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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비즈니스 속, 가벼운 소통들

Inuit 2008. 6. 15. 17:30
이번 출장 중 한 꼭지는 Intel Capital의 CEO Summit이었습니다. 세계 각지의 200명의 벤처 CEO와 200명의 글로벌 대기업 임원을 모아놓고,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고 네트워킹까지 도모하는 자리였습니다.

일정 내내 에너지가 넘쳐나는 거대한 회합이었고 여러 가지로 인상 깊었습니다.
우선, 시장과 범위 면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좁은 세상(small world)이 통탄스러웠습니다. 또한, 창의성과 생산성으로 세계 경제의 수위를 차지하는 미국의 저력도 여실히 보았구요. 중국의 기승은 매번 놀라도 또 놀랍습니다. 또한, 이런 비즈니스 기회를 통해 사회에 공헌도 하고 실질적인 투자 수익률도 높이는 인텔 캐피탈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지요.


일과 관련 없는 몇 가지 주변적 상황 중 인상 깊은 에피소드들이 있었습니다.

1. 거물급 농담
첫날 이른 아침, 인텔 캐피탈 소다니 사장이 기조 연설을 했습니다. 여러 현황을 소개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뜻으로 'you can't touch this.'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띵 띠리리~(can't touch this) 하는 음악과 함께 MC Hammer가 등장. 다들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해 졌습니다.
사장: "당신 나올 시간은 이따 밤이야. 지금은 내 시간이거든."
해머: "어, 그래.."
어깨를 으쓱하고 그냥 갔습니다. 와우. 저 왕년의 유명스타 해머가 왔다가 그냥 가네.

이게 다가 아니죠.
저녁먹고 해머가 특별 강연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해머 특유의 전주곡이 나오는데 엉뚱하게 소다니 사장이 우스꽝스러운 댄스복을 입고 춤을 춥니다.
해머: (뛰어나와서) "지금은 해머 타임이거든요?"
사장: "어 그래, 미안"
내려갑니다.

써놓고 보면 대충 재밌지만, 현장에서 볼 땐 아주 우스웠습니다. 스타들이 실없이 구는 부분도 우습지만, 잠깐의 망신을 위해 엄청난 준비와 노력을 한 부분을 생각하면 그리 가볍지만은 않지요.
나중에 인텔 오텔리니 사장까지 나와서 춤추고, 다음날 파티에 다시 또 해머가 나타나서 또 한번 놀랐습니다.


2. 농담 그리고 진담
노벨 평화상 수상자 Walesa의 특강이라고 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이야기 듣던 중 수상해서 재빨리 검색해보니 우리는 바웬사라고 알던 그 분.
통역을 끼고 강연을 해서, 처음엔 매우 딱딱하고 지루했습니다. 웬걸. 근엄한 표정으로 어찌나 농담을 잘 하든지.
이런 식이죠.
우리 나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독일과 러시아죠. 그들은 서로 방문을 즐기는 듯 했습니다. (전쟁을 말함). 그런데 서로 방문하러 다니다보니 폴란드가 지름길이란 걸 알았나봐요. (침공) 때로는 지나러 왔다가 그냥 눌러 앉아 살기도 했지요. 폴란드가 워낙 아름답잖아요.
(민주주의의 단점을 이야기 중) 그럴리는 없겠지만, 중국이 EU에 가입한다고 합시다. 다수결로 하면 중국의 뜻대로 모든 결정이 이뤄지겠지요. 다수결의 절차에는 문제가 없는데 나머지 수두룩한 국가들의 다양성은 묻혀버립니다. 문제가 있지요? 그래서 저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유럽 나라들이 애 셋 갖기 운동을 펼치자고 주장하고 다닌답니다.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폴란드 대통령까지 했던 바웬사 답게 탁월한 연설을 펼쳤습니다. 농담과 가벼운 이야기 사이사이로 엄청난 화두들을 던져 CEO 들이 어질어질 했습니다. (중국 사람도 많은데) 공산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 (미국 사람은 더 많은데) 슈퍼 파워 미국의 단극 체제의 문제점, (모두가 재계인데) 세계 경제가 이대로 가도 좋은가 등등, 듣는 사람 식은 땀 나는 주제를 직설적으로 툭툭 던졌습니다.
강연 후,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3. 아는체 하기, 그리고 안면 트기
인텔캐피탈 CEO Summit의 가장 재미난 파트 중 하나가 elevator pitch입니다. 마이크가 살아있는 5분 동안 자기 회사에 대한 세일즈를 마음껏 하는 자리입니다. 매우 농축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집니다. 후속의 비즈니스 기회도 많구요. 저는 회사 솔루션 전략을 한페이지로 만들어 소개했습니다.

다음날 합석한 분은 Oracle SVP인데, 저를 기억하더군요. 뿐만 아니라 제 메시지의 핵심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 그림을 얼추 따라 그리더군요. 얼마나 내가 피치를 잘 했으면 그럴까 스스로 감탄했습니다. ^^;;
..는 농담이고, 역시 대기업의 임원이면 그만큼의 지적 능력이 따라주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과 적절한 암기력.
또 재미난 건, 이 분 뿐 아니라 제 피치를 기억하고 먼저 다가와 인사해주는 분들이 꽤 많았다는 점이지요. 약간 인상 깊으면 일단 거기부터 시작하여 소통하는 미국식 문화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저는 잘 익숙해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4. 식사중
식사 시간도 서로 인사하고 네트워킹 하는 시간입니다. 원탁에서 뷔페 음식을 가져다 먹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느 아침, 제 오른쪽에 일본 아저씨가 있더군요. 건너편 분이 소개해 주는데 소니 사람이랍니다. 전 평소 궁금하던 이슈를 물었지요.
UMPC에 MID가 즐비한 판국에 VAIO는 고가로 살아 남겠느냐, 닌텐도DS나 WII가 난리인데, PS3와 PSP 조합은 너무 엘리트 주의 아니냐 등등 질문을 했습니다.
이 아저씨 질문을 요리조리 잘 피해다닙니다. '닌텐도 사람들 내가 봐도 참 잘하고 있다', 'UMPC 나도 참 걱정이다' 등등.
나중에 이야기 끝나고 명함을 받으니 VAIO 미국 사장. 고수더군요.

더 놀란 일이 있습니다. Kris라고 인포시스(Infosys) 사장과 식사를 하게 된겁니다. 접시에 들고 원탁으로 와서 빈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부드럽게 묻습니다.
다들: '그럼요!'
인포시스는 3조 매출 규모이고, 인도에서 존경 받는 기업입니다. Kris 사장은 전날 대담 시간에 나왔었습니다. PC 수입 조차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 허가 기간이 1년 가까이 걸려 그 동안 모델이 단종되어 수입허가를 또 받던 그런 시절에 창업했던 고생담과, 기업 성장에 따른 고민들과 경험을 들었습니다. 인포시스는 '세계는 평평하다'의 모티브가 된 기업이기도 합니다.
왠만한 사람 보면 그런가보다 하는데, 이 분께는 정중히 일어나 자리까지 가서 인사드리고 왔습니다.
직접 뵈어도 대단하시더군요. 웬만하면 조용한데서 드시지 공짜 뷔페 내려와 드시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