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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trend 60 chance

Inuit 2005. 9. 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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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Hill


들어가기 전에 잠깐.. 제목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원래의 제목과 디자인을 엉뚱하게도 베꼈다.
시작부터 제목가지고 시비냐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 콩글리시 범벅의 짝퉁같은 제목이 바로 이책의 비운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샘 힐이라는 양반인데, 책에 나온 소개처럼 Fortune이 극찬을 했는지는 내가 포춘을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검색해보면 "top ten mind"라고 칭했나보다. 그보다는 내 주변의 마케터들이 즐거이 보던 'Radical marketing'이나 'Buzz monkey' 같은 책을 저술한 사람으로, 마케팅 계의 구루급인 것은 확실하다.

거창하게는 미래학, 경쾌하게는 트렌드 관련된 책은 관심을 갖고 보는 편인데, 이책은 그중에서도 인상깊은 부분이 많았다. 힐 자신이 다짐한대로 메가트렌드의 무용성을 경계하면서 생활과 사업에 연계된 미소트렌드(trendlet)를 짚어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초아의 잡서(http://inuit.co.kr/tt/101) 같이 현상에 매몰되지는 않는 통찰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트렌드 책으로서 이 얼마나 대단한 미덕인가.

적어도 트렌드에 관심을 갖는 정도의 지능이 있다면, 트렌드 관련 책을 읽으면서 그대로 이뤄진다고 믿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 변화의 기미를 명확히 짚어내고 그에 따른 전개방향을 그럴듯하게 이야기 해줄 수만 있다면 아주 양호하고, 서비스로 한두개 정도 정확히 예측까지 해준다면 본전은 뽑고 남는 것일테다. 게다가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힘까지 기르도록 도와준다면 그야말로 대박일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책이 그렇다.
나는 빌리지 않은 내책인 경우, 읽으면서 좋은 구절은 밑줄도 긋고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도 하며 읽는 습성이 있다. 이책은 읽는 내내 흥에 겨워 밑줄에 별표에 개인적인 생각, 떠오르는 키워드 등으로 강의 노트와 같이 책 한권이 어지럽게 더럽혀지고 말았다. 그리고 한번 읽은 책은 필요내용만 머리속에 넣고 잊을것은 잊은채로 여간해서 1년이내에 거들떠 보지 않는 편인데, 이책은 내가 읽으면서 정리한 글들을 다시 보려 한번 더 들춰본 책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이책이 2002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3년전 신문을 읽는 것은 그때 무슨일이 있었는지 궁금증이라도 있지, 3년전에 미래 트렌드를 말해놓은 책이 지금봐도 재미있게 읽힌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그만큼 그럴싸 하다는 뜻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트렌드도 많고 다른방향으로 전개되거나 영원히 실현되지 않을 트렌드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정황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아주 먼 미래 일만 허황되게 쓴 것만도 아니다. 특히 Disintermediation의 반추세인 Reintermediation, 그리고 퍼플카우에서 부르짖는 세그멘테이션의 무의미성을 미리 갈파한 "death of demography", 요즘 IPTV 업계에서 화두가 되어버린 "a la carte 사업모델", "the price is wrong" 같은 마케팅 트렌드는 지금은 상식이 되었지만 닷컴의 환상에 빠져있던 당시를 생각하면, 인터넷이 마케팅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정확히 전개양상을 파악하고 지적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싸부님 소리가 절로 나와버렸다.)

그 외의 몇가지.
학식으로 포장된 점을 치는 트렌드를 말함에 있어서, 힐 선생은 박수무당처럼 수다스럽고 또한 유머러스 하다. 그래서 읽는데 매우 경쾌하다. 어쩌면 이러한 가벼운 터치가 트렌드의 실현성을 진지하게 캐묻지 않게 하는 문체상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반면, 힐 선생은 이책이 지구 건너편에서도 감탄하며 읽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점에서 후학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모자람이 있어서 좋다. 세상에 미국에만 한정된 트렌드가 몇개 끼어있는데, 한국에 있는 내게 그것이 읽는 동안의 재미와 식사자리의 가십 말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시 제목이야기로 돌아가자.
나는 왜 짝퉁제목에 그리 흥분하는가.
이처럼 유쾌한 책이 어찌 허접한 오초아 책을 주문했을때 덤으로 딸려와야 하냐 말이다. -_- (그렇다, 난 이책을 예전에 받아놓고 단지 딸려온 책이라고 쳐박아 놓았다가, 책 주문이 주말전에 도착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읽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표지 그림을 찾으려 구글을 돌려보니, 이책에 대해 언급한 사람들이 '2010 대한민국 트렌드'니 다른 책에 덤으로 받은 사람 투성이다. 단지 3년전 책이라 트렌드 책으로 유통기한이 지났기 때문은 아니다. 유통기한이 지났다면 더 이상 찍어서 번들로 제공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이 책은 마케팅에 실패했음이 분명하다. 그 증거가 제목에서 드러난다. 아무 고심하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다.
진짜로 말하고 싶은 것은.. 번역이 엉망이다. 원저가 트렌디한 신조어를 만들고 감각적으로 언어를 뒤틀어 번역이 어려운 점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고 고민하면 생생한 우리말로 번역이 가능하고, 트렌디 하지 않은 부분, 일반적인 경영이나 과학 용어마저도 함량미달의 번역이 책에 널려있어서 읽기에 매우 불편했다.

트렌드 분석가란 학식으로 포장된 점쟁이다.
그래서 트렌드 책이란 과신하지 않고 재미로 본다면 삶에 힘을 얻고 돌아올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다.

'트렌드'를 아십니까? 당신 얼굴에서 광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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