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본문
1️⃣ 한줄 평
시에서 풍기는 지독한 쇠냄새. 이런, 피냄새였군.
♓ Inuit Points ★★★★☆
제목에서 느껴지는 거친 포스 그대로입니다. 빈곤한 삶도 고통인데, 망할 놈의 예술까지 한답시고 고생이 곱배기입니다. 가난과 비루함에 포박된 삶을 선 굵게 써내려 갑니다. 예쁜 말 따윈 딴 세상 언어인냥 찾아보기 힘듭니다. 쉽고 투박하고 간결한 필치는 시인데도 산문 같습니다. 무척 좋았습니다. 제겐 별 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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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코스키는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미군 아버지와 독일 어머니가 이룬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 어릴때 가족과 미국으로 왔고, 잦은 구타 속에서 자랐습니다.
- 어려서 여드름이 심해 우울한 사춘기를 보냈고,
- 한참 후에 전속작가가 되기 전까진 하급 노동자로 오래 지냈습니다.
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 Hell is a closed door
Charles Bukowski, 1992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미국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한 시집의 작가, 하류인생의 계관시인, 미 현대문학의 가장 위대한 아웃사이더로 불리우는 부코스키입니다.
잭 케루악 등과 동시대인 비트세대지만, 아주 늦게 유명해졌습니다. 하급 노동자 시절을 오래 겪었지요. 그래서 특유의 수식없고 투박한 언어가 묘한 매력입니다. 짧고 강렬한 묘사는 심장 쿵쾅거리게 생생합니다. 시를 읽는데 70년대 배경의 미국 영화 한 장면을 보는듯 하기도 합니다. 가난이란 어둠에 천착하니 대비되어 자본주의라는 빛이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자본에 성내는 증오도, 의식하는 질투도 없습니다. 그저 막막히 살아갈 뿐이죠.
소재 역시 그러합니다.
주먹다짐, 술, 연애 이야기 같은 뒷골목 풍경이 꾸밈없이 펼쳐집니다. 그의 시를 읽으며 묘한 공허감과 카타르시스가 느껴집니다. 부코스키 시는 원문으로 읽으면 굉장히 힘셉니다. 그리고 황소연의 번역도 원문이 궁금치 않게 훌륭합니다.
아래는 제가 좋아했던 구절들을 옮겨둡니다.
<면도날 같은 낮, 쥐들이 들끓는 밤 Days like razors, nights full of rats>
지옥의 중매사 같은 여자들을 견뎌낼 수 있었다.
나의 또 다른 사원, 술집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구경거리>
반바지와 속옷바람으로 앉아 깨진 하얀 컵으로 와인을 마시지
<지옥은 닫힌 문이다>
난 출판사의 거절통지에 개의치 않았다.
최악은 텅빈 우편함이었다.
망할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배를 곯을때는 지옥은 닫힌 문이다.
가끔 문 열쇠구멍으로 그 너머가 얼핏 보이는.
Helli is a closed door
When you're starving for your goddamed art
But sometimes you feel at least like having a peek through the keyhole
<Before AIDS>
우울한 여자, 미친 여자와 잠자리에 들 때면 지갑은 꼭 베개 밑에 넣었다
<하숙집>
누구는 다리가 없고 누구는 팔이 없고 누구는 정신이 없다
Some legless some armless some mindless
무엇보다 나쁜건 총체적 희망의 부재
Worst of all, the total absence of hope
이 남자들도 한때는 모두 아이였건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Waiting>
또 다른 이웃은 자기집에 불을 질렀다. 보험금을 타 먹으려고. 그는 조사를 받고 감옥에 갔다.
골목을 배회하는 굷주린 개들
그때 2차대전은 다가오고 있었다. 심지어 그때에도. 1930년대 중반 LA의 뜨거운 여름에도.
<아침풍경 those mornings>
변소 문이 열리면 꼴이 거기 쥐만도 못한 세입자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난 숙취를 데리고 아직 냄새가 나는 변소 안으로 들어갔다
쥐들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째서 저 놈들이 나보다 더 잘 지내나 싶어서
<손만 대면>
여자 낚는 실력이 형편 없어, 걸리는건 떨거지, 미치광이, 술꾼, 약쟁이.
<소멸>
관자놀이를 향해 미끄러지는 권총의 활강
<교체>
잔디는 너무 파릇하고 책은 너무 따분하고 삶은 목마름에 죽어간다
The lawns so green, the books so dull, the life so dying of thirst
<판매부진 No sale>
구질구질한 시절에도 벌이 꿀에 꼬이고 밤이 낮을 따르듯 다 풀리게 되어 있어
As the bee swarms to honey, as night follows in the stink of time, it will happen
<강도 Mugged>
이렇게 끝나나 난감하다. 엉뚱한 뒷골목에서 강도나 당하고
이젠 고속도로에서 추월 당해도 그만이다.
주먹다짐은 15년 전 일. 밤에는 세번이나 일어나 오줌을 눠야 한다
거리에서 섹시한 여자를 보면 귀찮다는 생각부터 든다
<작가>
작가가 되려고 인내해야 했던 것들을 생각해본다
여러 도시의 방들, 쥐도 아사할 음식 찌꺼기로 연명하던 일
피골이 상접해 어깨뼈로 빵도 자를 지경인데 자를 빵이 있어야 말이지
거리에서 글을 쓸 수 없었다. 방하나 문하나 벽들을 갖추는게 몹시 중요했다
<승리>
여태 무얼 거래하고 무얼 지켜왔길래 시간이란 놈들이 압박해 올 때
우리가 빼앗길만한게 그저 목숨 뿐인가
<케이지 안을 배회하다>
죽도록 굶주릴 때 좋은 건 마침내 음식을 먹게 되면 세상 그리 아름답고 맛있고 마법같은 일은 또 없다는것
<zero>
비루한 날을 사는건 위험한 날을 대비한 예행 연습일지 모른다. 어쩌면.
Perhaps living through those petty days will get us ready for the dangerous ones
<이번에 비하면 Upon this time>
헤밍웨이는 더 이상 글이 나오지 않는다 말하고 총구를 입에 넣었다
글을 쓰지 않는 것도 나쁘지만 나오지 않는 글을 억지로 쓰는건 더 나쁘다
<병>
그래도 나는 행운아다. 고독을 먹고 살면서 군중을 절대 그리워하지 않았으니까
Still I'm lucky, I feat on solitude I will never miss the crowd
<세르반테스는 오직 하나>
그래도 세르반테스는 여든의 나이에 걸작을 썼다는 사실에 참 갑갑하다
이봐 난 아직 운이 좋아. 작가의 벽에 부딪혔다는 글이라도 쓰는게 아예 못쓰는것 보다는 낫잖아.
<술 마셔요?>
내 생각에 내병은 그저 사느라 생긴거라오
I am just ill with life
<D>
의사가 들어온다. "좀 어떠십니까"
안 좋지 뭐. 하고 생각한다. 좋으면 여기 안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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