태 선생의 글이 낫지요. 특히 locality에서 globalism으로 나아가는 통합적 사고의 틀이나 보편 타당성이 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미덕은 많습니다. 이어령 선생의 입담은 단어를 해체하고, 역사를 거스르며, 시간과 공간을 씨줄, 날줄로 넘나들며 재기발랄함을 보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우화를 이렇게 뒤틉니다.
세왕자가 있었다. 각자는 보물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가 천리안으로 먼 나라 공주가 중병에 걸린 것을 알아냈다. 둘째의 천리마로 그들은 한걸음에 달려갔다. 셋째 왕자의 약초로 그 공주를 낫게 했다. 공주는 과연 누구랑 결혼해야 하는가? (전통적인 답변은 셋째이다.)
디지로그에서는 약초를 소유한 셋째를 농경사회, 거리를 단축한 둘째를 산업사회, 먼 곳의 정보를 알아낸 첫째를 디지털 정보사회로 비유하며 세 왕자의 공존을 논합니다. 또한 시루떡의 신호학과 떡고물의 은밀함에 눈이 닿은 것도 인상 깊습니다.
어찌보면 말장난으로 보일만큼 음절을 분리해가며 다양한 함의를 읽어보려는 노학자의 노력은 비선형적이고 high context 문화에서만 창출가능한 다양한 디지로그 개념의 분화와 통합을 이룹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독특하여 읽기에 지루하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디지로그는 미래학을 바라며 책을 들었던 제게 끝끝내 에세이로 다가와 섭섭했던 부분이 많았다고 줄여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간결하게 끝낼 수 있는 내용을 '1편 선언'과 '2편 전략'으로 나눠 팔겠다는 기획사를 탓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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