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본문
1️⃣한줄 평
오래 걸려 읽은 벽돌책인데, 죽기 전에 다시 한번 읽고 싶다.
♓Inuit Points ★★★★☆
분량과 흡입력 강박의 디지털시대가 왔으니, 아마 마지막 고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100배 복잡 버전입니다. 겹겹이 쌓인 음과 양의 이야기예요. 책 제목의 선 vs 모터사이클 정비부터, 형식도 철학책과 소설이 회전합니다. 동양철학과 서향철학, 수사학 대 변증법, 광인과 천재, 파이드로스와 '나'. 지루하게 거대한 담론을 교묘히 직조했습니다. 지독한 관념 속 처절한 인간적 실존이 보입니다. 전 책 읽는 도중에 몇번이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별 넷 주었습니다.
🧑❤️👩To whom it matters
- 진기한 이야기 구조에 관심 있거나 색다른 스토리 텔링을 해보고 싶은 분
- 창의성이 넘치지만 세상이 알이주지 않아 미칠 것 같은 분
- 내 삶이 사막을 걷듯 바스락거려 마음이 힘 든 분
🎢PoI (흥미로운 뒷이야기)
- 70년대에조차 121번 거절당하고 겨우 출판되자마자 수백만부 팔렸습니다.
- 이책을 픽업한 편집자는, '이책은 나오자마자 고전이 될것이다' 예언을 했다죠.
- 저자가 지성적 좌절을 느끼고 입대후, 한국에 파견와서 선(禪)과 동양철학에 눈뜨며 사상의 돌파를 합니다.
- 이야기 중 뒤에 태우고 다니는 아들은 청년이 되어 살해당하고 전 중간에 이 결말을 알고 보니 눈물로 읽었습니다. (스포아닌 스포)
- 영문과 교수인 역자는 자신의 인생 책을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 모터사이클 정비, 비유클리드 수학, 칸트와 흄의 철학, 고대 그리스 철학등을 따로 공부했습니다.
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
Robert Pirsug, 1974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책은 시종 음과 양이 교번합니다.
독자의 자세부터 그러합니다. 읽는 내내 괴롭고 고통스러운데 절대로 포기하고 싶진 않습니다. 문체가 뺴어나지도 않고 메시지가 명확해 감명 깊지도 않고 서술된 이벤트가 재미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꾸역꾸역 읽게 되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구조도 음양적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모터사이클 뒷자리에 태우고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이야기입니다. 바이크를 타고서, 혹은 내려서 드는 관념들을 적습니다. 즉 부자의 여행이라는 실물계와 아버지가 필사적으로 쫓는 파이드로스라는 인물의 사색이 교번합니다.
인물도 그러합니다.
스포가 아닌데, 사실 주인공이 쫓는 파이드로스는 과거의 자신입니다. 광인이 된 천재(이 또한 음과 양입니다)가 비인간적인 전기치료를 받고 평범한 지금의 주인공이 되었고, 자신의 과거 기억을 타인처럼 기억을 더듬습니다. 바로 모터사이클 여행 루트가 과거 파이드로스가 지나간 길이기 때문이죠.
그럼 파이드로스는 왜 광인이 되었을까요.
크게는 질입니다. 객체와 주체로 명확히 구분하는 서양의 2원론에 의심을 품습니다. 그리고 파이드로스는 한국으로 파병을 와서 무심한 중세 건축을 보며 이치를 깨칩니다. 주체와 객체라는 이원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제3의 요소가 있고 그게 질이라는 거죠. 음양은 돌고 돌면서 변화를 만들고 그 변화가 또 하나의 실체가 됩니다. 요소로 존재하지 않지만 객체와 주체의 실존을 바꾸는 질.
이제부터 파이드로스의 사고는 폭주하고, 독자는, 최소한 저는 힘겹게 쫓아 갑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이 변증론에게 밀려나는 과정을 2원론적 폭력이고 잘못 기록된 역사라는걸 증명하려 애씁니다. 또는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 유클리드 기하학도 음양 이원적이고, 종교와 과학, 실체와 방법, 고전성과 낭만성 등 세상 모든 일의 2원론적 구분과 거기에 빠져있는 질에 대해 논의합니다. 가장 기초를 이루는게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기도 하고요.
다 읽었지만, 사실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워낙 생경한 사실을 생경한 언어로 국도 옆 갓길에 채이는 자갈마냥 툭툭 던지고 있습니다.
친한 동생에게 제가 읽던 책을 빌려주었습니다. 몇년후에 받아서 십수년쯤 후에, 아니 제 생을 마감하기 전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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