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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을 앞둔 커플들에게

Inuit 2007. 3. 25. 09:35
우리나라 외식 산업의 규모는 연 48조로 추정 합니다. 이 중 약 2%를 차지하는 거대한 외식 체인점이 어디인줄 아십니까.

바로 결혼식장입니다.

한해 결혼하는 신혼 부부가 30만쌍입니다. 식사비가 도시와 장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평균 2만원정도로 상정하고 하객도 평균 150명으로 가정하면 한 예식 당 300만원, 한해 총 9천억원이 되지요. 엄청나지 않나요?

저만해도 결혼식에 한달 평균 2회는 가니, 제가 사용하는 외식비로 치면 비중이 2%가 아니라 20%는 되는 듯한 느낌니다.

제가 굳이 하객 맞는 좋은 잔치를 외식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사실 한달에 한두번 주말에 시간내어 축하하러 갔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는 경우에 더 기분이 좋겠지요. 하지만, 혼주의 의사와 무관하게 예식장은 질 낮은 음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비스는 바랄 수 없고 얼른 자리잡고 앉아 배나 채우면 다행일 때가 많아요. 값은 매우 비싼데 말이지요.
좋은 날 좋은 기분에 편승하여, 돈 내는 사람과 밥 먹는 사람으로부터 편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 경우는, 음식이야 허기만 채우면 족하고, 여러 볼 일로 바쁜 주말이라 식사 안하고 그냥 갈 때도 있으니 큰 상관은 안합니다.

하지만, 공장에서 물건 찍듯 초 스피드로 해치우는 결혼은 정말 목불인견입니다.
결혼식장들이 주말 이틀, 그것도 봄, 가을 성수기 한철에 바짝 당겨야 사는 이치를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50분 단위로 예식장을 돌리는 점은 매우 씁쓸해요.
강남의 작은 예식장들은 하나의 식장만 갖추고 한시간마다 혼례가 이뤄집니다. 하지만 그보다 오래 걸리는 식사는 넉넉히 치루기 위해 서너층에서 진행되더군요.
그러다보니 10분만 늦게 도착하면 주례사는 끝나고 행진입니다. 15분 지나면 어김없이 식이 끝나있지요. 사진만 이삼십분을 찍게 배려해줍니다. 완전히 사진관에 밥집일 뿐 결혼식장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어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여기입니다.
혼인은 두 사람이 하나의 가족을 이루는 중요한 순간이고 인생의 큰 전환점인데 아무런 감흥없이 짝을 맺어주니 보는 제가 다 섭섭합니다.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결혼식이 둘입니다.
첫째는, 제 절친한 친구인데 성당에서 혼인을 했습니다.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였습니다. 결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앞으로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충분히 생각해 보도록 배려해 주시고, 유쾌한 유머로 기분도 풀었다가 엄숙히 무릎 꿇고 기도도 하도록 하면서 자연스레 결혼을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이 부분은 참 중요하거든요. 머리로 아는게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부분말이지요.

예라는 것, 의식 (ritual)이란게 다 그래서 나온겁니다. 할머니 보내드릴 때 장례를 치루며 절절히 느꼈습니다. 장례란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서 서서히 떠나 보내도록 수천년을 거쳐 정제되어온 지혜란 점을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방 소도시의 진보적인 목사님이었습니다. 하객인 관중과 호흡하며 박수치고 환호하는 즐거운 혼인식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어찌나 유쾌하고 인상적이었던지 신부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할 정도입니다. 결혼을 축하하러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 흥겨워하며 진심으로 결혼을 즐겼고 축하해주었습니다.
흥행이 제대로 성공한 공연이었다고나 할까요.


제가 전통을 고집하는 유학자도 아니고, 우리 것만 찾는 국수파도 아닙니다. 하지만, 요즘 국적 불명에 의미 절멸의 혼인식은 갈 때마다 짜증이 납니다. 게다가 도대체 이벤트랍시고, 신랑 만세와 팔굽혀 펴기는 왜 시킬까요. 엄숙할 필요는 없지만 재미로 희롱할 자리는 따로 있겠지요.

요즘 혼인 시즌입니다. 새출발하는 많은 커플들의 앞날에 행운을 비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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