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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디벨로퍼들

Inuit 2005. 12. 1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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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근

디벨로퍼란 직업 자체도 일반인에게 퍼뜩 어떤 일인지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어찌 사는지에 대해 소상히 알기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친한 선배가 잠시 디벨로퍼의 길에 몸을 담을때 간간히 들리는 소식들로 인해 관심과 흥미가 있었다.
그리고 실물경제 섹터중 부동산이 내게 가장 생소한 분야이므로 궁금증이 많던 차였다.
마침 부동산 기자가 꼼꼼히 정리했다는 이책의 소개를 보고 읽게 되었다.

디벨로퍼란 직업은, 부동산 개발의 기획단계에서 땅을 구입하고 인허가 이후 시공, 분양후 관리까지의 모든 프로세스를 관장하는 역할이다. 따라서 부동산의 흥행 성패에 따라 영욕이 한몸에 모아지고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담장위를 걷는 직업이다. 물론 일반인이 디벨로퍼를 기억하는 경우는 상당수가 부동산 사기로 수백억을 챙겨 도망간 부동산 업자들의 소식을 기사에서 심심찮게 보았을 것이다.
사실 제대로된 디벨로퍼를 찾아보기가 매우 힘든 상황인 것은 맞다.

한가지 일반적 상식과 배치되는 것은,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는 대형 건설사가 있는데 왜 디벨로퍼가 필요할 것인가일 것이다. 예전에야 땅잡아서 집 지어 놓으면 분양은 쉽게 되어 그야말로 땅짚고 헤엄치는 장사가 건설업이었지만, IMF를 거치고 대규모 주택보급이 된 이후부터는 부동산 자체의 가치가 없는 경우 흥행에 참패를 하게 되었고, 이후 대형 건설사들은 시공위주로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가고, 리스크가 큰 기획과 지저분한 땅작업 등을 주업으로 하는 시행사, 즉 디벨로퍼가 생겨나서 공생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이 잘 읽히는 이유는, 실제 현장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내용이 쉬우면서도 베일에 가려진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디벨로퍼가 주로 활약을 하는 초기 작업만 봐도 그렇다.

이들은 사업에 착수를 하면 시간이 기회비용이기 때문에 고의로 시간을 지연하며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땅작업을 하면 필연적으로 알박기를 하고 십수배의 댓가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 겨우 지주작업을 정리하면 건축 심의를 하는데, 심의 위원회 교수들에게 잘못보이면 한달후 재심은 예사이다. 그후 인허가는 공무원 상대인데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자원인지를 잘 아는 관청에서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자 한다. 게다가 땅의 매입이 끝나도 실입주한 사람들을 내보내는 명도작업에서도 버티는 사람을 법적으로 정당히 내보내려면 최소 6개월은 걸린다. 의무는 없을지라도 생돈을 줘서 빨리 내보내는 것이 이익이다. 아니 큰 손실을 막는 것이다.
그뿐인가, 대형 공사가 들어오면 반드시 주변 주택, 상가에서 민원이 들어오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관청에서 허가가 안떨어지므로 주변의 텃세에게도 콩고물은 떨어져야 한다.

이런 먹이사슬이 강건너 디벨로퍼들만의 일인가? 그러면 얼마나 좋으랴.
결국 이렇게 공사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함포고복은 바로 분양가로 반영되어 10년 일해 집살 것을 1~2년을 더 일해야 할수도 있는 것이다.

이책의 기획의도는 실력도 도덕성도 영점에서 마이너스를 맴도는 국내 디벨로퍼들의 위상을 제고하고 방향을 정립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후반부에 성공한 18명의 디벨로퍼를 선정해 그들의 성장과정과 대표 사업을 소상히 적었다.
그래서 주간경제지를 읽듯 가벼운 마음으로 다양한 스토리를 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찾은 몇가지 의미들..

첫째, 판이 험한 부동산 판에서 정상급이 된다는 것은 남다른 유별난 노력과 열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모든 산업에 공통되는 덕목이다. 다만 디벨로퍼로서의 핵심성공요인은 딱히 특정 경험에서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이는 가치사슬의 첫단계인 땅작업에서 출발했고, 어떤이는 마지막 단계에 속하는 분양대행 출신도 있다. 또는 시공사에서 앞뒤로 확장한 경우도 있고.
심지어 전도사 출신으로 무작정 뛰어든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둘째, 현재 여기 꼽힌 사람중 5년후에도 정상급으로 남아있을 사람은 낙관적으로 보아서 50%정도일까.
나름대로 이런저런 분석으로 이렇게 기획했고 그래서 대박났다는 전형적인 스토리이지만, 잘 뜯어보면 기획과 상관없이 IMF이후 몇년간 뜸했던 건설경기로 공급이 부족해서 웬만큼만 하면 기획의도와 무관하게 동일한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양반들의 지역선정 능력이나 실행력을 폄하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행간에서 느껴지는 것은 몇몇 회사는 리스크 헷징이 시스템적으로 이뤄지고 있었고 몇몇은 CEO의 직관에 의존하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나 매 프로젝트에 재무적 리소스를 all-in해야 하는 도박판과 같은 디벨로퍼에게 있어 한판의 실패는 막대한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추후에 올 부동산 시장의 게임의 룰은 무엇인가.
결국 지금까지는 외부상황의 변화에 의해 디벨로퍼란 개념이 정착되는 단계였다면, 진짜로 디벨로퍼에 의해 가치가 창출되는 진검승부 국면은 근미래에 올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적극적으로 비즈니스 관행을 변경하려는 금융산업의 상황과도 맞닿아 담보가 아닌 사업성에 따라 자금이 투입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위주의 금융주도 디벨로핑이 이뤄질 것이다.
이 경우 그 규모가 지금과 차원이 달라, 수많은 랜드마크와 도시들, 그리고 새로운 삶의 공간들이 창조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토지의 공급이 제한된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산업이 사업여건은 극악의 조건이지만, 그 제한성으로 인해 많은 창의적 결과와 그에 합당한 보상도 이뤄질 것이다. 그 부분에서 일부 기업가형 디벨로퍼들이 큰 역할을 해야하고 이번기회에 판을 지켜볼 관점이 생긴 것이 의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