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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의 재구성

Inuit 2006. 11. 19. 19:15
자, 영화를 하나 보려고 합니다.
영화 사이트에 갔는데 몇개의 모르는 영화들만 있습니다. 참조할 만한 정보라고는 영화 전문가란 사람들의 별점만 있습니다. 어떤 영화를 고르시겠습니까?


이번도 뭐 정답 없는 문제입니다. 요즘은 댓글이라는 부가적 정보가 있고, 영화 전문가가 따로 필요한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마추어 리뷰어(I mean, non-paid reviewer)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별점이 감탄사나 이모티콘으로 격하된 감이 있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별점은 의미소였습니다. 그리고 쓸만한 영화는 바로 별점 세개 짜리라는 농담이 있었지요. 다섯개가 아니라.

흥행의 재구성

김희경

부제: 히트하는 영화의 진실 혹은 거짓


전문 비평자의 높은 평가를 받는, 즉 별 네개나 다섯개 보다 별 세개를 선택하면 실패하지 않는 이유야 쉽습니다. 지나친 작가주의는 피곤할 뿐이고 흥행은 대중성이 담보하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러한 영화 흥행의 구조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와 구조적 성찰을 엮어낸 책이 바로 '흥행의 재구성'입니다.
이 책은 1) 기획 과정, 2) 개봉 마케팅, 3) 관객의 수용자적 특성 그리고 4) 히트 영화의 사업적 속성이라는 네가지 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워낙 영화라는 재료가 친근한 까닭에 이 책이 아우르는 다양한 깊이는 어떤 의도로 책을 읽던 원하는만큼의 만족을 얻도록 텍스트와 컨텍스트가 잘 안배되어 있습니다.



Nobody knows anything
정말 하늘도 미리 알기 힘든 것이 영화의 성공여부입니다. 의외성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영화산업에서 세계 최고의 위치를 점하는 헐리웃 영화는 나름대로의 생존법칙이 있으리라 믿어집니다.
헐리웃 영화의 특징이라면 무엇을 꼽을까요? 단순한 내러티브, 해피엔딩, 불에 타고 폭발하고 물에 떠내려가는 막대한 자금. 이런거겠지요. 헐리웃 영화의 기획과정과 성공공식은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흥미롭습니다. 제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가장 근원적인 부분은 무수한 아이디어를 제한된 시간에 presentation 해야하는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니 한줄로 복잡한 개념을 요약하는 one line pitching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에일리언은 '우주선의 죠스'였다고 합니다. 유사하게 말해 인디펜던스 데이는 스타워즈가 V를 만났을 때이고, 맨인블랙은 고스트버스터스가 ET를 만난겁니다. 결국 이렇게 클리어하게 전달되는 '하이컨셉' 영화가 작업의 자금을 지원받을 확률이 무척 높으니, 원래부터 오리지널인 영화는 애초에 헐리웃의 품에 안길 가능성이 희박한 겁니다.

그리고 거액의 스타 개런티와 제작 비용 마케팅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헐리웃이 그동안 학습해온 여러가지 기법을 동원합니다. 예컨대 프리 마케팅과 테스트 스크리닝을 거쳐 결말을 다시 고치고 촬영도 다시 합니다. 어찌보면 QC 작업이기도 하지요. 이 과정에서 또 모든 영화는 서로를 닮아가고 과거를 모방합니다. 이제 리마커블 해질 여지는 더더욱 줄어듭니다.
이렇게 전형화된 헐리웃 제작 패턴은 성공의 평균 확률을 높이고 분산을 줄이는 과정이라고 간주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뻔한 영화를 왜 볼까요. 어차피 관객도 기대하는 부분이 딱 그만큼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집을 떠나 어두컴컴한 극장안에서 판타지를 맛보는거지요. 스토리가 너무 복잡하거나 생경한 내러티브는 부담스럽습니다. 책에도 나오는 바처럼, 오히려 경제나 삶이 스트레스로 가득한 시절에 영화산업은 상종가를 치게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이 과거 성공한 스토리의 변종을 통해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동종교배는 생물이 그러하듯 다양성의 상실로 멸절하기 십상입니다. 헐리웃은 그에 대한 대비책도 있습니다. 바로 인디 영화입니다. 인디로 성공한 영화 제작자를 영입하거나, 우리나라 영화의 대본을 사서 재작업한다든지, 작은 돈으로 다양성을 보충해 가며 지금 가진 우성의 유전자를 이어나갑니다. 얼마나 오래갈지는 몰라도 당분간은 이런 패턴을 반복하겠지요.


Business Drives Movies
이 책은 저자가 미국에서 문화과정의 MBA를 이수하며 배운 프레임웍과 자료를 바탕하였기에 사업적 관점의 조명이 탁월합니다. 저는 비즈니스와의 놀라운 유사성과 시사점이 있어 책을 잡은 내내 신이 나서 줄을 긋고 낙서하고 메모하며 읽어댔습니다.

예컨대 고딘씨의 리마커블이란 개념을 영화판에서는 'shock value'라 부르며 성공의 요소로 쳐줍니다.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며 생산설비의 discountinuity가 오히려 완화되는 점은 경제학 개념에서의 short run, long run에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capacity의 연속성은 마찰을 줄여 디지털 산업의 특징인 수렴성과 양극화 현상을 촉진하여 오히려 소규모 극장이 늘어도 소규모 영화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현상을 보입니다.


또한, 시사회와 대규모 선전의 심리학도 그렇습니다. 서로 판단이 힘든 낯선 상황에서 한명이 킥킥 웃으면 모두 와 하고 웃어버리며 재미있는 영화가 되는 효과를 얻거나, 엄청난 광고비를 쏟으걸로 보아 분명 대단한 영화구나 하는 인상을 심어줍니다. 유사하게 기업에서도 viral marketing 뿐 아니라 좀 더 복잡한 상황에서의 정교한 signaling 기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물론 마케팅의 기본적 tool이므로 영화라고 다르기를 기대할리 없지만 말이지요.

이 뿐인가요. 시간이나 여력이 없어 판단하기 힘든 영화는 시나리오를 사서 캐비넷에 감금해 버리는 행위 조차도, 거대기업이 작은 벤처가 경쟁사로 가서 얻을 damage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냥 사버리는 practice와도 매우 닮았습니다.

사업적 접근법을 문화에 적용하여 성공한 사례는 프랜차이즈 영화(franchise movie)라고 생각합니다. 프랜차이즈 영화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처럼 성공한 원작을 시리즈로 만들어내는 영화입니다. 프랜차이즈 영화가 헐리웃에 가져다 준 첫째의 공은, 영화의 주도권을 스타가 아니라 캐릭터로 귀속시킨 점입니다. 스타의 후속영화에 대한 제어권을 일정부분 캐릭터가 소유하므로 과다한 개런티를 지급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이들어 가슴 봉긋한 헤르미온느보다 1편에서 만큼 깜찍한 헤르미온느가 있다면 전 후자를 절대적으로 선호합니다. 제가 매료된 것은 롤링 여사의 판타지 세계관이지 엠마 왓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정적인 원가 절감을 가져옵니다. 둘째로, 캐릭터는 영화사가 보유하면서 후속 사업을 지속하게 합니다. 잘만 관리되면 미키마우스처럼 100년도 가겠지요. 물리적으로 지치지도 않고 세계 어디도 마다않고 가니 레버리지 효과가 큽니다. 무엇보다, 영화 흥행의 주된 비용 계정인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점입니다. 1편이 성공했고, 그 다음 스토리 구조를 완전히 이해하고 눈으로 확인하러 가는 관중에게 이 영화가 무슨 영화인지 설명할 필요가 무엇이겠습니까. 다만 이렇게 멋지게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크리스마스까지 납품하겠습니다. 이 두가지 메시지면 충분하지요. 흥행의 변동성을 최소화하면서 마케팅 비용까지 줄이니 금상첨화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장화홍련을 필두로 대두된 기이한 현상입니다. 이른바 어설픈 내러티브의 흥행성공입니다. 2000년대 들어와 전통적 관점으로는 말도 안되는 스토리가 성공하는 이유가 바로 관객이 한번 상황에 몰입만 된다면 모자라는 스토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더 만족스러운 스토리 소비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소극적 UGC 개념으로 봐도 되고, prosumer라는 관점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다. 인터랙티브가 부족한 영화라는 전통 미디어에서 상상을 통해 소비자가 참여할 여지를 남긴다는 점이 신선한 발상 아닙니까.
이 모든 유사성과 시사점이 어차피 영화를 산업화 한 헐리웃의 공이고 업보겠습니다.


Excerpts
현직 문화담당 기자가 쓴 책이라서, 글이 재미있습니다. 딱딱한 재료를 양념 치고 조리를 하여 말랑말랑 잘 읽히지요. 공감이 가는 섬세하고 힘있는 펀치라인이 많습니다.
영웅은 개처럼 맞는다. 영웅은 끝까지 두들겨 맞고 멸시를 당해야 한다. 그래야 그때까지 당한 것의 총합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센 반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부활한 예수의 벌거벗은 허벅지가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폭력의 강도를 높여 스펙터클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며
요즘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영화를 만드는 생산자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관객들의 분노보다 관객들의 무관심이 되었다. 엔터테인먼트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심박수를 높이는 것이다. 관객들은 자극받고 도발당하고 분개하고 도전받기 위해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오리지널 영화가 되기 위한 노력보다 타협의 산물이 받아들여지는 현상에 대해
영화관람은 집단으로 겪는 일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고독한 행위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영화관람은 강한 사회적 제의와 개인이 소설을 읽으면서 겪는 백일몽의 합성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영화가 주는 경험의 가치에 관하여
책은 영화 자체보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그 물밑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리고 영화 자체의 재미 뿐 아니라 흥행에도 촉각을 기울이는 현 세태의 궁금증을 효과적으로 해소합니다. 어찌보면 공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영화판을 들여다 보았기에 더이상 영화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재미가 없을 듯 하지만, 어차피 알면서 원해서 속는게 영화입니다. 그래서 밑바닥을 알고 보면 영화보는 일이 더 즐거워 질 듯 합니다.

대단히 무거울 가능성이 높은 내용을 매우 깔끔하고 섬세하며 단정히 엮어낸 책입니다. 책은 주인을 닮는다던데, 이 책의 주인공이 궁금해질 따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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