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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Project L

돈으로 산 회장

Inuit 2010. 3. 6. 20:00
#D-day, evening
오늘, 초등생 우리 아들의 회장 선거날입니다.


#D-3
2학년 때부터 매년 회장을 놓치지 않은 유세의 달인-_- 인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사코 회장 선거 나가는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회장 자체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저인지라, 마음이 다급해집니다.
I: 이번에 회장 되면 아빠가 큰거 하나 쏜다!
S: 정말? +_+
아이는 다시 힘을 내어 회장 선거 출마로 급선회했습니다.


#D-2
이번 유세에 사용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제법 많습니다.
  • 대중과 순차적으로 눈 맞추기 (eye contact)
  • 처음과 끝 부분에 이름을 또박또박 넣어 투표로 연결시키기
  • 네가지 공약을 손가락으로 진행시키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잘 쫓아오게 만들기
  • 주요 연설 포인트를 교실 사물에 숨겨놓는 로마의 기둥
  • '최강 3반'이라는 감성적 모토로 연설을 집약
  • 질문으로 주의 환기하기
  • 사례를 들고 그 이미지에 투영하기
대략 꼽아봐도 이렇네요.
짧은 연설이지만 유효한 요소를 균형있게 배합했습니다.


#D-1
아들과 커뮤니케이션 책을 공저한 마당에, 실전같은 리허설은 꼭 챙겼지요.
리허설 때는, 김연아 이미지를 많이 차용했습니다.
"아들아, 지금 너의 프로그램은 완벽해. 이젠 네가 김연아 선수처럼 멋지게 해내는 일만 남은거야. 네 반에 네 적수는 없어. 적수는 오로지 너 자신뿐이야."

#D-day, call
오늘 일 보고 들어오는 길에, 결과가 궁금합니다. 항상 변수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일단 넘겨짚어 봅니다.
I: 아들,  무슨 케익 사갈까?
S: (뚱) 케익은 왜?
I: 회장 당선 기념 축하 케익 말야.
S: 케익 사지마아..
I+Wife: (헉!)
I: 왜.. 안 됐니?
S: 우리집에 케익 먹는 사람 누가 있다고. 사서 남길거 사오지 마아...
아들의 시무룩은 매해 그렇듯 페인트 모션이었습니다.


#D-day, brief
2년전 전학온 터라 아는 친구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래도 35명중 19명, 54%의 지지율로 당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2위는 출마가능 추천인 명수인 8표니까, 아이가 부동표는 물론, 다른 후보의 추천인 표까지 긁어 모은 모양입니다.

연설 중간에 박수가 나와, 예정과 달리 10초 정도 중단되기도 했고, 자문자답하려던 질문에 반아이들 큰소리로 대답을 해서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가야 했다고 전합니다. 들어보니 청중과 일체감이 매우 좋았던 유세 같습니다.


#D-day, afternoon
결국 약속을 지키려 저는 눈물의 지갑을 열었습니다.
선거에 안나가려는 아이를 장려하기 위해 전 거금을 썼으니 아빠 입장에서는 돈으로 산 회장 같은 기분이 듭니다. 어쩌면, 아이는 점점 프로가 되려나봅니다. 인센티브 없이는 안 움직이니 말입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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