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스몰 자이언츠가 온다 본문
작지만 강한 기업. 그들의 비밀은 무엇인가.
지난 글에서 말했듯, 제가 안 좋아하는 책의 부류 중 하나가, '~한 기업들의 특징' 책입니다. Good to great에서 상업적으로 대박을 내고 내용적으로 망신을 당했듯, 이런 책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가혹한 기준을 설정하고 통계와 숫자로 시간의 검증을 견딘 사례를 뽑습니다. 수천 수만개중 여남은 회사 정도가 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특질을 뽑아내고 분류한 후, 공통적인 것을 범주화합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경영이론을 붙입니다. 뚝딱 책 하나가 완성되지요.
여기에 적절한 글빨과 매혹적인 수치와 그래프 정도 붙여주면 걸작이 탄생합니다.
'아 이걸 해보면 우리도..?'
돈만 벌고 빠지는 떴다방에 가깝지만 더 나쁜 건 후견지명(hindsight bias)이란 점이죠. 아무리 분석기간을 길게 잡고 혹독한 조건을 주더라도 항상 무언가는 나오고 교훈은 있되 원인과는 무관합니다. 통계적 필터로 찾은 목록이라 그렇습니다. 마치 동전 앞면이 스무번 나온 회사들을 모아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다음번에 또 앞면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걸 원리나 지침으로 설명하는건 독자의 돈만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허비합니다. 유전자형으로 분류한게 아니라 외형적 특질로 분류한건 절대 원리가 될 수 없지요.
그럼에도 이 책은 읽어 보았습니다. 작은 기업이 강점을 발휘하는 부분이 뭘지 궁금했습니다. 소기업은 잘 다루지 않아 귀한 사례이기도 하고, 제가 하고 있는 일과 관련해서 규모적 특성에서 하나라도 배울 점이 있을테니 말이죠.
Small Giants
Bo Burlinbgton, 2016
안 자랄 결심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겁니다.
즉, 미국 전역 또는 특정 지역에서 유명한 작은 기업들이, 성장과 규모를 포기한 대신 다른 가치를 선택한 사례들입니다. 예컨대 삶의 자유, 동료애와 관계입니다. 그러면서도 성장만을 희생했을 뿐 낮은 이직률, 높은 직무충성도, 지역사회와의 연대, 고객과의 친밀도 등으로 적정한 수익성과 장기적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책은 그런 14개 회사와 추가적 사례를 다룹니다. 베스트셀러를 냈던 인크(Inc) 기자 답게 시원시원한 글줄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적어둡니다. 영리하게도 무리하게 성공의 비결을 추출하려 노력하진 않는것 같습니다. 대신 사례가 여기저기 묻어 있어 중구난방입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다만 잡지의 르포기사 처럼 읽힙니다.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재밌네. 정도입니다. 꼭 깨달음을 줘야 좋은 책은 아니지만 중간 무렵부턴 꾸여꾸역 읽습니다.
그리고 7장에서 반전이 있습니다.
부연설명이 필요합니다.
책의 초판은 2006년이고, 지금 이 판본은 2016년 10주년 기념판입니다. 전 그냥 10주년 기념으로 약간의 신규 보충 사례나 후일담 정도가 있을거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책은 7장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사례 14개 업체는 대부분 망가졌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로 저는 봅니다.
첫째, 창업자가 증자로 외부 자본을 들이지 않고 독자적 경영을 고집한 반작용입니다. 성장의 속도를 외부 주주의 기대에 맞추지 않고, 돈돈돈 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게 안 자랄 결심의 주된 이유인데 바로 이 부분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 자본만으로 성장하려니 성장이 늦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면 자기 이익, 자기 자본만 가지고 세상 변하는걸 따라잡기가 어려운 경우가 생깁니다. 안타깝게도 시간은 검소의 편이 아닙니다.
여기서 둘째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기업들은 창업자 개인의 의지에 특화시켜 절묘하게 돈 버는 시스템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문제는 창업자가 생물학적으로 늙어 버릴 때입니다. 거의 동일한 자질을 가진 적절한 후계자를 찾는게 쉽지 않고, 대개 저런 고인 물엔 좋은 자원이 없기 쉽습니다. 외부 자본이 이사회 한자리에 앉아 전략적 대화를 하다보면 유연하고 개방적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그 기회는 이미 모두 잃었습니다. 자식에게 물려주기도 어렵고 팔기도 어렵습니다. 결과적으로, 창업자 본인이 있어야만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직원입니다. 이런 케이스들은 직원에게 잘 해주고 안정적 고용과 종업원 지주 형태의 장기적 고액 보상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세월 지나면 고참 직원들이 회사의 걸림돌이 됩니다. 혁신의 재주는 없고 충성심만 있습니다. 거액의 주식은 회사가 종국엔 되사야하는 고액의 부채가 되어버립니다.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분배만 받는 지분은 책임을 희석하고 경영에너지를 휘발시킵니다.
세가지 범주화를 벗어나는 큰 원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책의 14개 사례 업체의 산업입니다.
영화 외주제작, 음식업, 부띠크 패션 의류, 1인 아티스트 음반회사, 경첩 제작, 상패 제작, 지역 건설 등입니다. 결국 이들이 안자랄 결심을 한 저변엔 어차피 작은 규모의 시장이 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영세하고 인적 자원이 얄팍한 상황에서 장기고용을 늘리고 동기부여를 하다 이례적으로 잘된 독특한 샘플들입니다.
말로는 성장하지 않기로 했지만, 실은 성장하기 어려운 산업입니다. 초판 적을 때만 해도 저 업체들이 돈을 좀 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업의 규모가 작고 영세한 상황에서 저들은 두 가지 파도를 맞습니다.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 화입니다. 이 거대한 압력에 맞서 대응하기엔 두가지 점에서 불리합니다. 규모가 작아 혁신의 여력이 적고, 직원이 고인물이라 혁신의 수행능력이 떨어집니다. 결국 변화의 파도를 올라타지 못하고 수장되지요. 재미나게도 그나마 잘 된 세 곳이 있는데 모두 음식업체입니다. 디지털과 글로벌화가 주는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은 업종이죠.
Inuit Points ★★★☆☆
이 책은 7장이 살렸습니다. 비교해보지 않았지만 앞의 장들도 다시 손봤을 수 있습니다. 잘된 사례를 나열하고 10년 쯤 후 망한 스토리를 붙이면서 통사적 의미가 생기는 존재가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애초 무리수였습니다. 서두에 말했듯 스몰 자이언츠의 성공 비결을 암만 파봐야 다음 세대가 배울 점은 거의 없습니다. 개정 판에서 두 가지는 배우죠.
- 산업이 어느 정도 중요하다. 성장을 안하고 버텨도 결국 도태된다.
- 고성장을 안하려면, 빨리 후계라도 정해라.
별 셋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