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생각의 해부 본문
연말에는 아무래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글도 폭식하듯 읽게 됩니다. 많이도 읽거니와, 마음 바쁜 연중엔 손 잘 안 나가는 책도 읽습니다. 제겐 엣지 시리즈가 그렇습니다. 연말이면 습관처럼 찾게 되지요.
Thinking
John Brockman etc, 2013
도킨스 왈, 세상에서 가장 값진 주소록을 가진 사람이라는 브록만 씨입니다. 저는 지식소매상 팀 페리스 그리고 브록만씨는 지식 도매상이라고 부르죠. 아카데미아에 있던 고요한 연구자를 스타 과학자로 만든 경우가 수두룩 해요.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제레드 다이아몬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대니얼 골맨을 포함해 수많은 석학을 책으로 대중과 연결하여 지식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든 사람이지요. 그런면에서 옵저버가 그를 '지식의 효소'라 표현한 것도 또한 적절합니다.
이책도 좋습니다. 무려 10년전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뇌부르도록 읽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불확실성을 견디는 과학적 연구의 첨단 지점에서, 그때까지 알려진 연구와 가설로 세상을 토론합니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의식이란 무엇인가, 도덕은 무엇인가.
특히 뇌과학을 도덕과 연계하는 시도가 제겐 신선했습니다. 의식과 뇌과학에 관한건 이제 꽤 많이 알려져 저는 살짝 익숙하니 말입니다.
큰 틀에서 보면 도덕은 영장류 특유의 공격성을 중화시키는 유전적 적응으로 바라봅니다.
사실 이건 연구 없이도 대충 이해가지요. 도덕, 종교, 규범과 법규는 사회적 평화를 직간접적으로 부과하는 사회적 발명입니다. 일견 자명해 보이더라도 도덕 논증을 위한 연구는 촘촘해야 합니다.
-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문화가 생물학적 전략이라는 명제 하에, 인간의 자기통제 능력을 주목합니다. 이 능력이 미덕을 진화시키고 자유의지까지 발현되는 줄기로 봅니다.
- 폴 블룸은 유아의 생득적 도덕관을 관찰합니다. 인간이 태어나서부터 선하다는 입증이 아니라, 동족편향의 본능이 성선설적 도덕을 형성한다고 상정합니다.
- 데이비드 피자로는 혐오의 감정이 도덕관과 정치적 스탠스를 형성한다는 연구 결과를 가져옵니다.
- 조슈아 놉은 도덕적 판단이 개입하는 시점이 우리 통념보다는 훨씬 빨리, 순식간에 선행함을 밝힙니다.
- 시몬 슈놀 역시 주변 환경의 더러움과 도덕과의 관계를 살피고, 도덕의 기본요소가 청결에 대한 유전적 감각임을 시사합니다.
의식은 더 많은 연구 내용이 있습니다. 가장 근간은 카너먼의 시스템 1 상황이죠. 정신적 산탄총이라고 부르는 시스템 1은 유사성 엔진이라는 점을 힘주어 말합니다. 그래서 효율이 좋은 대신 개연성에 취약하다는 거죠. 반면 기거렌처는 휴리스틱스가 정보를 제한해서 발휘하게 되는 효율에 외려 더 관심을 갖습니다.
결국 의식은 환원적인 요소로 보기 힘든 창발과정입니다. 그래서 의식을 환경과의 능동적 작용으로 보는 알바 노에의 관점이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하는것 같습니다.
더 하부로 내려간 신경과학의 연구들도 꽤 재미납니다. 지금은 더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신경의 묶음이 뇌일진대, 뉴론의 개별적 작용과 기능에서 뇌의 얼개를 하나씩 들춰내는 연구들이 흥미롭니다.
Inuit Points ★★★★☆
세부적 연구도 재미나지만 전체를 한 발 물러서서 보는 재미도 좋습니다. 우선 10년 전 시점을 고려해봅니다. 연구를 발표하는 연구자들의 톤앤매너가 눈에 띕니다. 지식의 최전선에서 최근 발견한 내용, 또는 연구중인 내용을 세상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니 연구자 자신에게도 이게 무얼 뜻할지 주저하면서도 용감히, 꾸준히 나아가는 모습이 감명 깊습니다.
그 논의의 과정도 주목할만 합니다. 서로 인간적으로 존중하면서도 마음에 맞지 않는 가설과 전개는 칼같이 짚습니다. 카너먼은 기거렌처를, 또 바우마이스터는 폴블룸과 피자로를 돌려까죠. 이게 흥미롭고 아름답습니다. 아직 증명해 나가는 단계에서, 겉보기 비슷해도 미묘한 결에 대해 섬세히 다른 스탠스를 취하며 서로 존중하고 반론하며 진실에 한발짝 더 가까이 가게되니 말입니다.
신경과학과 도덕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그 풍성함에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별 넷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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