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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Project L

가족 대 토론회

Inuit 2005. 4. 17. 02:57
아이들 논리력 증진을 위해 토론을 시켜보았습니다.
이슈는 내일 아빠 후배 결혼식에 누가 같이 가는가입니다.
두아이가 서로 왜 자기가 아빠랑 가야하는지 주장을 하고 각자 반박을 하는 식으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누나: 음.. 나는 첫째 아이니까 가야 합니다. 그리고 갔다오면 많은 재미난 이야기를 해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가야 합니다.

아빠: 첫째라서 가야 한다는 것은, 막내의 경우 막내라서 가야한다고도 말할 수 있고, 재미난 이야기는 아빠가 대신 해줘도 되잖니. 설득이 잘 안되네.

동생: 저번에 제주도에는 누나가 따라 갔었으니까 이번에는 내 차례야!

이번엔 자기 차례라는데 누나는 말문이 막힙니다.
아빠는 힌트를 줍니다.
상대의 논거나 전제를 의심해보는데서 반박을 해볼 수 있다고.
'왜 꼭 한번씩 교대로 가야하는거지?'
'아항!'

누나: 이런 것은 누나가 전문이니까, 누나가 계속 가야해.

동생: 전문? 치킨 전문점이냐!!

아빠: 삐익~ 탈락. 말꼬리 잡는 것은 안돼요.

잔뜩 골이난 막내는 억지를 부리다가 자격 상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둘째 녀석이 똘똘하게 말을 잘해 팽팽하리라고 생각했던 토론 대결은 의외로 싱겁게 끝나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아직은 여섯살이라 어린가봅니다.

그런데..

게임이 재미없어지자 엄마가 나섭니다.

엄마: 이번에는 엄마가 꼭 가야해.
이유는, 첫째, 지금까지 누나 두번, 동생 한번 아빠 따라 결혼식에 갔었지만 엄마는 한번도 못 따라가봤어. 둘째, 이번 한주동안도 엄마는 너희들 키우고 공부시키느라 지쳤고 주말에 좀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 필요해. 그러니까 엄마가 아빠랑 가고 너희 둘은 집에서 있는 것이 옳아.

나머지: ....

강적이 나타났습니다.
아빠도 엄마가 가는 것이 맞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두 아이는 울먹울먹 경악을 합니다. 이대로 가면 거의 엄마가 확정입니다.

누나: 그.. 그건 말이 안돼.. ㅜ.ㅡ

아빠: 왜지? 이유를 말해야지.

누나: 그.. 왜냐면.. 음.. 그래! 결혼식에는 엄마 어렸을때부터 많이 다녔잖아. 그리고 결혼식에 가고 싶으면 엄마의 아버지에게 말하지 왜 우리 아빠한테 데려달라고 해?

헉.. 엉뚱한 이론이 나왔습니다.
엄마는 엄마 아버지 쫓아가지 왜 내 아빠를 쫓아가냐..
그럴듯 합니다. 엄마가 약간 핀치에 몰립니다.

엄마: 음.. 엄마는 형제가 넷이라서 우리 아빠가 많이 데려가실 기회가 없었고.. 또 그건 그거고 지금은 사정이 다르잖아.

많이 궁색해졌습니다. 이때 누나가 승부에 쐐기를 박자고 오버를 합니다.

누나: 그리고, 엄마는 나이가 많으니까 벌써 많은 좋은 경험을 했을거아냐.
하지만 나는 아직 어리므로 좋은 경험을 많이 더 해야 한단말야. 그래서 내가 가야해.

엄마: 그래 너 말 잘했다. 엄마는 앞으로 살 날이 너보다 작으니 이번에는 엄마가 가는게 더 맞겠구나. 너는 앞으로 기회가 많으니까 나중에 가려무나.

두아이는 다시또 울먹울먹합니다. 엄마에게로 승기가 기울고 있습니다.
큰 아이는 무언가 부당하다는 생각에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엄마는 휘파람을 불며 저녁 준비를 하러 주방으로 나갔습니다.
보다못해 아빠는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 약간의 힌트를 주었습니다.
순간..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더니 쪼르르 나갑니다.

누나: 엄마! 난 엄마가 가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 내일 아빠 결혼식에 갈 때 그곳이 호텔이라서 식사비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엄마가 가면 예의상 돈을 더 내야하잖아. 그러면 우리집 돈이 많이 나가잖아.
그리고! 엄마랑 아빠랑 둘이 다 나가면 우리 어린이 둘이서 집을 보는데 만약의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너무 위험해질 수 있잖아. 그래서 엄마랑 아빠가 가는 것은 옿지 않아.

o.O

엄마랑 아빠는 깜짝 놀랬습니다. 저렇게 또박또박 반박을 할 줄이야..
결국 아빠는 엄마와 큰아이의 공동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끝나고, 큰애가 생각하는 힘이 많이 늘었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시작 무렵에는 토론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다가 한시간 가량 진행이 되니까 제법 조리있게 반박을 하는군요. 그리고 재미없다고 하기 싫어하는 논술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구요.
덤으로, 책도 좋아하지만 비디오 보기를 즐겨하는 둘째도 책을 더 많이 읽어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로 굳게 다짐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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