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남 일화의 인천전이 있는 날입니다. K리그 개막전 승.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AFC) 파죽의 2연승으로 물오른 성남입니다. 상대가 강팀 인천이지만 홈경기니 해볼만 합니다.

인간은 밤에 소변 욕구가 줄어든다. 바소프레신 덕이다.
 물을 마실 수 없으니 수분 감소를 막기 위한 방편이다.
진화적으로도 유리한게, 밤에 목 안마른 대신, 소변 때문에 잠 안깨도 되니 좋다.

하지만, 비자연적인 상황은 인간의 프로그램에 예외처리 규정마저 없는 법.
수술 한 아이는 식사를 할 수 없어 하루종일 수액을 맞는다. 그러다보니 밤에는 고역이다.


시즌 오픈 전부터 전문가들로부터 중위권으로 점쳐졌던 성남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그나마 성남 뒷심의 뿌리인 허리를 들어냈으니 말입니다.

아이는, 가뜩이나 온 몸이 아프다.
엉겨붙고 부어버린 모든 내장들,
복강경이 들어간 세군데 구멍.
어린 핏줄이라 제대로 못 찔러 생긴 바늘구멍,
초보 간호사가 구경 틀려 다시 찌른 구멍,
바늘이 혈관을 뚫고 나가 생긴 부종까지.

미드필드 이야깁니다. 주장이었던 김정우는 군 문제로 상무가고, 이호는 중동으로 날랐지요. 설상가상으로 빼어난 장학영, 조병국도 입대설이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아픈 아이 낑낑 대는 소리에 퍼뜩 깨어 보면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가려고 혼자 분투중.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해도 세시간 있으면 또 조용한 인기척.

그러나, 내전과 국제전을 동시에 치러야 하는 성남은 얇은 스쿼드에도 불구하고 정예로 거듭났습니다. 정대세가 활약하는 가와사키 프론탈레를 홈에서 2:0 제압. 넘4벽 사샤의 친정팀인 멜버른 빅토리 원정경기를 또다시 2:0 승리로 장식했지요.

맹장 터진 아이의 난적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 고름집.
터진 맹장이 등까지 돌아 문제가 심했지만 최대한 씻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은 상처와 잔존물이 다시 고름이 되면 재수술까지 해야한다.
 둘째, 시술부위다.
통상적 맹장수술은 괜찮은데 터진 경우는 감염 우려가 있어 예후를 봐야 한다.
셋째 장유착이다.
장끼리 들러붙어 기능을 못할경우 장마비나 부차적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운동을 많이 해서 장들이 자리를 잡게 해야 한다.

K리그 개막전은 신생팀 강원. 그 상승세가 무섭지만 최근 3년 개막전 무승의 징크스도 무섭지요. 하지만, 몰리나 - 라돈치치 - 파브리시오 의 3각 편대 위력은 정상급이었습니다.


금요일 칼퇴근하여 꼬박 이틀, 아들과 함께 했다.
토요일은, 아파서 눈물 글썩이거나 까칠한 짜증 내는 아이
설득하고 달래서 운동시키는게 일이었다.
목표는 가스 배출. 금요일은 하루 여덟번을 돌았는데 무소식이었다.
다행히 토요일 오후되어 피식 성공.

마침 인천전은 탄천 홈경기. 일찌감치 아이와 함께 보기로 약속했었습니다. 아들은 직관이 무산된걸 누워서도 아쉬워 했지요.

미음 먹이며 회복을 빠르게 하려했는데,
담당의는 아직도 장이 부었다고 물만 허락한다.
음식에 대해선 예민해진 아이라서
 금요일부터 아이앞에서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
아픈 아이두고 식욕도 없고.
단지, 아내가 낮에 오면 잠시 '바람쐬러' 가서
딸과 이야기 나누며 싸온 음식을 도둑질하듯 먹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받은 전화는 아이의 기쁜 목소리입니다. '아빠 성남 1:0 이기고 있어!' 케이블일지라도, K리그를 TV 중계 해주는게 희한하고, 고새 몇분이나 되었다고 골 넣은 성남도 신통방통합니다.

일요일 오후되어서 딸 데리고 귀가. 아내와 교대다.
집에 오자마자 TV를 켠다. 다행히 인천전 축구 중계를 한다.
스코어를 본다. 1:0이다. 아니 다시 골이다.
또 골 또 골. 순식간에 5:0이다.

작년 플레이오프 때 기대 이하의 플레이로 우리 부자의 속을 상하게 했던 파브리시오 선수, 올해는 포텐 제대로 터지면서 연일 플레이 메이킹을 합니다. 게다가 정대세 선수마저 자신을 겸허히 돌아보게 만든 라돈치치. 확실한 공간 만들기와 게임의 흐름 바꾸기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몰리나...

아이와 통화를 한다.
방금전까지 아팠던 모습을 못봤다면
아이가 한시라도 아프다고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아이는 최고의 기분과 최상의 컨디션이다.
골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를 각인하여 아빠에게 조잘댄다.

축구는 스포츠입니다. 그냥 경기고 게임이지요.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희망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저도 고된 주말에 웃음을 지을 수 있었고, 아이도 멍하니 바라보던 주말 TV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6:0. 성남 창단 이래 최대 골 타이 기록.
올시즌 최다 골, 최다 골 득실.
노란 옷 입은 선수들이 고맙다.
아비가 이틀 붙어서 지극 간병해도 주기 힘든 기쁨을 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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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꼬날 2010.03.14 22:13

    아이~ 이누잇님, 참 다행이에요.

    • BlogIcon Inuit 2010.03.14 22:43

      네. 꼬날님..
      관심과 격려 고맙습니다.
      많은 분들의 응원이 힘이 되고 있습니다.

  2. BlogIcon 해피씨커 2010.03.14 23:08

    6:0 결과는 타팀팬으로 충격적이였죠.. 잘할꺼라 예상하던 팀도 아니고, 것도 짠물수비의 인천이라니..

    어쨌든 아드님이 기운을 차렸다니 다행이네요 ^^

    • BlogIcon Inuit 2010.03.14 23:12

      그러게 말입니다.
      딴팀도 아니고 인천전 승부가 그리 날줄이야.. -_-

  3. BlogIcon 유정식 2010.03.14 23:38

    잔잔한 부정(父情)이 전해 옵니다. 아이가 아파서 여러 모로 힘드셨을 것 같네요. 잘 회복되기를 빕니다. 전 제 아들이 말을 잘 안들어 매를 들었는데....후회스럽습니다.

    • BlogIcon Inuit 2010.03.15 00:02

      네. 같은 입장이라서 잘 아시겠지만 아이 아프면 마음이 많이 아파요.
      그덕에 이런저런 생각도 많고 느끼는 점도 많지만요.

  4. BlogIcon 띠용 2010.03.14 23:45

    우와 성남의 승리와 아드님의 기분좋은 모습이 참 보기가 좋네요^ㅇ^

    • BlogIcon Inuit 2010.03.15 00:04

      부산도 어제 승리했죠?
      올해 K리그는 골이 많이 나와 재미있는듯 해요..

  5. BlogIcon 이승환 2010.03.15 00:49

    아저씨 멋집니다 ㅠㅠ

    • BlogIcon Inuit 2010.03.15 23:45

      노란옷 입은 아자씨들..

  6. BlogIcon 토댁 2010.03.15 09:17

    8삭둥이 큰 아들의 손등에는 아직도 신생아때 무사히 꽂았던 주사바늘 자국이 아직도 있지요.
    볼때 마다 가슴이 얼마나 쓰린지....

    오늘은 어제보다 나은 날이 될겁니다.

    힘내시고 밝은 님의 모습 기대해요..아시죠? 아자아자!!

    • BlogIcon Inuit 2010.03.15 23:46

      명석군이 애기때 고초를 겪었군요..
      그래도 쑥쑥 잘 큰거 보면 기분 좋으시겠어요.
      격려 고맙습니다.

  7. BlogIcon 은닉비 2010.03.15 13:01

    불행 중 다행인건가요, 아드님 빨리 낫기를 빕니다,

    • BlogIcon Inuit 2010.03.15 23:46

      네. 많이 다행이지요.
      고맙습니다.

  8. BlogIcon 엘윙 2010.03.15 22:43

    으윽..생생한 묘사에 왠지 몸서리가!!
    엄청 아프겠어요. ㅜ_ㅠ
    쪼꼬만한 녀석일텐데 잘 참았던 모양입니다.

    • BlogIcon Inuit 2010.03.15 23:48

      네. 꽤 아픈가봐요.
      엄살떨지 않는 녀석이 아프다고 징징대는걸 보면...

  9. BlogIcon Beatle 2010.03.16 01:19

    주말에 이누잇님댁에 큰 일이 있었군요.
    아이가 속히 쾌차하길 기도할께요.
    주말에 쌓인 RSS를 모두 읽음으로 처리를 해버려서 그냥 지나칠뻔 했네요.

    • BlogIcon Inuit 2010.03.17 22:38

      네. 고맙습니다.
      이제 많이 나았습니다. ^^

  10. BlogIcon mode_ 2010.03.16 04:32

    다음 사진엔 아드님이 그라운드를 뛰고 있는 사진으로 올려주세요~ 곧 쾌차하리라 믿습니다. +_+

    • BlogIcon Inuit 2010.03.17 22:38

      저도 그모습이 빨리 보고싶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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