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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Inuit 2024. 1. 23. 15:20

1️⃣ 한줄 

취향 시의 원형을 만났다

 

Inuit Points ★★★★★

너무 좋아 야금야금 아껴 읽었습니다. 시골, 닿는 사물을 그대로 응시할 뿐인데, 넌지시 말하는 시어를 읽다가 인생, 관계, 추억 같은 상념이 떠오릅니다. 부드러운 시선은 표상을 녹이고, 느릿한 관찰은 대상을 해체합니다. 언어는 쉬워서 강력하고, 이치가 단순해 준열합니다. 시집인데 다섯 주었습니다.

 

❤️  To whom it matters

  • 편하지만 생각이 깊은 읽고 싶은

 

🎢 Stories Related 

  • 저자 함민복 시인은 강화도에서 인삼 장사를 합니다
  • 그래서 지명과 정황이 특정하며 구체적이고, 이야기의 힘이 셉니다

함민복 2013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시집을 구구절절 소개하는건, 농담을 설명하는 마냥 부질없는 일이죠.

 

그래서, 함민복 어떤 지점에서 제가 매료되었는지만 짧게 말할게요.

죽은 시계, 불탄 , 나무, 비정한 , 수평기, 농약상점, 안개 동네 사물에서 그의 시상을 발동합니다. 그저 담담히 서술합니다. 하지만, 삼라의 만상이 관찰자의 의식에 적셔진 후엔 생이 뚝뚝 묻어나지요.

 

동막리 양철집에선, 사내가 개를 키우고, 개는 목줄에 매어 있고, 사내는 전화에 매어 있습니다. 사내는 매어있던 전화를 받고 나가 오래 떠나 있고, 와보니 개는 자기 먹이를 주어 새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제 '양철집의 주인은 개로구나', 하며 마칩니다. 회화적이다가 시간을 맞은 풍경은 철학이 됩니다. 

 

함민복 특유의 담담한 서술은 작위적이거나 현학적 이야기없이, 관계와 문명, 먹고살기의 모태가 숨어있습니다. 시인은 넌지시 가리키고, 우리는 시인의 눈을 통해 사물의 이면을 생각합니다.

 

숯은 어떤가요. '처음 타본다 거짓말 말렴. 어머니 꺼내놓고 말해보렴.' 이라는 강력한 말에서, 두번 타는 숯과 자식 키우며 검댕이 되는 부모 마음을 절묘하게 얽습니다. 효를 강조하지도 당위를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숯을 두고 혼잣말하죠.

 

태풍이 불면 어떨까요. '모든 수직한 것들이 수평을 절감하고, 지상의 것들이 지하에서 땅을 움켜쥐는 뿌리의 소리를 듣는 순간'으로 적는건, 단지 관찰이 아니지요. 농부의 시각은 질서 이면의 희생을 봅니다. 대개 침묵했을뿐. 겸허한 그의 말은, 결과적으로 자연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로 닿습니다.

 

끝무렵 '대운하 망상'에선 앞서의 농촌이야기와 다르게, 저음이 깊어집니다.

물이 법이었는데,
법이 물이라 하네.

 

몇번 말했지만, 시인들이 좋다는 시인은 저랑 안맞습니다. 추상을 거듭 추상화한 경지는 고수의 솜씨지만, 평범한 제겐 무당같은 시인의 정신 흐름을 쫓아갈 능력도 없고, 마음의 여력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는, 몇줄 읽고 길게 내쉬고, 종일 곱씹어 생각하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한국 최고의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겐 최고의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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