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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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평: 테드 창이다. 내가 무슨 말을 더 보태리.
한줄 더 평: 테드 형, 글 써줘서 고마워!
책이 끝나는게 아까워 한줄 한줄을 곱씹었습니다. 과학책을 읽듯 안간힘으로 이해하고 철학책을 읽듯 상념에 빠지곤 했습니다.
평균 2년에 한번, 그것도 감질나는 콩트(conte, 엽편소설) 분량의 글만 내 놓으니, 과작으로 유명한 테드창입니다. 몇년 전 히트 영화 컨택트(Arrival)의 원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ty of your life)'가 포함된 작품집 이후 무려 17년만에 나온 창의 두번째 작품집입니다.
간단히 소개를 해 봅니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The merchant and the alchemist's gate)
문을 통해 시간여행을 한다는 설정입니다. 문은, 통상적인 시간여행 디바이스의 지점 고정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기제입니다. 지구 공전과 자전의 경로 추적 문제에서 벗어납니다. 이 단편은 단선적 시간여행 세계관을 통해 운명과 자유의지에 대해 생각해볼 점을 던집니다.
숨(Exhalation)
인간도 기계도 아닌 어떤 지적 존재가 고정된 공간에서 문명의 유한성을 깨닫는 이야기입니다. 현대 물리학의 기본개념인 에너지 총량 보존과 엔트로피 관점을 녹여냅니다. 이 글의 매력은 문장적 신비감입니다. 아는 세계라 생각하고 글을 읽어가지만, 조금씩 우리 관념과 어긋나는 지점이 있고, 다시 복기하며 새로운 세상을 머리에서 조합하며 따라가는게 백미입니다. 영화로 만들어 시각적으로 표현했다면 재미가 반감될 정도죠. 그리고 이를 통해 발견한 진리, 그 위험한 진리는 지금 우리 주변에도 늘 벌어지는 일일겁니다. '존재할 수 있는 경이로움에 관해 묵상하고, 그럴 수 있음을 기뻐하라'는 마지막 읊조림이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What's expected of us)
이것도 실제적 신경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기전에 신경이 0.2초 이전에 발화한다는게 알려져 있는데요. 이 단편의 설정은 이 신경발화를 가로채어 알려주는 기계입니다. 이 단순한 기계를 상상한 이후 논리적 상상을 덧대면 우리는 깜짝 놀랄 진실에 마주하게 됩니다. 과연 자유의지란게 있는걸까 하는거죠.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The life cyle of softeware object)
이 단편은 몇년전 단행본으로 나왔고 읽었던 겁니다. 다시 읽었는데 또 다른 느낌이 듭니다. 그동안 인공지능 기술이 더 발달하고, 제 공부와 이해도 더 늘었기 때문일겁니다. 어쨌든, 유전적 알고리듬으로 지능을 키우는 세상이 되면, 어떤 일이 가능할지를 모색합니다. 이러면 아이러니하게도 AI의 문제보다 인간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유년기 교육과 정신적 진화를 압축적으로 겪다보니 인류가 걸어온 문제 역시 압축적으로 보게 됩니다. 결국 우리를 돌아보게 되는 지점이 있지요.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보모(Dacey's patent automatic nanny)
매우 짧은 글이지만, 스키너적 발상이 과학만능주의와 만나는 순간, 흥미로운 상상이 펼쳐집니다. 조기교육과 사랑, 육아가 소재입니다만, 기록물 투의 문장을 통해 접하는 세계라 마치 예전에 세상 한귀퉁이에 존재했다 잊혀진듯한 사실감이 더 재미납니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The truth of fact, the truth of feeling)
제가 가장 충격과 강한 인상을 줬던 단편입니다. 전 인생을 기록하는 가상의 기계가 있다고 할때 우리 생활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합니다. 마치 구전세계에 글이 등장할때와 같은 변화입니다. 이를 제국주의 시대 아프리카 마을이 구전에서 문자로 넘어가는 세상과 교차편집하여, 현란하지만 함의가 풍부한 어떤 세상을 그려봅니다. SF가 아니면 이런 상상의 경지에 도달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닥 중요하지 않지만 약간의 반전도 있어 자세한 내용은 생략합니다.
거대한 침묵(The great silence)
페르미의 역설에 대한 유쾌한 비틀기입니다. 매우 기발한 상상이고 짧습니다. 정말 짧아요.
옴팔로스 (Omphalos)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의 순간이 존재하는 짧은 지구역사가 사실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러면 태초의 그 순간이 시간속에 남아 있을겁니다. 배꼽이 없는 미라, 가운데가 막힌 나이테 등이지요. 이런 과학적 증거가 있는 세상에도 창조론은 위기를 맞습니다. 케플러가 그랬든 우주적 진실 때문이지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Anxiety is the dizziness of freedom)
양자론적 평행우주를 이렇게 아름답게 풀 수 있을까요. 어떤 과학적 장치로 평행우주간 소통이 가능하다고 가정하지요. 그럼 우린 새로운 세상을 맞습니다. 그때 이러면 어땠을까, 상상만 하지 않고 그 세계 내 자아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지요. 이때 자유의지와 철학적 실존은 어떨까요. 풍부한 사례를 통해 이런 결론에 달합니다.
'지금 내 선택이 미래 내 평행우주의 기초가 된다. 내 선택과 선의지는 결코 무용하지 않다.'
Inuit Points ★★★★★
소설은 잘 안 읽지만, SF는 좋아합니다. 먼저 간 젤라즈니가 아쉽지 않은 유일한 이유가 테드 창입니다. 각 작품이 다 좋습니다. 아, 번역도 매우 훌륭합니다. 번역책이란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이면서, SF의 장르적 특색까지 손상되지 않게 세심히 전달했습니다. 물론 별 다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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