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소란 본문
1️⃣ 한줄 평
셰프가 끓이면 라면도 다르다. 시인의 산문도 그러하다.
♓ Inuit Points ★★★★☆
읽으며 너무 좋았습니다. 다만 리뷰로 콕 짚어 풀어내긴 곤혹스럽습니다. 냇물처럼 문장이 흐르는 에세이의 특성상, 찰나적으로 내내 좋았기 때문입니다. 교훈이나 구조나 메시지보다는 그냥 글 읽는 동안 음미하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에세이에 별 넷 주긴 쉽지 않은데, 제겐 그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 To whom it matters
- 힘 빼고 썼는데도 모든 단어가 영롱한 문장을 좋아하는 분
- 각박한 현실에, 뭔가 촉촉한 문장으로 적셔보고 싶은 분
🎢 Stories Related
- 저자는 대학때 교수였던 장석주 시인과 연애하고 결혼했습니다.
- 무섭도록 솔직해서 힘이 센 문장입니다만, 무슨 일인지 남편 이야기는 철저히 도려냈습니다.
- 저도 작가에 대해 검색하다 우연히 알았습니다.
- 결혼 자체는 기사로도 널리 남겨졌으니 비밀이라서는 아닐테고, 동종업계 사람이라 부담스러웠을까요.
박연준, 2020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서문부터 오..? 하게 되었습니다. 피가 뜨겁던 과거 어느 시절을 회상하며 말합니다.
사랑에 실패하고 싶었는데, 실연에 실패해 속상하던 때였다.
실연의 실패를 사랑이라 고쳐 믿었다.
아..
말장난과는 다른 결로 제게 말 거는 목소리에 급 흥미가 생겼습니다. 드라마를 두 문장에 녹였는데 운까지 살아 있습니다.
아, 시인이 문장 잘 쓰면 이런거구나.
사유를 접어 문장에 녹여도, 말의 리듬감은 뛸 수 있구나.
이후로도 매 페이지마다 줄긋게 만듭니다. 맘에 드는 문장몇줄을 소개해 봅니다.
앞은 부끄럽습니다. 등을 보고 있을 때가 좋습니다.
(바둑돌에 잠긴 애인을 보며) 내가 로댕이라면 몸에 햇살이 고인, 저 남자를 조각해 볼텐데.
하필이라고 말을 하고보니 참 좋네요. 어찌할수 없음, 속절없음이 사랑의 속성일 테니까.
병은 이겨내야할 게 아니라 지혜롭게 겪다,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 새로워지는 것은 선물 같은 일. 그러나 누구도, 너무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은 그가 세상을 보는 네모난 창이자 가벼운 우주였다.
바다가 뒤척이는 것은 바다가 덜 무겁기 때문, 사랑이 뒤척이는 것은 사랑이 덜 무겁기 때문.
D가 책이라면 235페이지의 진실과 6페이지의 거짓, 30페이지의 비밀로 이뤄진 책일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교양이란 우선, 수치스러움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이란 교양은 없고 열망만 가득한 계절이다.
박연준의 글이 좋은건, 예쁜 말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랑해야하는 아버지와의 불화, 젊은날 열정으로 좇던 사랑들, 허허로운 인연, 살며 만나는 죽음들에 대해 담담히 글적습니다. 감상에 빠지지도 않고, 형용사로 덧칠하려 하지 않고 멋져 보일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공들여 모국어를 발화하려 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의 글은 힘에 세면서도 아름답습니다. 말맛에 취한 시인들과, 자기연민에 빠진 수필가들을 질색하는 제겐 매우 신선한 글이어서 다소 소란스럽게 글을 적은듯 합니다.
이쯤에서 작가가 제목 고른 이유를 다시 새겨봅니다.
모든 소란은 고요를 기를 수 있다.