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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Blogged

"아, 마음이 힘들어 못 읽겠다." 책을 마치는데 자그마치 석달 반이 걸렸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축구, 게다가 K리그의 이야기일 뿐더러, 나의 팀 성남FC의 찐팬이 쓴 책인데도 말이지요. 비유를 하자면, 파산 위기에 놓인 중년이 우연히 발견한 중학생 때의 일기를 보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성남FC는 초반에 잘했고 중반에 아슬아슬했다가 종반에 아깝게 되었고 결국 팀이 고장나 버렸습니다. 강등이 거의 확정이다라고 생각하다가 시즌 종료 25분전 쯤 극적인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졸깃했지만, 성남팬은 이와 똑같은 시즌을 2016년에 이미 한번 치렀던 바 있습니다. 당시도 시즌 중반까지 우승을 다투다 한끝 차로 하위스플릿에 가더니 2부리그로 강등되었거든요. 책은 성남FC의 팬이자 작가인 저자가 직..

블리츠(blitz), 번개란 뜻이지요. 제가 블리츠란 단어를 처음 들은건, 제가 좋아하는 풋볼 팀인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블리츠 전술이란 이름이었습니다. 블리츠는 독일어 전격전(blitzkrieg)에서 나왔고, 딱 전격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번개같이 짓쳐들어가는 전술은 손자가 이미 정리해두었지요. 그 유명한 풍림화산음뢰에서 마지막 네 글자가 전격전입니다. 故 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難知如陰, 動如雷霆 그러므로 빠르기는 질풍과 같고 서행하기는 숲처럼 고요하고, 침략은 불처럼 기세가 왕성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은 산처럼 진중하고, 숨기는 어둠처럼 안 보이게, 움직일 때는 우뢰처럼 거세다. 그리고 블리츠스케일링, 전격 성장이란 말도 있네요. 누군들 성장하고 싶지 않겠으며, 기왕이면 빠르게 성..

최근 일입니다. 매우 큰 세계관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첫 착점이 어그러졌습니다. 잘못될 확률이 5%도 안될 일이어서 다들 놀랐습니다. 막상 제가 놀란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어차피 포석 중이고 앞으로 수십 수를 더 둘거니 한 수의 문제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다만 이기고 싶다면, 그 수를 놓은 과정을 복기하며 다음 수를 더 잘두는 게 저한텐 더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이 잘못을 보는 관점이, 우리 쪽의 느린 의사결정, 관례적 절차, 딱딱한 문화 등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은데, 이를 쉽게 상대방의 옹졸함과 욕심, 모자람으로 쉽게 귀인하고 결과를 정리하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점입니다. 대형 조직에서 재무적으론 사소한 일이지만, 원인에 대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데는 실망감이 깊었습니다. 이유..

지인 소개로, 미슐랭 받았다는 삼청동의 프렌치 레스토랑에 갔다. 이곳은 매번 코스요리의 컨셉이 있는데, 전에 갔을 땐 '별의 향기를 맡다'는 주제로 어린왕자가 나오고 그랬다. 이번엔 영화테마라고 한다. 메뉴와 빵 차림부터가 심상치 않다. 처음엔 영화 매거진에 이 식당이 소개되어 잡지를 디스플레이 해 놓은줄 알았다. 그게 아니고 그냥 매거진을 차용해 메뉴를 만들었단다. 전체 코스가 영화의 키워드로 구성되었는데 소개하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다. 뉘벨 퀴진 계열의 프렌치 요리에서 셰프가 내는 한턱인 아뮤즈 부시. 그냥 예쁜 애피타이저 같지만, 내면은 다르다. 영화관의 3대요소인 땅콩, 팝콘, 오징어를 재료로 쓰고, 트러플 같은 재료로 프렌치스럽게 해석했다. 여기서 이미 머리를 띵 한대 맞은 느낌. 아뮤즈 부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