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에이징 솔로 본문
다음 책은 뭐 쓰실거에요?
"에이징 솔로 같은 주제로 쓰려고요."
아 좋은 것 같아요. 저도 그문제에 관심 많아요.
희경님이 차관직에서 풀려나시고 숨 좀 돌린 후 식사 자리에서 나눈 대화입니다. 그 책이 이제 나왔네요.
그의 글을 흠모하는 저입니다. 블로거 시절, 필명 수산나 딸랑 하나 걸고 쓴 글들이 빼어나 대체 이 이는 누구지 싶었습니다. 실물로 뵙고 친히 지낸지 20년이 살짝 안되네요. 까미노 가는 사람들의 바이블인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길'은 물론 '흥행의 재구성', 최근 '이상한 정상가족'까지 그의 모든 글은 명품입니다.
김희경 2023
식사자리에서 잠깐 이야기 나눈 후 잊고 있다가, 신간의 제목보고 대화를 떠올랐고 바로 사서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얼굴이 화끈 거렸습니다. 희경님과 대화 나눌때 완전 헛다리 짚었다는걸 깨달았죠. 전 '에이징'에 공감하고 아는 체 했지만, 희경님의 눈길은 '솔로'에 가 있던걸 몰랐기 때문이죠.
우선 '에이징 솔로'는 새로 만든 말입니다. 나이들어가는 솔로, 또는 솔로 상태로 나이들어가기의 중의적 느낌입니다. 책은 이중에서도 여성 에이징 솔로로 범위를 좁힙니다.
이상한 정상가족에서도 제 소셜버블 밖에 있어 안 보이고 모르는 세상의 진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또 한번 고정관념을 전복합니다. 우리나라의 부부-자녀 '정상가족'이 29%이면 1인가구가 33%라고 합니다. 상당수 1인 가구는 끝내 1인으로 가고요.
우선 느낀건, 비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입니다. 비혼임에도 사회는 미혼(未婚), 즉 남편의 결핍으로 바라봅니다. 직장, 친구, 특히 원가족의 시선이 그러합니다. 나이를 먹고 자주적 삶이 가능할지라도 허상의 빈자리에 사람들은 주목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저술에서 남성 에이징 솔로를 제외합니다. 저자의 경험이 녹는 글이라 여성 비혼 쪽을 더 잘 알기도 하지만, 여성 에이징 솔로는 한국사회에서는 더 많이 늙어 여성성이 휘발된 이후에야 남녀 평등해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느낀건, 에이징 솔로의 생애과제입니다. 그냥 혼자니 외롭겠지, 또는 친구가 있다면 덜 외롭겠지의 피상적 이해 이면의 문제들이 많습니다. 생로병사 중 생 말고 로병사 모든 과정이 까끌거립니다. 예컨대, 아파서 병원에 가도 '가족' 보호자의 동의서가 없으면 수술 등 진료를 못받습니다. 삶의 마지막 무렵은 더 막막합니다. 온전히 의사결정 못하고, 자유로이 못 움직일 때가 두렵습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고 다른 나라처럼 나름의 방법은 있는데 한국은 이게 어렵습니다. 임의후견인 제도가 있어도 절차가 극악이고, 신탁은 돈에 대해 이야기하지 삶의 돌봄은 빠져있습니다. 만일 원가족과 척을 졌더라도 법상 상속 유류분은 득달같이 가져갈 수 있지만, 정작 삶의 마지막을 같이 하는 친구나 지인이 있더라도 법은 없는 사람 취급합니다.
이걸 저자는 싱글리즘(simglism)이라고 표현합니다. 오리엔털리즘, 레이시즘과 같은 1인가구 차별입니다. 싱글리즘의 눈으로 보면 한국의 모든 곳에 강한 '미혼'차별이 있습니다. '비혼'차별도 있고요. 예컨대 청약가점에서 1인가구는 무조건 불리하다든지, 보호자 없이 의료서비스를 받기 어렵다든지요.
마지막으로 가장 크게 배운건 이겁니다. 한국 제도의 특이성입니다. 타국처럼 국가-개인의 돌봄 구조가 아니라 우리나라는 국가-가족-개인의 삼겹 구조입니다. 즉 국가는 가족을 전제하고 돌봄 인프라를 구성해둡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실 국가의 책임을 가족에게 방기한 것입니다. 즉 제도의 틀은 가족에 맞춰 두고 개인의 문제는 가족 내에서 해결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물론 반백년 전 쯤까지, 전통적으로는 작동했었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새로운 사회구조를 제도가 못쫓아갑니다. '이상한 정상가족'도 4인 가족의 전형성 전제의 맹점을 짚은 건데, 에이징 솔로는 아직 '가족이 되지 못했지만 언젠간 되겠지'라는 1/3 가구가 밀려난 사각 지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냥 국가가 직접 돌보는 제도와 장치를 마련하면 끝인데 말이죠.
여기서 정치와 기득권의 미필적 결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컨대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가족으로 맞을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만 있어도 유연한 제도를 만들 수 있지만, 기독교나 보수, 유교 등등은 기를 쓰고 반대합니다. 정치는 고개 절레절레, 못이기는 척 버려둡니다. 그동안 문제는 음지에서 무성해지기만 하고요.
Inuit Points ★★★★☆
어느 연휴에 친한 사람들 중 솔로 위주로 모아 하루를 재미나게 논 적이 있습니다. 피크닉을 구상한 후, 멤버 모으는데 진짜 순식간이었습니다. 평소에 그런 필터로 생각하지 않아서 몰랐을 뿐, 막상 따져보니 제 찐친중에 정말 많더군요. 다녀왔든 아니든 현재 솔로의 삶을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 책 읽으며 그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제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책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제도의 문제는 시민 전체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이뤄질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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