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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에서의 한달

Inuit 2025. 9. 20. 08:45

1️⃣ 한줄 

 슴슴한 평양냉면 같이, 여운이 오랜 남는 묘한 매력

 

Inuit Points ★★★★☆

 무슬림인 영국 작가가 뜬금없이 이탈리아 시에나로 가서 한달을 머뭅니다. 이유가 뜨악합니다. 미술계에서 그리 족적이 크다고는 없는 시에나 학파의 그림을 실컷 보기 위해서입니다. 기묘한 인트로만큼이나 색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는 책입니다. 자극적 에피소드도 없고, 어떤 목적지도 없는 내러티브입니다. 그럼에도 종일 한그림만 느리게 보는 미술 관람처럼, 독자도 매우 느리게, 면밀히, 공감하며 그의 일상을 따라가다보면 기이한 재미가 있습니다. , 미술 이야기는 소재이고, 사람 이야기 마음의 이야기입니다. 어릴적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을 때처럼, 신비하고 이국적이면서도 지적인 모험심이 마음에 고이기도 합니다. 얇지만 상당히 매력있는 책입니다.  

 

A month in Siena

Hisham Matar, 2019

 

🎢 Stories Related 

  • 토스카나 여행 전, 서점을 걷다 시에나란 이름 하나 보고 충동구매했습니다.
  • 시에나의 풍물이나 여행 관련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묻어나올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중세 거점도시의 위용과 팔리오(Palio) 축제의 정신적 결속력 같은 시에나 특유의 정서가 은은히 배어있지만요.

 

🗨️   자세한 이야기

책은 리비아 출신 작가 히샴 마타르의 배경을 알아야 온전히 보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카다피 독재정권에 의해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가고, 평생 가족과 만난채 사망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실은 죽은건지 산건지도 애매합니다. 작가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리비아에 갔었고, 빈손으돌아옵니다. 당시 아버지를 찾던 여정을 적은 책인 귀환(Return) 썼고, 후일 2017 퓰리처 상을 탑니다.

 

이 책은, 귀환을 탈고한 시에나로 가서 느꼈던 일을 적었습니다. 따라서, 절망과 회한, 그리움과 분노, 체념과 미련이 범벅인 동시에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한달 살기를 떠난거죠. 저는 그래서 시에나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자그마해서 자극적이지 않은 장소.

 

책은, 피렌체 통해 시에나로 이동하는 여정과 살짝 드러내는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아내와 동행해서 며칠을 함께 지낸후 혼자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림 보는 이야기입니다. 상당 부분은 그림 설명에 할애되어 있는데, 그림의 실질적 내용보다 그의 상념이 재미납니다. 단순한 그림을 보고 저렇게 많은 상상을 지어내이야기를 읽어낼수 있다는게 느린 감상의 재미이기도 하고, 작가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그림 이야기보다 다른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중동인이자 무슬림인, 독특한 시각으로 서구 문명의 고인물인 시에나를 보는 이채롭습니다. 사물과 관계를 읽어내는 결이 달라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에나 거주하는 무슬림이 많을수도 없겠지요. 우연히 리비아 출신도 아닌 무슬림을 마주쳐도, 금방 특유의 우애로 친해지며 사이드 스토리가 돌아가는게 꽤나 신기합니다. 무슬림은 만난뒤 바로 집으로 초대해 자기 가족을 작가에게 소개하며 무한한 신뢰를 보이는데, 독자인 놀랍고 감사스럽더군요.

 

결국 책의 고갱이는 아버지의 상실에서 촉발된 관계에 대한 심원한 고찰입니다. 그래서 누르고 누르며 절제했지만, 친구, 그림, 풍경, 에피소드에서 작가의 스산한 마음과 추스리려는 기운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맥락없이읽으면 사뭇 사변적일 수많은 문장들이지만, 그의 심로를 이해하면 방황과 치유라는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도 묘하게 위로 받지요.

 

말미의 문장들이 책의 정념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이후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듣는 일이야 말로, 모든 재회가 품고 있는 야심임에 틀림없다.
진정한 지옥은 가장 가까웠던 이들에게 알아봐지지 못하는 지옥이다.
낙원보다 더 바라는게 알아봐지는 것(being recognized)이다.

 

낙원이라는 그림에서 출발해, 연인의 이야기를 하는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가족을 포함한 깊은 관계에 대한 통찰입니다. 그의 아버지를 대입해서 보면, 살아 있어도 어딨는지 모르고, 죽어도 언제 죽었는지 모르는 아득한, 알아봐지지 못하는 마음의 지옥이 느껴져서 막판에 울컥했습니다.

 

상당히 묘한 재미였습니다. ,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탁월한 번역입니다. 신해경 번역가님이던데, 원문의 맛을 매우 문학적으로 살려냈습니다. 난해한 내용도 옯겼지만, 복잡한 심경이 가을바람처럼 서늘하게 비쳐지는 문장이라 번역서라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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